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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의혹'에도 버티던 김병기, 1억 묵인 의혹에 무너졌다

중앙일보

2025.12.30 01:48 2025.12.30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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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30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본인 의혹 관련해 사퇴 의사를 밝힌 뒤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의 첫 여당 원내사령탑이었던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0일 원내대표직을 자진 사퇴했다. 본인과 가족을 둘러싼 각종 특혜 의혹에, 공천 헌금 묵인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더는 버티기 어렵다’는 사퇴론이 여권 핵심부에서 작동한 결과다.

김 전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에 한참 미치지 못한 처신이 있었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제 부족함에 있다.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연일 계속되는 의혹 제기의 한복판에 서 있는 한 제가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사퇴 이유를 설명했다. 김 전 원내대표는 자신의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이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할 민주당 원내대표로서의 책무를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이날은 그가 1년 임기의 원내대표에 취임한 지 200일이었다.

김 전 원내대표는 전날 오후 7시 이후 어느 시점에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밤 늦게 김 전 원내대표가 정청래 대표에게 사퇴 의사를 밝혔고, 그 직전까지 원내 주요 참모들에게 거취 문제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고 말했다. 대통령 정무특보인 조정식 의원 등 중진들도 여러 경로를 통해 김 전 원내대표에게 사퇴를 권유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김병욱 정무비서관 등 청와대 정무라인도 김 전 원내대표 본인과 당 지도부와 긴밀하게 의사소통을 했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29일 오전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에서 열린 김근태 선생 서거 14주기 추모 행사에서 당청 주요 인사와 다선 의원들이 ‘사퇴가 옳다’는 취지의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다. 우상호 정무수석이 대통령 추도사를 대독한 행사였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사퇴의사를 밝힌 뒤 퇴장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김 전 원내대표는 이틀 전(28일)까지만 해도 주변에 “의혹 수준의 문제 제기가 이어진다고 해서 떠밀려 사퇴하는 것은 굉장히 부당하다”고 했다. 지난 2024년 12월 갈등 끝에 해고한 전직 보좌진들의 각종 폭로에, 김 전 원내대표는 자신과 아내에 대한 욕설이 다수 등장하는 이들의 단체 채팅방 캡처를 공개하며 맞서기도 했었다.

하지만 맞대응은 또 다른 폭로를 낳으며 당 안팎 여론은 악화됐다. ▶부인의 아들 국정원 취업 청탁 의혹(6월) ▶차남 숭실대 편입 개입 의혹(9월)에 이어 12월에는 ▶쿠팡 측과의 고가 식사 논란 ▶대한항공 호텔 숙박권 무상 이용 의혹 ▶가족 공항 의전 특혜 의혹 ▶지역구 병원 진료 특혜 의혹 등이 전방위로 터져나왔다.

특히 29일 불거진 ‘부인 법인카드 유용 은폐’ 의혹과 ‘지방선거 공천 헌금 묵인’ 의혹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김 전 원내대표가 2022년 8월 부인이 구의회 업무추진비를 유용한 것을 인지하고도 무마하려 했고,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회 간사였던 같은 해 4월 강선우 의원으로부터 강 의원의 보좌관이 시의원 공천 희망자에게 1억원을 받아 보관 중이라는 보고를 받고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재선 의원은 “갑질이나 특혜 의혹이 아닌 ‘돈 문제’로 번진 이상 더 버티는 것은 당에 부담”이라며 “솔직히 오늘 사퇴도 너무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여론에 민감한 수도권 지역 의원들을 중심으로는 국정 동력과 지방선거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지도부 소속 의원은 “내년 지방선거까지 문제의 전직 보좌진들이 제보와 폭로를 이어갈 것”이라며 “이미 강선우 의원 건은 당에 일정 부분 타격을 줬다”고 했다.

차준홍 기자

정청래 지도부는 이날 긴급 최고위원 회의를 열어 차기 원내대표 임기를 김 전 원내대표의 잔여 임기(4개월)로 못박았다. 조승래 사무총장, 이해식 전략기획위원장, 문진석 원내수석이 김병욱 정무비서관과 최고위 직전 이 같은 방안을 논의했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이 회의 직후 “원내대표 보선을 1월 11일 실시되는 최고위원 보궐선거 날짜와 맞추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때까지 원내대표는 문 수석이 대행한다. 이날 한때 민주당 3선 의원들이 모여 특정 의원을 추대해 원내대표 공백을 줄이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김 전 원내대표의 의원직 사퇴를 압박했다. 한동훈 전 대표가 페이스북에 “민주당 하청 특검인 민중기 특검이 수사했더라도 차마 김병기·강선우는 구속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공관위에서 공천 대가로 돈을 받은 이상 민주당 전체가 수사 대상”이라고 적었다. 야권은 특히 강선우 의원도 겨냥했다. 정이한 개혁신당 대변인은 “지방선거 공천장마저 돈 봉투와 맞바꾸는 '매관매직'이 판을 치고 있다”며 “김병기·강선우 두 사람은 즉각 의원직을 사퇴하고 자연인 신분으로 수사기관에 출석해 공천 장사의 전모를 이실직고하라”고 논평했다.

친여 성향 정당들도 “함께 거론된 강선우 의원도 책임 있는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조국혁신당), “엄정한 수사와 조사를 통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진보당)는 입장을 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병기 원내대표의 사퇴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정 대표는 이날 오전 당 윤리감찰단에 강 의원에 대한 진상 조사를 지시하면서 김 전 원내대표는 조사 대상으로 명시하진 않았다. 정 대표는 “그동안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국민의힘과 내란 잔재 청산, 개혁 입법을 하느라 김병기 원내대표가 참 수고가 많았다. 마음 고생이 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원내대표가 임기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개인 비위 의혹으로 불명예 퇴진한 것은 이례적이다. 2014년 박영선·2023년 박광온 의원 등이 원내대표직에서 중도 하차했지만 모두 정치적 이유였다.



심새롬.김나한.강보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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