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지켜보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서울 남산 자락 한쪽에서는 40여년간 같은 자리를 지켜온 힐튼서울 호텔이 마치 ‘증발’하듯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그 ‘증발’이 이뤄지고 있는 현장 인근의 문화복합공간 피크닉(piknic)에서 지난 9월 25일부터 ‘힐튼서울 자서전’ (내년 1월 4일까지)이라는 제목의 전시도 함께 열려왔습니다.
현재 철거 중인 건물의 자서전이라니 좀 독특하지요? 실제로 전시는 힐튼서울의 탄생부터 해체, 그리고 사회·문화적 맥락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혹자는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는 건축물이 얼마나 많은데 무슨 자서전까지…”라고 말하겠지만, 이 전시는 건축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시선과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꼭 한 번 볼 만합니다.
1983년 완공된 힐튼서울은 팬데믹으로 인한 영업 부진과 양동지구 재개발 계획으로 2022년 12월 31일 문을 닫았습니다. 건물의 철거 소식이 알려지자 이를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힐튼서울이 ‘그저 그렇게’ ‘대충’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한국 현대 건축의 도전과 야심, 자신감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웠습니다.
건축계에서 힐튼서울은 ‘한국 현대건축의 아이콘’으로 평가됩니다. 호텔을 설계한 건축가 김종성(90)은 1956년 미국으로 유학 가 ‘근대 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 로에(1886~1969)로부터 배웠습니다. 1966년 일리노이공대(ITT) 건축과 교수가 된 그는 1978년 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으로부터 “세계적 수준의 호텔을 지어달라”는 제안을 받고, “국제적인 첨단 기술을 고국에서 실현하기 위해” 설계를 맡았습니다.
전시는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힐튼의 면모를 드러냅니다. 건축가 김씨가 당대 최고의 호텔 전문가, 엔지니어, 인테리어 전문가와 주고받은 편지와 설계도면 등이 이 치밀한 여정을 증언합니다. 김씨는 2014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건축에도 진실이란 게 있다. 그 진실을 드러내는 것은 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전시를 보면 로비의 대리석 조각과 건물의 외피 재료 등 모든 요소에 건축가의 고민이 담긴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퀄리티가 가능했던 것은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설계를 시공 도중에 임의로 변형하지 않고 완성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한국에 좋은 건축이 있습니까? 어떤 것이 좋은 건축입니까? 우리는 끊임없이 이렇게 물으며 해답을 찾아왔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전시는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조선시대 궁궐만이 문화유산이 아닙니다. 시대 정신을 담고 최고의 완성도를 추구하는 건축 문화가 이뤄질 때 우리 시대의 문화유산이 만들어집니다. 힐튼서울이 전하는 마지막 인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