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은행권이 연초부터 ‘신규 대출자 모시기’ 영업에 나서지 않도록 밀착 관리에 나선다. 매년 초 은행들이 공격적으로 대출 영업에 나서다가 연말로 갈수록 대출 총량을 맞추려고 창구를 닫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취지다.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대출 총량 관리를 이어가겠단 기조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내달 가계부채 점검회의를 열고 은행권에 이 같은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특히 당국은 그동안 분기 중심으로 점검했던 대출 잔액을 월별로 관리는 방안도 논의할 방침이다. 특정 시기에 대출이 쏠리거나, 연말만 되면 대출 금리가 올라가고 한도는 낮아지는 등 소비자 불편이 반복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매년 초 은행권은 새로 공급할 수 있는 대출 한도(총량)가 부과되면 대출 문턱을 크게 낮춘다. 올 초에도 신한·우리은행은 생활안전자금 목적의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2억원으로 늘렸고, KB국민은행은 한도를 아예 없앴다. 또 시중 은행 대부분이 주담대를 받을 때 모기지보험(MCI·MCG)에 가입하는 것을 다시 허용했다. 모기지 보험에 가입하면 한도를 산정할 때 임차보증금을 빼지 않아도 돼 사실상 한도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연초는 가계대출 수요도 몰리고 총량 한도도 여유로워 영업을 열심히 하는 시기”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문제는 연말로 갈수록 대출 문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KB국민·하나은행은 신규 주담대 대면 접수를 중단하고, 우리은행도 영업점별 대출 한도를 낮춘 상태다. 5대 시중은행 모두 올 하반기부터 대출모집인을 통한 대출도 막았다. 이 때문에 연말이 되면 가계대출 총량은 줄고, 금리는 상승세를 탔다.
5대 은행의 이달 가계대출 잔액은 29일 기준 767조6184억원으로 전달 말(768조1344억원) 대비 5160억원 감소했다. 반면 5대 은행의 주담대(고정형) 금리는 연 3.94~6.24%로, 지난달 상단 기준 처음 6%대를 돌파한 뒤 꾸준히 오름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연초부터 가계대출이 급증하지 않도록 월별 취급 양을 잘 배분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내년 2월 확정하는 가계대출 총량 목표치에 올해 목표치 초과분을 깎는 페널티도 반영할 방침이다. 은행권에서는 이달 말 기준 KB국민·카카오뱅크·광주은행 등이 올해 목표치를 초과했다. 2금융권에서는 새마을금고가 한도를 크게 넘어섰다.
특히 내년부턴 은행이 주담대를 새로 취급할 때 위험가중자산(RWA)을 평가하는 가중치 하한이 현행 15%에서 20%로 상향된다. 같은 규모의 주담대를 취급하기 위해선 은행이 자기자본을 더 많이 쌓아야 해 부담이 커지는 셈이다. 금융권에선 연간 주담대 신규취급액이 약 27조원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 내년에도 실수요자들이 대출 받기가 녹록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내년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가 4%인 점을 고려해 각 은행도 내년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를 2% 안팎으로 계획하고 있을 것”이라며 “최대한 고르게 대출 수급이 이뤄지도록 월별로 세세하게 관리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