스티븐 킹(사진)은 공포와 스릴러의 대륙에서 자신의 성처럼 왕이 된 남자다. 올해 78세인데 여전히 신간을 내는 현역작가이기도 하다. 『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는 여름에 나온 최신작인데 읽어나가는 동안 내가 느낀 것은 커다란 활력, 그리고 넉넉함이다. 제목과 달리 이 책은 밝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유쾌함으로 가득해서, 겨울에 읽으니 오히려 따뜻해졌다.
그중 단편 ‘앤서맨’은 인생의 항로를 북북서로 할지 동남쪽으로 할지 알 수 없는 기로에 선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다. 여기 결혼과 개업을 앞둔 스물다섯의 필 파커가 있다. 장인의 반대와 불확실한 미래 사이에서 방황하던 그는 길가에서 빨간 파라솔을 펼친 의문의 존재, ‘앤서맨’을 만난다. ‘5분당 25불, 처음 두 개는 무료’라는 조건. 그는 미래를 예언하진 않지만 묻는 말에는 오직 사실만을 답한다. 필의 인생은 앤서맨과의 세 번의 만남을 통해 변주된다. 첫 만남에서 얻은 확신으로 그는 고집대로 사업을 일구고 사랑하는 샐리와 결혼하며 행복한 1막을 연다. 하지만 삶의 무게만큼 대가가 비싸진 두 번째 만남(3분당 50불)은 가혹하다. 아들이 야구선수가 되겠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은 ‘아니오’. 얼마 후 아들은 열 살에 백혈병으로 떠나고 아내마저 사고로 잃으며 필의 인생은 급격한 상실의 파도를 탄다.
여든한 살, 뇌종양으로 죽음을 앞둔 필은 마지막으로 앤서맨을 마주한다. ‘모든 답 무료’라는 조건은 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시사한다. 필은 묻는다. 죽은 후에도 우리는 존재하며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느냐고.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에 앤서맨의 대답은 간결한 ‘네(Yes)’였다.
소설은 필의 죽음이 아니라, 그 답을 품고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서 끝을 맺는다. 가장 커다란 사면장(그 모든 비극과 상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인생이 긍정되는 순간)의 기쁨과 평화가 한해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는 이 시기에 커다랗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