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주택시장은 단순한 ‘양극화’를 넘어 ‘초양극화’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모습을 보인다. 금리 인상의 여파로 2022년과 2023년 침체기를 겪었던 주택시장은 2024년 이후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이 과정에서 가격 상승과 하락이 동시에 나타나는 뚜렷한 대비가 관찰된다. 서울만 보더라도 한강 인접 고가주택 밀집 지역의 상승세가 두드러진 반면, 외곽 지역은 상대적으로 정체된 흐름을 보였다. 경기도 역시 과천과 성남 분당이 높게 상승한 것과 달리 평택, 이천은 하락했다. 인천은 0.67% 하락했으며, 지방 전체의 주택가격 변동률도 -1.16%를 기록했다.
자산시장의 수요·공급은 원인보다 결과…‘기대에 대한 기대’중요
부동산 불패신화는‘집값은 언제나 오른다’는 공유지식으로 작동
정부는 금융시스템 위험이 발생할 때만 개입한다는 원칙 지키고
금융 접근성·정보 우위 가진 특정 계층만의 무위험 투자 차단해야
자산 가격 격차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가격을 다섯 등분으로 나눴을 때 최저 구간과 최고 구간의 비율을 의미하는 5분위 배율이 이달 기준 12.8로 집계됐다. 이는 2008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위 20% 아파트의 평균 가격이 하위 20%의 12.8배에 달한다는 뜻이다.
자산시장에서는 기대가 중요 이러한 주택시장 초양극화의 원인으로 흔히 공급 부족이 지적된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이른바 ‘똘똘한 한 채’의 공급이 제한돼 있어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자산시장은 일반 재화 시장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빵이나 연료처럼 소비되면 사라지는 재화는 현재의 수요와 공급이 가격을 좌우하지만, 주식·부동산·채권과 같은 자산은 미래의 현금흐름이나 가치에 대한 권리를 거래하는 시장이다. 오늘의 가격은 현재의 사용가치가 아니라, 미래에 얼마를 받을 수 있다고 믿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이때 수요란 단순히 “지금 사고 싶다”는 욕구가 아니라, “앞으로 더 비싸질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판단의 집합이다. 자산시장에서 가격이 수요와 공급의 결과처럼 보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수요와 공급 자체가 기대와 믿음에 의해 형성된다. 주택시장의 경우 신규 주택 공급에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만, 압도적으로 더 많은 기존 주택 매물은 미래에 대한 기대에 따라 탄력적으로 움직인다.
즉 자산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은 원인이라기보다 결과에 가깝다. 가격 상승이 기대되면 수요는 늘고 공급은 줄어든다. 반대로 하락이 예상되면 매도자는 늘고 매수자는 사라진다. 같은 주택 물량을 두고도 가격이 크게 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나아가 자산시장은 기대 그 자체뿐 아니라 ‘기대에 대한 기대’, 즉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이라고 믿는가에 의해서도 큰 영향을 받는다. 내 생각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 것이라고 내가 예상하느냐도 중요하다. 이런 구조 아래서 동일한 믿음이 공유되는 경우 펀더멘털과 괴리된 가격이 유지되거나 오히려 더 상승할 수도 있다.
이 맥락에서 한국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부동산 불패 신화를 떠올릴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시장 전망에 확신이 없어도, 다수의 사람이 부동산 불패를 믿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투자 확대가 합리적 선택이 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에 따라 투자를 지속할 것이기에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은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유된다. 결국 믿음에 대한 믿음, 기대에 대한 기대가 중층적으로 형성되며 가격을 끌어올린다.
이러한 기대가 반복적으로 정렬되면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공유지식(common knowledge)이 된다. 공유지식은 어떤 사실이 있을 때, 이를 모두가 알고 있고, 이러한 인식 여부를 다시 모두가 알고 있으며, 계속해서 이 사실이 무한히 반복되는 상태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특정 사실의 여부에 대해 무한히 반복 추론하지는 않는다. 저명한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는 게임이론의 정의를 가져오되, 그것이 인간의 언어와 사회적 관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진실을 알더라도 남들의 눈치를 보며 행동하지 못하지만, 정보가 광장이나 매체처럼 공적인 신호를 통해 공유지식이 되는 순간 “나뿐만 아니라 타인도 이 기준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결국 공유지식은 파편화된 개인들을 하나의 공통된 기준점(focal point)으로 결집해, 집단적 행동을 끌어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과거의 부동산 불패 신화는 바로 이런 공유지식으로 작동해 왔다.
