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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ADHD야?" 6살 딸 묻자 쓴웃음…강남 병원만 유독 붐빈다, 왜

중앙일보

2025.12.30 12:00 2025.12.3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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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지역에서 ADHD 검사를 하는 소아청소년과 의원 모습. 류효림 기자
" 아빠, 나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야? "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부모 사이에서 유명하다는 한 소아 전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서 지난 23일 만난 A씨와 그의 여섯 살 딸 B양은 ADHD 검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었다. A씨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검사를 해보라고 권해서 처음 왔다”며 “부모들 사이에서 아이가 조금만 산만해도 ADHD 검사를 받고, 또 주변에 진료를 부추기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에 B양은 “내가 ADHD냐”고 아빠에게 물었고, A씨는 딸에게 “아니야, ADHD라는 말은 어떻게 알았어”라며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 정신과 의원은 평일 오후였지만 진료를 보러 온 어린이들로 쉴 새 없었다. 불과 30분 사이에도 6~10세 어린이 11명이 의원을 드나들었다. 이곳은 소아·청소년을 대상으로 ADHD 검사를 진행하고, 진단 시 약물치료와 주 1회 놀이치료를 병행하는 병원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 강남 지역에서 ADHD 검사를 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모습. 류효림 기자
자녀에 대한 교육열이 높은 서울 강남 등 지역 학부모 사이에서 ADHD 검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강남에서 ADHD 진료를 받으려면 한두 달 대기하는 것은 기본이 됐을 정도로 학부모의 문의가 이어지는 중이다. 한 강남 지역 온라인 맘카페에는 “당일 검사 가능한 곳이 있냐”는 문의도 잇따랐다.



“조금만 걱정돼도 검사하는 분위기”

반포동에서 7살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 C씨는 “요즘은 부모들이 조금만 우려돼도 병원을 찾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내 아이는 만 5세, 6세에 걸쳐서 두 번 검사를 받았는데 한 번 검사에 49만원을 냈다. 비싸긴 했지만 주변 아이보다 산만한 것 같아서 그랬다”며 “검사 결과 ADHD는 아니었지만, 산만한 건 여전해 행동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학부모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는 강동구 소재 정신과 의원에 문의해 보니, 다음 달 말까지 검사 예약이 거의 차 있는 상태였다. 검사를 받고 나서도 의사의 진료를 받으려면 추가로 일주일 이상을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의원 관계자는 “초·중·고등학생 환자가 골고루 있지만, 유치원생도 많이 온다”고 말했다.

            김영옥 기자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지난해 0~19세 ADHD 진료 환자는 서울 강남구가 5886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고, 송파구(5435명)가 뒤를 이었다. 서초구(3251명)와 목동 학원가가 있는 양천구(2653명)도 상위권을 차지했다. 서울 외 지역에선 경기도 성남 분당구(5130명), 울산 남구(3689명), 대구 수성구(3573명) 등 상대적으로 교육열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지역에 미성년 ADHD 진료 환자가 많았다.

환자 수 증가 폭도 가파르다. 강남구의 0~19세 ADHD 진료 환자는 2020년(2262명)보다 2.6배 규모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서초구에선 환자 수가 2.7배로 급증했다.

마약류 약제로 분류되는 ADHD 치료제를 처방받는 미성년 환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노연숙 건보공단 빅데이터융합연구부장은 “빅데이터 분석 결과, 강남 3구의 ADHD 치료제 사용량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며 “이는 이 지역의 ADHD에 대한 인식, 병원 접근성 등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남 학부모’처럼 상대적으로 소득과 교육열이 모두 높은 학부모들 사이에 ADHD 진료와 처방이 일종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는 말까지 나온다. 건강보험공단 분석에 따르면 ADHD 치료제 메틸페니데이트 처방은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구에서 가장 많았다.

전문가들은 과잉 진단과 처방으로 인해 향후 ADHD 치료제에 의존하는 사람이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신의진 세브란스어린이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아이가 조금만 산만하면 ADHD를 의심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는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으로 집중을 잘 못 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작용 우려가 있는 ADHD 치료제를 어린 나이부터 먹이기보다, 적절한 치료법을 소아정신과에서 처방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성빈.류효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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