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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년 어느날, 연구실 가니 AI가 불치병 구조 찾아놨다

중앙일보

2025.12.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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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9곳이 그린 AI와 인류의 미래
지금 이 순간, AI에 대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는 한미 대표 인공지능(AI) 개발사들에 직접 물었다. 범용 AI(AGI)가 일반화된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줄 로드맵은 무엇인지, AGI에 도달하는 길에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지. 눈으로 보이는 일상의 변화는 단지 시작일 뿐이다. AGI 시대엔 정치·사회·경제·문화의 모든 체제가 재편될 전망. 빅테크의 머릿속을 들여다봤다.
# 2036년 어느 날.

가정용 휴머노이드가 옷장에서 의상을 준비하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주방에선 인공지능(AI) 로봇 팔이 냉장고 속 식재료를 파악해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거실에선 AI 비서(에이전트)가 이날 지인과의 점심 약속 장소로 서울 상암동에 새로 생긴 파스타 맛집을 추천해 준다. “알겠다”고 하면 AI 비서가 지인의 AI 비서와 소통해 일정을 확정한다. 회사에 출근해 인간이 할 일은 판단과 의사 결정에 집중된다. 제품 생산을 위한 단순 노동,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코딩 등 반복적인 일은 AI가 도맡아 처리한다. 기업 형태는 1인 또는 소규모 집단이 ‘뉴노멀’이 된다. 연구실에선 AI가 새로 발견된 불치병의 단백질 구조를 찾아내 신약을 개발한다.

이상은 한국과 미국을 이끄는 대표 AI 개발사 9곳이 내다본 10년 뒤 ‘범용 AI(AGI) 시대’의 모습을 재구성한 것이다. 중앙일보는 구글·메타·아마존·오픈AI 등 미국 빅테크 4곳과 네이버·업스테이지·SK텔레콤·NC AI·LG AI연구원 등 한국 국가대표 AI 기업 5곳(가나다순)에 AGI 시대에 다가올 변화의 모습, 이를 구현하기 위한 로드맵을 물었다.

AGI는 공상과학소설 속 미래 세계를 현실로 구현할 핵심(key) 기술이지만, 아직 그 개념이 손에 잡히진 않는다. AGI 정의 자체가 기술 발전과 함께 업데이트되는 중이라서다. 다만 9개 기업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작업을 전문가 수준으로 수행할 수 있는 AI”라는 개념을 담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리얼 월드’(현실 세계)에서 상호 작용할 수 있는 AI” “일상의 사소한 일까지 도울 수 있는 AI 비서”라는 개념을 강조한 곳도 많았다.

AGI의 도래는 일상의 변화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체제와 제도도 재편할 전망이다. 로힛 프라사드 아마존 AGI 부문 수석부사장은 “AI는 경쟁의 출발선을 재정의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디지털 경제에서 배제됐던 사람들과 예상치 못한 지역에서 폭발적 혁신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일정한 크레디트(credit)를 가지고 원하는 것에 투표하는 직접민주주의 형태 시스템처럼, AI가 훨씬 더 나은 시스템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정적인 변화 전망도 있다. 임우형 LG AI연구원장은 “기술 활용 여부에 따라 극심한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며 “AGI 시대는 구조적 격차를 해소하고 인간이 더욱 중심이 될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태윤 SK텔레콤 부사장(파운데이션 모델 담당)은 “알고리즘에 대한 과도한 의존 문제와 AI 기반 의사 결정의 책임 주체 논란을 푸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AGI 구현 시점에 대한 전망은 제각각이었지만, 적어도 앞으로 10년이 지난 시점엔 “지금은 인류가 AGI 시대에 살고 있다”고 답할 가능성은 크다는 게 공통된 진단이다. 현재 AI 시대를 연 트랜스포머 모델(AI 챗봇의 기반이 된 자연어 처리 모델)과 같은 혁신이 수차례 등장하고, 크고 작은 기술적 진보가 켜켜이 쌓여 가면 AGI는 어느새 우리 일상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의미다. 오픈AI 관계자는 “AGI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는 단일한 순간이 아니라 산업혁명과 유사한 장기적 변혁 과정”이라며 “‘지능 혁명(Intelligence Revolution)’ 위에서 수많은 가능성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딥마인드 공동 창업자인 셰인 레그는 “‘완전한 AGI(full AGI)’는 10년 내에 가능할 것”이라며 “이 변화는 산업혁명보다 10배는 더 클 것”이라고 예측했다.