부동산 불패 신화의 변화 하지만 공유지식이더라도 영원히 유지되지 못하고 소멸할 수 있다. 부동산 가격은 장기적으로 펀더멘털의 제약을 받는다. 인구, 소득, 생산성, 금리와 같은 구조적 요인은 기대가 지속할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한다. 경제성장률 둔화, 인구 감소, 초저금리 환경의 종료라는 조건 속에서 과거와 같은 전국적 불패 신화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
최근의 주택시장 양극화는 이러한 신화의 변화를 반영한다. 과거에는 지역과 유형을 가리지 않고 “언젠가는 오른다”는 믿음이 공유됐지만, 이제 시장은 조건부·선별적 구조로 이동했다. 수도권과 지방, 수도권 내부에서도 핵심지와 비핵심지 간의 가격 경로는 뚜렷하게 갈린다. 주택가격 양극화는 불패 신화를 지역화하는 원인이자 결과다. 전국적 불패가 약화하자 상승 기대는 특정 지역에 집중됐고, 그 기대가 다시 수요를 끌어모아 가격을 밀어 올렸다. 반대로 기대에서 배제된 지역은 정체와 하락을 겪고 있다.
최근 서울지역 주택에 대한 외지인의 매입 비중이 과거에 비해 높은 수준을 지속하는 데 비해 비수도권 주택의 경우 외지인 매입 비중이 매우 낮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비수도권 시장의 약세와 서울·수도권의 상대적 견조함이 결합되며, 기대와 가격이 함께 움직이는 전형적인 사례다. 과거 부동산 불패가 공유지식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수도권 불패 또는 서울 불패가 그 역할을 대체해 가고 있다.
질서 있는 해체를 위한 길 이제 한국 부동산 시장은 과거와 달라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부동산 불패 신화도 조금씩 해체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해체 과정이 무질서하게 진행될 경우다. 공유지식의 급격한 붕괴는 시장 혼란이나 금융 불안을 초래할 수 있고, 양극화는 실수요자의 부담과 세대 갈등을 키울 위험이 있다. 정부의 사려 깊은 정책 수립이 요청되는 시점이다.
우선 주택시장 양극화를 완전히 차단하려는 접근은 현실적이지 않다. 집단은 공유지식이나 공동의 신념이 흔들릴 때 이를 폐기하기보다 적용 범위를 좁히는 방식으로 적응한다. 이는 불확실성을 감당하기 위한 집단 선택에 가깝다. 전국적 불패가 서울 불패, 강남 불패로 바뀌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기대 구조의 재배치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버블 붕괴 이후 전국에 걸쳐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지만, 도쿄 핵심 지역에 한정된 가격 신화는 오히려 강화됐다. 미국에서도 “대학을 나오면 중산층이 된다”는 믿음은 상위 대학과 특정 전공으로 국지화됐다. 보편적 상승 경로는 약화했지만, 선별된 경로에 대한 신념은 유지됐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는 제한적으로라도 관리되어야 한다. 선별적 성과를 모두 차단할 수는 없겠으나, 금융 접근성이나 정보 우위 등을 통해 특정 계층만 위험 없이 투자하는 것은 차단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결과의 격차가 아니라 위험 부담의 대칭성이다. 동일한 규칙 아래에서의 성과 차이는 수용될 수 있지만, 손실은 사회화되고 이익은 사유화되는 구조가 유지되어서는 곤란하다.
한편 정부의 역할도 가격을 방어하는 주체가 아니라 거래 질서와 금융 안정의 책임자로서 재정의돼야 한다. 가격 하락 자체가 아니라, 유동성 경색과 금융 시스템 위험이 발생할 때만 개입한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보여줘야 한다. 예외적 개입이 반복될수록 “결국 정부가 나선다”는 기대는 강화된다. 국가는 선별적 불패를 관리하거나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대가 금융 불안과 과도한 레버리지로 전이되지 않도록 영향만을 관리해야 한다.
주택시장 양극화로 인해 주택 자산 및 관련 금융상품의 위험 구조가 변하고 있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과거 주택시장은 상승 기대가 전방위적으로 공유되어 지역이나 유형과 관계없이 위험이 평준화된 자산시장에 가까웠다. 하지만 현재는 입지와 상품성에 따라 가격 경로가 뚜렷이 갈리며 하락 위험 또한 지역별, 주택별로 판이해졌다. 이처럼 확대된 위험은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하는 은행들이 자본 확충 등 리스크 관리에 더욱 힘써야 함을 의미한다.
결국 부동산 불패 신화의 질서 있는 해체란 신화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불패라는 단일한 이야기에서 조건부 수익과 위험을 함께 인식하는 새로운 공유지식으로 이동하는 과정이다. 그 전환이 관리될 때, 부동산은 신화가 아니라 하나의 자산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