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해 미국이 "기술협력을 위협한다"며 당국에 "검열권"을 부여하는 데 대해 우려를 표했다. 해당 법이 허위조작정보를 판단하는 기준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거나 자의적일 수 있다는 우려에 공감한 셈이다.
사라 로저스 미 국무부 공공외교 차관은 30일(현지시간)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한국의 네트워크법 개정안(Network Act)은 표면적으로는 명예를 훼손하는 딥페이크를 바로잡는 데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광범위한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기술 협력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네트워크법 개정안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된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을 뜻한다.
로저스 차관은 또 "딥페이크는 당연히 우려스러운 문제이지만, 규제 당국에 관점에 기반한 검열 권한(viewpoint-based censorship)을 부여하기보다는 피해자에게 민사적 구제책을 제공하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이런 우려는 워싱턴 조야에서 공감하는 분위기다.
워싱턴 내 대표적인 지한파 학자인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도 이날 중앙일보 질의에 "한·미 팩트시트의 문구와 취지는 입법과 규제를 시장 보호주의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이 점에 분명한 초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결과물인 '공동 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에는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과 정책에서 미국 기업들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앞서 미국은 지난 23일 표현의 자유를 문제삼아 미국의 빅테크 규제 입법을 주도한 유럽연합(EU)의 전 고위직 등 5명의 입국을 금지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성명을 통해 "이들은 미국 온라인 플랫폼 기업을 검열하고, 수익 창출을 제한하는 등 조직적 압박을 가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2022년 EU가 제정한 디지털서비스법(DSA)을 문제 삼아왔다. 플랫폼 기업이 온라인상의 불법 콘텐츠와 혐오 발언, 허위 정보 등을 통제하지 못할 경우 과징금을 부과하는 게 골자다. 입국 금지 조치도 해당 법 제정에 관여한 인물들에 대해 이뤄졌다.
이번에 여당 주도로 처리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입법 취지에서 DSA를 모델로 제시했다. 미국의 온라인 플랫폼도 해당 법 적용 대상이다.
내년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허위조작 근절법은 불법이나 허위조작 정보라는 걸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이를 유포할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를 배상하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또한 대규모 플랫폼 사업자가 불법·허위·조작 정보에 대해 삭제, 접근 제한, 계정 정지, 수익화 제한, 서비스 중단 등 다양한 자율적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플랫폼 규제 등을 통해 자국 기업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조치에 대해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최근 미국의 기조와 배치되는 대목이다.
이외에도 법안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산하에 ‘투명성 센터’를 두고 사실확인을 지원하도록 했는데 이에 대해 야당에선 "어용 감시기구"라는 비판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