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글로벌 증시에서 수익률 '왕좌'는 뉴욕 월스트리트가 아닌 서울 여의도가 차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9일 중국의 인공지능(AI) 발전과 도널드 트럼프의 무역 전쟁 영향 등으로 미국 외 국가의 증시가 호조를 보이면서 미국 증시가 상대적으로 기울고(eclipse)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미국 뉴욕 증시에서 S&P500지수는 올해 들어 약 17.4% 상승했다. 양호한 수치지만 아시아ㆍ유럽ㆍ신흥국 시장이 전반적으로 더 강한 흐름을 보였다. 미국을 제외한 MSCI 전 세계 지수는 올해 29% 상승했는데, 이는 미국 증시가 2009년 금융 위기 이후 가장 큰 격차로 뒤처진 성적이라고 FT는 분석했다.
특히 한국의 코스피는 올해 75% 급등하며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유행하던 '국장은 탈출이 답'이라는 말이 올해만큼은 ‘국장의 복수’라고 할 만큼 세계 최고의 성적을 냈다. 이는 올해 삼성전자가 124%, SK하이닉스가 268%오르는 등 이른바 ‘반도체 투톱’의 선전 덕분이다. 글로벌 인공지능(AI) 반도체 공급망에서의 핵심적 지위가 주가에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그간 소외됐던 다른 시장들도 반등에 성공하며 S&P500의 성적을 웃돌았다. 중화권에는 중국의 AI 모델 ‘딥시크(DeepSeek)’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됐다. MSCI 중국 지수와 홍콩 항셍 지수가 각각 29%·28%가량 올랐다. 블룸버그는 “기술주 주도의 상승세가 제약과 금광업체까지 확산되며 2017년 이후 최고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럽 역시 재정 부양책에 따른 경제 성장 기대감이 반영되며 강세였고, 일본 증시 역시 호성적을 거뒀다. S&P500은 비록 3년 연속 두 자릿수 상승세를 보였지만, 높아진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과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 중국 딥시크 충격 등으로 세계 전체 흐름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뒤쳐졌다.
피델리티 인터내셔널의 니암 브로디-마추라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지난 한 해 동안 발생한 지정학적 사건들을 고려해 많은 투자자가 지역별 비중을 재검토하고 있다”며 “위험 분산 차원에서 미국 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JP모건의 미슬라브 마테이카 글로벌ㆍ유럽 주식 전략 수석도 “수년간 미국 시장이 유일한 관심사였지만 이제 투자자들은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실적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내년 미국 증시 전망에 대해서는 여전히 긍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블룸버그가 전문가 21명을 조사한 결과, 이들은 내년에도 미 증시가 4년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며 S&P 500 기준 평균 9%가량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CIBC 캐피털 마켓의 크리스토퍼 하비 전략가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예상보다 오래 기준금리를 동결하거나, 미국이 캐나다ㆍ멕시코에 대한 관세를 전격 인상할 가능성이 있다”며 “주요 기업들이 향후 실적 전망치를 낮추기 시작할 경우, 내년 증시의 판도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S&P500의 연내년 목표치를 약 8% 오른 7450으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