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빚은 쿠팡이 고객 1인당 5만원 수준의 이용권을 지급하는 보상안을 내놨지만 되레 비난 여론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쿠팡의 자체 조사 및 외환 거래, 야간 노동 등과 관련해 위법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해 전방위 조사에 나섰다.
29일 쿠팡은 지난달 개인정보 유출 통지를 받은 3370만 개 계정 전 고객에 대해 1인당 5만원,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 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매달 구독료를 내는 와우회원과 일반회원, 개인정보 유출 통지를 받은 뒤 쿠팡을 탈퇴한 고객도 포함된다. 해럴드 로저스 쿠팡 임시대표는 보도자료를 통해 “고객을 위한 책임감 있는 조처를 하는 차원”이라며 “끝까지 책임을 다해 고객이 신뢰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이번에 쿠팡이 제시한 보상 이용권은 쿠팡 내 다른 쇼핑몰에서 쓸 수 있다. 구체적으론 ▶쿠팡 종합몰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 트래블(여행) 2만원 ▶쿠팡 알럭스(명품) 2만원 등이다. 이에 대해 소비자들이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쿠팡에서 쓸 수 있는 이용권은 5000원으로 제한하고, 상대적으로 고가인 여행·명품으로 쿠폰을 분산시켰다는 해석이 나왔다. 요컨대 “추가 결제를 유도하기 위한 꼼수 아니냐”는 것이다.
와우멤버십 가입자인 김모(30)씨는 “알럭스 등은 쿠팡 이용자 중에서도 소수만 이용하는데, 보상 쿠폰이라면서 플랫폼별로 제한을 둔 게 황당하다”며 “보상이 아니라 ‘미끼 마케팅’이다. 그동안 참고 참았는데 쿠팡 피해자 집단소송에 동참하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분노했다. 같은 와우회원인 이모(42)씨도 “2만원짜리 쿠폰을 쓰려고 200만원짜리 여행상품을 구매하라는 거냐”며 씁쓸해했다.
쿠팡 이용권으로 보상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탈퇴한 회원들의 재가입을 유도할 목적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이번에 쿠팡을 탈퇴했다는 권유진(33)씨는 “쿠팡 측이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고 걸맞은 책임을 진다면 다시 이용할 의향이 있었지만 면피만 하려는 모습에 실망했다”며 “이번 보상도 기존 고객을 기만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이번 보상안이 소비자의 마음을 돌리기엔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개인정보 유출 보상의 형태가 쿠팡 내 여러 서비스 중에서도 널리 이용하지 않는 플랫폼의 이용권 형태에 집중된 건 적절치 않다”며 “소비자 시각에서는 (이용권이) 피해 보상보다 판촉물이나 마케팅의 일종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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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부·경찰·금융위·공정위…쿠팡사태 범정부 전방위 압박
한편 정부는 쿠팡에 대한 조사를 전방위로 확대하고 있다. 이날 정부는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최근 쿠팡의 대응을 강한 어조로 경고했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를 3000만 건 이상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이라며 “범정부가 하나의 팀으로 움직여 단 하나의 의혹도 남기지 않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끝까지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와 경찰청,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서로 역할을 나눠 이번 사태를 신속히 조사하고 대책을 강구한다는 방침이다. 경찰은 이날 쿠팡이 지난 25일 이번 사고 경위를 자체 조사·발표한 데 대해 위법행위가 있을 경우 엄중히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포렌식 여부 등을 경찰에 통보하지 않아 증거 오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쿠팡이) 제출한 자료를 확인하고 있고, 전자기기는 포렌식을 진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의자 조사를 위해 압수물을 분석하고 있다”며 “쿠팡을 통해 연락을 취하진 않고, 본청에서 국제 공조 등 절차를 밟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정보 도용 여부와 쿠팡의 피해 회복 조치 등을 고려해 영업정지 여부를 판단할 계획이다. 고용노동부는 쿠팡의 야간 노동, 건강권 보호 조치와 관련한 실태를 점검한다. 관세청은 이날 오후부터 서울 송파구 쿠팡 한국법인에 조사 인력을 투입해 해외직구 등에 활용되는 개인통관부호 관리 실태, 쿠팡 미국 본사와 한국법인 간 외환 거래 등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국민들이 개인통관부호 유출 여부에 대해 불안해하는 만큼 관리 실태 등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