현실 세계를 이해하는 피지컬 AI 분야로 범위를 좁혀 본다면 도래 시기는 더 빠를 수 있다. 김민재 NC AI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초기 피지컬 AGI의 등장은 2030년 전후가 될 것”이라며 “과거에는 텍스트 학습이 전부였지만, 지금은 방대한 공간 데이터를 AI가 학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차준홍 기자
AI로 인한 변화를 가장 앞선에서 경험한 이들은 AGI 시대가 오면 ‘일의 성격’이 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앙일보는 여론조사 플랫폼 리멤버 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5~23일 소프트웨어 개발자·마케터·서비스 기획자·디자이너·데이터 분석가 등 5개 직군 1000명을 대상으로 ‘AGI의 미래와 직무 변화 전망’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당신의 직군이 AI에 대체될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보는지’란 질문에 응답자의 79.6%가 ‘10년 이내’라고 답했다. ‘이미 진행 중’이란 답도 18.2%였다. 응답자의 54.9%는 AGI 시대엔 ‘실무는 AGI가 담당하고, 사람은 지시하고 검수하는 관리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9개 기업이 그리는 AGI 시대는 소설 속 미래 세계와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이들이 소설과 다른 건 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한 ‘로드맵’이 있다는 점이다.

AGI로 가는 길목의 핵심엔 ‘AGI 인프라’가 있다. AGI 모델과 서비스를 현실로 구현할 초대형 데이터센터와 이를 뒷받침해 줄 전력 확보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오픈AI는 “전 세계적으로 파트너십을 통해 AI 모델 학습과 추론을 위한 컴퓨팅 인프라 투자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구글 역시 독자적인 AI칩인 텐서처리장치(TPU) 개발과 차세대 원자력과 지열 발전 등 새로운 에너지원 투자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AI 모델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새로운 아이디어로 ‘AI의 자가발전’ 방식도 거론된다. 프라사드 수석부사장은 “최근 AI 개발의 패러다임은 대규모 자기 지도 학습과 논리적 추론 과정을 통한 강화 학습을 결합하는 식으로 바뀌었다”며 “이 패러다임을 확장하는 것만으로도 AGI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AI 기업들이 집중하는 건 데이터와 사용성이다. 임우형 원장은 “산업 현장에서 얻은 데이터와 피드백으로 AI 모델을 똑똑하게 만드는 성장의 선순환 사이클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권순일 업스테이지 부사장은 “결국 사용자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인터페이스 등 서비스 측면에서의 개선도 중점 과제”라고 말했다.

AGI를 달성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일까. 기술적으로는 ‘모라벡의 역설’(복잡한 계산은 잘해도, 단순 업무에는 서툰 현상)을 극복하는 것이다. 김민재 CTO는 “AI가 그동안 뇌(텍스트)만 비대하게 커지고, 몸(물리 감각)은 학습하지 못했다”며 “가상의 뇌와 현실의 몸을 연결하기 위한 3D 월드 모델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술적 난관을 푼다고 해도 결국 마지막 관문은 ‘사람’이다. 사람이 AGI에 얼마나 많이 의존할지, AGI를 얼마나 신뢰할지는 결국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결정해야 하는 일이라서다. 김태윤 부사장은 “AGI는 기술적 난제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과제”라고 짚었다.

강광우 기자
AI가 만들어낸 정치의 미래는 어떨까요. AI로 하루만에 만든 웹툰 ‘AI공화국’과 그 제작 후기를 소개합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93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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