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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도 놀라게 한 18세 ‘고교 농구’

중앙일보

2025.12.3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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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졸업을 앞둔 한국가스공사 신인 양우혁이 프로농구 코트를 뜨겁게 달군다. 그는 3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송봉근 객원기자

“코트 안에선 ‘내가 최고’라는 마음으로 뛰다 보니 다이내믹한 플레이가 나오는 것 같아요.”

30일 대구체육관에서 만난 프로농구 대구 한국가스공사 가드 양우혁(18)은 젊은 패기로 가득했다. 2007년생으로 내년 1월9일 졸업식을 앞둔 고교생 신분인 그는 지난달 대학생 형들을 제치고 신인 드래프트 6순위에 뽑혔다. 프로 무대에 뛰어든 그는 지난 20일 안양 정관장전(19점)을 시작으로 23일 창원 LG전(17점), 25일 수원 KT전(13점)까지 3경기 연속 두자릿 수 득점을 올렸고, 수훈선수 인터뷰도 했다.

양우혁의 플레이를 지켜 본 해설위원은 TV 중계 도중 “고등학생 맞나요?”라며 감탄을 연발했다. LG의 아셈 마레이(이집트)는 양우혁에게 다가와 “너 앞으로 KBL 레전드가 될 것 같다”고 했다. 팬들은 “2000년대 김승현이 활약한 오리온스 시절 이후 양우혁 덕분에 다시 대구 연고팀의 농구를 본다”며 한다. 삼일고 시절 현란한 드리블로 남성팬이 98% 절대 다수였던 이전과 달리 젊은 여성팬이 부쩍 늘었다는 양우혁은 “최근 한 팬으로부터 두바이 쫀득쿠키 선물과 함께 나 때문에 농구를 보기 시작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면서 “팬들이 없다면 스포츠는 공놀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국가스공사 양우혁이 특유의 시그니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송봉근 객원기자
양우혁은 특유의 리듬으로 공과 함께 붕 떴다가 가속을 받아 앞으로 치고 나가는 ‘행(Hang) 드리블’을 즐겨 구사한다. 주특기는 드리블 방향을 갑자기 바꾸는 크로스오버에 이은 풀업 점퍼다.

한 팬은 ‘자란다, 잘한다 양우혁’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응원가는 서인국의 ‘애기야’다. 앳된 얼굴이지만 코트에선 ‘소년’이 아니다. 작은 키(1m78㎝)에 깡마른(69㎏) 체구지만 ‘깡’이 좋다. 4쿼터에도 주눅 들지 않고 배짱 넘친다. 몸을 꼬집으며 신경전을 벌인 KT 카굴랑안(필리핀) 앞에서 3점포를 꽂은 뒤 총을 쏘는 듯한 세리머니를 했다. 양우혁은 “‘날 건드리면 이렇게 된다’는 의미다. 총 모양은 아니고 3점슛을 성공했다는 의미로 손가락 3개를 펴 보였다. NBA(미국프로농구)처럼 재미있는 포인트를 만들고 싶었다”며 미소 지었다.

강혁 가스공사 감독은 선수들에게 넓은 스페이싱을 만들게한 뒤 고교생 양우혁에게 일대일을 맡긴다. 강 감독은 “신인 트라이아웃 때 눈빛이 보통이 아니었다. 고등학생이 대학생 형들을 진두지휘하더라”고 했다. 김 감독은 드래프트 때 호명하러 나가기 직전에 마음을 바꿔 강성욱(KT) 대신 양우혁을 뽑았다. 양우혁은 “드래프트날 화장실에서 만난 강혁 감독님이 ‘다부지게 잘하더라’고 말씀해주셨다. 원래 8순위 이후를 예상했는데 인정을 받아 기분 좋았다”며 웃었다.

막내다 보니 팀 동료들의 사랑도 독차지한다. 벨란겔(필리핀)이 “한 경기에 10점 이상 넣으면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5를 사주겠다”고 하자, 라건아가 “2점 3도움이면 충분하다”며 목표치를 낮춰줬다. 그런데 양우혁은 지난 6일 정관장을 상대로 최연소 선발출전(18년7개월3일)과 최연소 두자릿수 득점(16점, 7어시스트) 기록을 한꺼번에 새로 썼다. 양우혁은 “건아 형이 이틀 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70만원 상당의 플레이스테이션을 건넸다. 성인 계정 가입이 가능한 1월1일만 기다린다”며 웃었다.

고교 졸업을 앞둔 한국가스공사 신인 양우혁이 프로농구 코트를 뜨겁게 달군다. 송봉근 객원기자
삼일고 시절 별명은 ‘삼일 유키’. 신장 1m69㎝의 작은 체격으로 NBA 무대를 누비는 카와무라 유키(일본)에 빗댄 별명이다. 지금은 ‘대구 유키’로 바뀌었다. 양우혁은 “초중고에 진학할 때마다 ‘쟤는 (작아서) 안돼’ 소리를 들었다. 국내 최상위 리그 KBL에서 잘해버리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테니, 대학 진학 대신 얼리 드래프트를 신청한 거다. 카와무라처럼 편견을 깨부수는 선수가 되겠다”고 했다.

NBA 카이리 어빙(댈러스 매버릭스) 영상을 찾아 보는 양우혁은 지난 8월 중국에서 NBA 스타 스테판 커리(골든스테이트)가 진행한 농구캠프도 다녀왔다. 물을 마시는 타임에 혼자 있는 커리에 다가간 그는 서툰 영어로 “Could you tell me your game mind?”라고 질문했다. 처음에는 잘 못 알아 들은 커리는 “실수하든 잘하든 다음 플레이를 생각하라”는 답을 들려줬다. 양우혁은 “지금도 커리가 ‘넥스트! 넥스트!’라고 외쳐준 걸 생각하며 뛴다”고 했다.

픽업게임을 함께 한 삼일고 선배 이현중(나가사키)에게선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양우혁은 ‘삼일고 최고 아웃풋’ 현중이 형 뒤를 이을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했다. 양우혁은 초등학생 때 삼일고 동문회를 갔다가 강혁 감독, 송교창과 함께 찍은 사진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양우혁은 27일 서울 SK전에서 슛 10개를 던져 다 실패했고, 파울 관리와 마른 몸이 약점이다. 그는 “고교 시절 발이 부러졌을 때 58㎏였는데, 두 달 만에 12㎏를 찌웠다. 웨이트 트레이닝를 통해 목표 체중은 73㎏ 이상”라고 했다. 그는 카페인 섭취는 안 한다며 눈앞에 있는 커피도 안 마셨다. 강성욱(KT), 김건하(현대모비스) 등과 신인왕 경쟁 중인 그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서로 레벨이 올라가는 느낌”이라며 “말에는 힘이 있고 말하는 대로 이뤄지더라. 대한민국 넘버원 가드가 되겠다”고 강렬한 포부를 밝혔다.
한국 농구 기대주 양우혁은…
나이: 18세(2007년생)
포지션: 포인트 가드 체격: 1m78㎝ 69㎏
소속팀: 수원 삼일고-대구 한국가스공사(2025~)
2025년 신인 드래프트: 6순위
평균 기록: 8.1점(신인 1위) 2.4어시스트
롤 모델: 카이리 어빙(댈러스)
별명: 대구 유키(NBA 출신 카와무라 유키+연고지)



박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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