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와 소비자 보상안을 지난 29일(현지시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시했다. 최근 쿠팡이 내놓은 조사 결과에 대해 한국 정부가 “일방적 발표일 뿐”이라며 반박한 내용은 들어있지 않아 부실 공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날 미 증권거래위 공시 시스템인 EDGAR에는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대한 쿠팡의 조사 결과와 고객 보상 방안이 공시됐다. 쿠팡 한국법인 대표이사이자 모기업인 미국 법인 쿠팡 Inc의 최고관리책임자(CAO) 겸 법무총괄을 맡고 있는 해럴드 로저스 명의의 공시에서 쿠팡은 “현재까지 조사 결과 가해자가 약 3300만 개 계정에 접근했지만 실제로 저장한 데이터는 약 3000개에 불과하며, 해당 데이터는 제3자와 공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삭제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내용으로 쿠팡이 지난 25일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직후 정부는 강한 항의와 유감을 표명한 바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곧바로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민관합동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했다. 서울경찰청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다. 사실관계를 면밀히 확인하겠다”며 아직 조사할 내용이 많이 남았다는 쪽에 방점을 찍었다.
이날 미 증권거래위 공시에는 쿠팡 조사 결과를 둘러싼 정부와의 이견은 빠진 채 ‘셀프 조사’ 논란에 대해 쿠팡이 지난 26일 발표한 반박 성격의 입장문이 올랐다. 해당 입장문에는 “쿠팡의 조사는 ‘자체 조사’가 아니라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 주간 진행된 조사였다. 정부 감독 없이 쿠팡이 조사를 벌였다는 지속적인 오보가 허위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또 쿠팡이 정부의 제안으로 정보 유출자와 접촉하고,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 드라이브를 회수한 뒤 정부에 인도했으며, 유출자의 노트북을 회수한 다음 포렌식 과정을 거쳐 정부에 넘겼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증권거래위 공시에는 이와 함께 11월 말 정보 유출을 통보받은 고객들을 대상으로 쿠팡 구매 시 사용할 수 있는 약 1조6850억원(약 12억 달러) 규모의 쿠폰을 지급하는 고객 보상 프로그램을 시행할 예정이라는 내용도 담겼다. 쿠팡은 “해당 쿠폰은 각 거래에 대한 판매 가격 및 매출액에서 차감되는 방식으로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대규모 자금 투입이 불가피한 만큼 쿠팡 투자자들에게 재무적 변화를 알리기 위한 취지로 풀이된다.
그러나 쿠팡이 제시한 1인당 5만원의 쿠팡 이용권 역시 발표되자마자 일종의 꼼수라는 비판에 직면한 상황이다. 이용권은 ▶쿠팡 종합몰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 트래블(여행) 2만원 ▶쿠팡 알럭스(명품) 2만원 등 쿠팡 내 쇼핑몰에서 쓸 수 있게 했는데,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쿠팡에서 쓸 수 있는 이용권은 5000원으로 제한하고 상대적으로 고가인 여행·명품으로 쿠폰을 분산시킴으로써 추가 결제를 이끌어내려는 ‘미끼 마케팅’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쿠팡이 한국 정부와의 갈등과 악화하는 국내 여론 속에서도 공시를 강행한 것은 대규모 자금 투입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적시에 이를 공시하지 않을 경우 증권거래위 규정 위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