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 게시판 의혹이 2025년 마지막 날까지 블랙홀처럼 국민의힘을 집어삼켰다. 지난 30일 한동훈 전 대표를 직격한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놓고 친한계는 “조작투성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고, 장동혁 대표 주변에서는 “징계는 수순”이라고 받아쳤다. 새해까지 여진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당내에선 “이러다간 지방선거에서 공멸”(중진 의원)이라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당무감사위는 30일 한 전 대표 가족 명의의 게시글 1428건이 확인됐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발표 직후 “가족이 글을 쓴 걸 뒤늦게 알았다”고 해명했던 한 전 대표는 31일 “감사 결과가 조작됐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어제 이호선(당무감사위원장)씨는 게시물 명의자를 조작해 발표했다. 동명이인의 게시물을 나와 가족 명의의 게시물인 것처럼 문건을 만들어 허위 사실을 고의 유포했다”고 비판했다.
한 전 대표 측은 ‘건희 개 목줄’, ‘대전XX 준석이’ 등 원색적 비난이 담긴 게시 글 대부분이 ‘한동훈’이라는 동명이인이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이 전날 동명이인 ‘한동훈’의 게시글을 ‘진OO’ 등 한 전 대표 가족 이름으로 게시됐다고 조작해 개인 블로그에 공표했다는 것이다. 친한계 의원은 “한 전 대표 가족은 신문 사설 등을 올린 게 대부분이고, 원색적인 글은 동명이인 ‘한동훈’이 대부분 올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이호선 위원장은 입장문을 통해 “게시판 글 명의와 (당무감사위가 공개한) 작성인 명의가 다른 점은 윤리위 심의 과정에서 별도로 설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논란을 둘러싼 갈등은 장 대표 측과 친한계의 전면전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다른 친한계 초선 의원은 “한동훈 죽이기를 위해 이 위원장이 노골적으로 당 지도부와 교감했다는 게 합리적 의심”이라고 말했다. 친한계 우재준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 이호선 위원장을 출석시켜 이번 당원 게시판 조사 발표 파문에 대해 철저히 따져 묻겠다”고 했다.
반면 장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은 한 전 대표를 거듭 압박했다. 김민수 최고위원은 이날 YTN라디오에 출연해 “당내 인사를 비판하려고 가족을 동원하는 건 용서 받지 못할 일”이라며 “한 전 대표와 같이 가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조직부총장인 강명구 의원도 이날 SBS 라디오에서 “심증만 있었는데 확정됐다. 한 전 대표가 빨리 사과하고 털고 가야 한다”고 했다.
이날 장 대표는 당원 게시판 사건에는 별도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당 관계자는 “독립 기관인 당무감사위 조사 결과에 장 대표가 끼어들면 논란만 커진다”고 했다. 당내에선 장 대표가 1월 중에 현재 공석인 중앙윤리위원장을 임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국민의힘 지도부 인사는 “장 대표가 취임 뒤 당원 게시판 문제 해결을 약속했고 그 기조는 변함없다”고 했고, 당 핵심 관계자도 “1월 중에는 윤리위 결론이 날 것”이라고 했다.
‘장·한 갈등’에 발목 잡힌 야권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공천 헌금 의혹 등 각종 파문 속에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원내대표에서 물러나고, 국민의힘 출신 이혜훈 전 의원에 대한 기획예산처 장관 지명 논란 등이 불거진 상황에서도 반등 기회를 잡지 못하고 집안싸움만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남 중진 의원은 “공세 칼자루를 쥐고도 이렇게 자멸하면 지방선거 패배도 불 보듯 뻔하다”고 우려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가뜩이나 야권이 불리한 국면에서, 당원 게시판 사건을 고리로 수면 아래 잠복한 내홍까지 터지면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전망은 더욱 암울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