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가 대리점 경영에 부당하게 간섭할 때 부과하는 과징금 한도가 현재의 10배인 50억원으로 늘어난다. 담합이 적발된 경우, 통신사가 위치 정보 유출 방지 노력을 하지 않은 경우 등에 매기는 과징금도 대폭 올린다. 다만 단순한 실수 등에 대해서는 처벌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정부와 여당이 30일 ‘경제형벌·민사책임 합리화 태스크포스(TF)’ 제2차 당정협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제도 개선안을 내놨다. 지난 9월 1차 합리화 방안을 내놓은 데 이어 이번 개선안엔 331개의 경제형벌 규정을 정비하는 내용을 담았다. 기업의 중대 위법 행위에 대한 과징금을 대폭 강화하는 게 핵심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형벌 중심 관행에서 벗어나 대폭 상향된 과징금을 통해 기업 위법행위를 실효적으로 억제하겠다”고 말했다. 실효성이 떨어지는 처벌 대신 금전적 제재를 강화해 불법을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우선 담합으로 경쟁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경우 현재 40억원인 정액 과징금 한도를 100억원으로 올린다. 정률 과징금 기준도 관련 매출액의 20%에서 30%로 상향한다. 대리점법이나 가맹사업법 내 위법 행위도 정액 과징금을 최대 5억원에서 50억원으로 늘린다. 우월한 지위를 남용해 대리점의 거래 정보를 요구하거나 타사와 거래하는 것을 부당하게 방해하는 경우 등이 해당한다.
시장지배력이 있는 사업자가 부당하게 가격을 결정하는 행위(시장 지위 남용)도 처벌을 강화한다. 현재 과징금 한도는 매출액의 6% 또는 20억원인데, 매출액의 20% 또는 100억원으로 상향한다. 주요국 사례를 참고했다. 같은 사안에 대해 유럽연합(EU)은 관련 매출액 30% 이내에서 과징금 기본 액수를 정한 뒤 추후 가중 또는 감경하고, 일본은 관련 매출액의 15%까지 부과한다.
통신사 등이 위치정보 유출 방지 노력을 하지 않는 경우엔 벌칙인 형벌을 폐지하고 대신 과징금을 늘린다. 현재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게 돼 있는데, 이를 없애고 정액 과징금 한도를 4억원에서 20억원으로 올린다. 하도급법 내 처벌 조항 역시 크게 바뀐다. 발주자가 선급금을 받고도 하청업체에 지급하지 않았을 때 부과되던 형벌(대금 최대 2배)을 폐지하는 대신, 시정 명령과 함께 정액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바꾼다. 한도 또한 기존 20억원에서 50억원으로 크게 높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제 형벌 개편을 계기로 반복해서 법을 위반하는 사업자에 대한 가중 제재도 강화할 방침이다. 현재는 반복 위반 횟수가 1차례일 경우 과징금 가중률 10% 이상 20% 미만을 적용하는데, 이를 40% 초과 50% 이하로 바꾼다. 4차례 이상 위반하는 경우엔 90% 초과 100% 이하로 가중한다.
당정의 이런 움직임은 이재명 대통령의 최근 지적과 맥을 같이 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 19일 공정위 업무보고에서 “과징금을 대대적으로 부과하고, 인력도 대량으로 투입해 (불공정 행위를) 하는 족족 다 걸린다는 생각이 꼭 들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사업자의 고의가 아니거나, 단순한 행정 의무 위반 등은 형벌을 완화하거나 과태료로 전환해 ‘형사 리스크’를 줄여주기로 했다. 예컨대 자동차 제작자가 온실가스 배출 확인 서류를 기한 내에 제출하지 않은 경우 현재는 벌금 300만원을 내야 하는데, 이를 과태료 300만원으로 변경한다. 동물미용업자 등이 인력 현황 등의 변경을 등록하지 않았을 경우 적용하는 징역 1년의 벌칙은 폐지하고, 식품제조가공업 대표자 성명 변경 미신고는 처벌을 징역 5년에서 1년으로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