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성 비타민은 안전하다는 통념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물에 녹아 배출되기 전 우리 몸속을 돌면서 여기저기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최근 해외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비타민 B6(피리독신)부터 살펴보자. 비타민 B6는 신경 건강, 피로 회복, 손발 저림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고용량의 B6는 신경을 망가뜨릴 수 있다. 장기간 과량을 복용하면 감각 이상, 저림, 작열감, 보행 불편 같은 말초신경병증이 생긴다는 보고가 지난 수십 년간 축적돼 왔다. 신경을 살리려 먹은 영양제가 신경을 공격하는 셈이다.
이런 우려로 인해 최근 호주 정부는 비타민 B6 규제를 크게 강화하기로 했다. 2027년부터 권장 1일 섭취량 기준 50㎎을 넘는 제품은 약사의 관리하에서만 구입 가능하고, 200㎎을 넘으면 반드시 의사 처방이 필요해진다.
실제로 호주에서는 규제 논의가 있기 전, 비타민 B6 관련 신경병증 이상 사례 보고가 250건 수준까지 누적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유럽은 기준을 더 낮췄다. 유럽식품안전청(EFSA)은 2023년 성인의 비타민 B6 상한 섭취량을 하루 12㎎으로 제시했다. 독일 연방위해평가원(BfR)은 한술 더 떠 보충제에 들어갈 수 있는 최대량을 하루 0.9㎎으로 제한할 것을 권고했다. 이렇게 기준이 하향 조정되는 것은 합산 노출 때문이다. 비타민 B6가 50㎎대인 제품이 흔하고, 여기에 에너지드링크·스포츠 보충제 등 여러 제품을 겹쳐 먹으면 본인도 모르게 섭취하는 총량이 많아지는 것이다.
비타민 B군 중 주의해야 할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혈관 청소부로 불리며 콜레스테롤 개선에 도움을 준다는 비타민 B3, 즉 나이아신도 양면성을 가진다. 이름이 같아 보여도 형태에 따라 위험성이 달라진다. 니코틴산 형태는 혈관을 확장해 피부가 붉어지고 화끈거리는 부작용을 잘 일으키고, 니코틴산아미드 형태는 그런 반응이 덜하다. 나이아신이 서서히 방출되는 형태일 경우에는 간독성 위험도 있다. 국내 기준에서도 두 형태의 허용량이 다르게 설정돼 있다. 해외 직구할 경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수용성이라 많이 먹어도 남는 건 소변으로 나간다고 안심하면 곤란하다. 비타민 B12도 수용성이며 빈혈 예방과 에너지 대사에 필수적이지만 고용량으로 쓰면 경우에 따라 여드름을 악화시킬 수 있다. 과잉 섭취된 B12가 피부에 사는 여드름균(C. acnes)의 대사에 영향을 줘 염증 유발 물질을 뿜어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피로를 이겨보려고 비타민 B 복합제를 챙겨 먹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얼굴에 뾰루지가 올라온다면, 혹시 고용량 비타민 B12가 문제는 아닌지 살펴보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