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관광객 급증으로 '오버 투어리즘(과잉관광)'에 몸살을 앓고 있는 일본이 연이어 칼을 빼 들고 있다.
얼마 전 '출국세' 인상을 전격 도입했던 일본 정부가 이번엔 박물관과 미술관 등에서 외국인에게 더 높은 입장료를 받는 '이중 가격제'를 추진한다고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이 지난 29일 전했다.
이에 따르면 일본 문화청은 최근 도쿄·교토·나라 등 해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전국의 주요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에 입장료 이중 가격제 도입 검토를 요구하기로 결정했으며, 외국인 입장객들에겐 기존 입장료의 2~3배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를 도쿄 국립박물관에 적용하면 현재 일반 성인 1인 입장료는 1000엔(9200원)에서 최대 3만원 가까이 훌쩍 뛰게 되는 셈이다.
명분은 '사용자 비용 부담'이다. 현재 도쿄 국립박물관, 국립서양미술관 등에는 외국인 방문객을 위해 다국어 안내문이나 음성 가이드 등의 설비를 갖춰놨는데, 이러한 시설 운영비용을 외국인 방문객들도 일부 부담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입장료와 기부금을 비롯해 정부에서 받는 교부금으로 충당해왔으며, 국립 박물관·미술관 11개 곳 중 8곳은 국가교부금이 지난해 수입의 50% 이상을 차지했다고 한다.
요미우리는 "외국인 방문객으로부터 적정한 요금을 거둬 수입을 늘림으로써, 세금 비중을 낮추고,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정부 방침을 전했다.
유사 사례도 있다. 인도 국립박물관은 인도인에겐 20루피(320원)를 받지만, 외국인에겐 20배가 넘는 500~650루피(8000~1만300원)를 받고 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도 22유로(약 3만7100원)인 입장료를 비유럽연합(EU) 거주자에겐 내년부터 45%가량 올려 32유로(약 5만4100원)로 적용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루브르 측은 "인상된 입장료 수입을 시설 보수와 개선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 일각에서는 이러한 조치가 '오버 투어리즘'에 대한 대책으로 도입되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 앞서 일본 정부는 내년 7월부터 모든 해외 출국자에게 '국제관광여객세(출국세)'를 현행 1인당 1000엔(약 9200원)에서 3000엔(약 2만7600원)으로 세 배로 인상하기로 지난 26일 확정했다. 지난 2019년 해당 제도 도입 후 첫 인상이다.
만약 내년 7월 이후 4인 가족이 일본을 방문하면, 기존 3만6700원이었던 출국세를 11만200원으로 7만3000원 가량 더 내게 된다. 다이와종합연구소도 지난 2월 내년 3월부터 히메지성에 이중가격제를 도입하기로 한 히메지시의 사례를 소개한 뒤, "관광객 집중을 완화하는 등 오버투어리즘 대책이 될 가능성도 있다"며 "앞으로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일본의 재정 문제를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지난 10월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는 '책임 있는 적극 재정'을 앞세워 2026 회계연도 (2026년 4월∼2027년 3월) 정부예산을 사상 최대인 122조3천92억엔(약 1126조원)으로 편성했다. 이를 두고 일본 언론에선 "재정 건전화를 통해 미래 세대에 책임을 다하는 관점이 부족하다"(니혼게이자이신문)며 재정 악화에 대한 우려를 내놨다. 고령화 등으로 세수가 줄고 지출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확대 재정을 펴는 데 대한 염려다.
이와 관련해 김남조 한양대 관광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관광객에 대한 정부 대책이 필요했던 건 사실"이라면서도 "한편으론 이처럼 늘어난 관광객을 통해 부족한 세수를 일부 충당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출국세 인상으로 전년의 약 2.7배인 1300억엔(약 1조2000억원)의 세수가 확보될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 정부가 이같은 조치를 내놓는 것은 폭발적인 방문객 증가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2021년 24만5800명까지 내려갔지만, 지난해에는 3687만100명으로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넘었을 뿐 아니라 이전 최고 기록(2019년 3188만2000명)도 경신했다. 올해는 10월까지 3554만7200명을 기록해 이조차도 넘어설 가능성이 커졌다.
김 교수는 "일본 정부가 박물관이나 미술관 입장료를 높여도 관광객 모두가 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때문에 관광객이 감소할 가능성은 작다. 출국세도 관광에 들어가는 비용에 비교하면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관광 심리를 위축시키진 않을 것"으로 봤다. 다만, 중일 관계 약화에 따른 중국 관광객 감소에 대해선 "이제 막 시작"이라며 "몇 개월 지나면 과거 '한한령' 때 그랬듯이 일본 거리에서 중국인이 상당히 많이 보이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