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2026년에 대해 외국 언론이나 연구기관들의 전망은 몇 가지로 모아진다. 첫째, 국내 경제는 확장 재정 등에 힘입어 단기 회복 가능성이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가뜩이나 늦은 구조개혁이 더 늦어질 수도 있다. 둘째, 공급망과 관세 리스크, 중국의 경제적 압력, 북러 밀착, 한미일 협력의 재(再)정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트럼프 2기에 따른 나토의 재무장화와 같은 강력한 힘들이 부딪히는 지점에 한국이 북한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셋째, 이러한 과제들을 어떻게 헤쳐나갈지에 대한 정책적 불확실성이 매우 높다. 쉽게 말해서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는데 한국은 아직 망하지는 않았지만 내버려두면 망할지도 모르는 부자 정도로 보는 분위기이다.
새해 과제는 정책불확실성 극복
선굵은 정책과제와 씨름해야
내란청산으로 평가받을 시간 지나
중도·보수 인사 영입 더 늘리길
이중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것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정책 불확실성이다. 최선의 정책을 일관되게 할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미래를 위한 최선의 정책을 정확히 찾아낸다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설사 그것을 찾는다 하더라도 통치자의 잘못된 신념과 정치적인 반대와 이해관계자의 발목잡기와 관료의 몸조심이 겹치면 정책은 산으로 간다. 이 모든 것들을 오케스트라처럼 지휘해서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리더의 몫이다. 박정희 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이 오늘날까지 높은 평가를 받는 것도 나라의 격을 한 단계 올려놓은 그들의 지휘 능력 때문이다.
2025년 지켜본 이재명 정부의 모습은 불안감이 더 큰 쪽이다. 첫째로, 파격적인 정책이나 인사가 너무 많다. 파격이란 격을 깬다는 말인데, 흔히 주류의 업무방식이나 주류의 인물을 바꾸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순간에는 통쾌해 보일지 몰라도 주류의 관행은 오랜 세월의 테스트를 거쳐 살아남은 최선의 결과일 때가 많다. 제도를 바꾸고 인물을 바꾸고 싹 다 바꿨더니 막상 일을 어떻게 하는 건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는 꼴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빈자리를 채우는 사람들이 대통령의 측근들일 경우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둘째로, 상대적으로 작은 현안들에 대한 대통령의 개인기가 너무 많다.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대통령의 업무보고 생중계가 보여준 것은 외국 언론과 연구기관들이 입을 모아 지적하는 장기적·구조적 정책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만기친람하는 대통령의 개인기였다. 책갈피에 달러를 어찌할 것인지, 가짜 역사책을 어찌할 것인지는 해당 분야에서는 중요한 문제일 수 있겠지만 대통령이 진짜 해야 할 일은 나라의 명운을 바꿀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둘러싼 정책을 진짜 전문가들과 치열하게 토론하고 국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주변국과 조율하는 것이다. 관료를 겁주고 모욕하는 것은 좋은 정책이 나왔을 때 정작 집행해야 할 관료들의 불확실성을 높여 매일 작동하고 있는 거대한 관료제를 멈춰 세우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아직 평가하기에는 이르지만, 그나마 변화의 계기가 될지도 모르는 것은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경우처럼 중도보수 인사를 결합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점이다. 내각제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승자독식 다수제 선거제도를 통해 뽑힌 대통령이 야당의 현직 정치인을 내각에 영입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야당 인사를 내각에 영입하는 것은 정권교체 이후에도 정책의 연속성을 일정 부분 보장하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 좋은 결과를 낼 때가 많다. 외국의 사례들을 보면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열쇠는 비교적 단순하다. 가장 자주 언급되는 성공 사례는 미국 링컨 대통령의 ‘정적들의 내각(Team of Rivals)’인데, 그는 당내 경선 경쟁자였던 윌리엄 시워드, 살먼 체이스, 에드워드 베이츠 등을 국무·재무·법무 장관으로 기용해 남북전쟁기 미국식 초당파 대연정을 이뤄냈다. 실패한 사례는 대통령의 야당 인사 인선이 당내 강경파의 반발에 떠밀리거나, 인선된 야당 출신 장관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주지 않아서 홍보용 인형처럼 만들어버리는 경우이다. 국민의힘에서는 강력 반발한다고 하지만 현재 그들이 얼마나 민심으로부터 멀어져 있는지를 생각하면 국민의힘의 반발이 중요하지는 않다. 대통령의 진정성은 앞으로 몇 명이나 더 중도·보수적인 전문가를 영입해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느냐를 보면 알 것이다. 소수파 연구의 일관된 결론은 혼자서는 상징적 인형 노릇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일정 숫자가 넘어서면 하나의 세력이 되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이것은 자칫 한쪽으로만 휩쓸리는 조직을 바로잡아주는 건강한 경쟁의 시작이다.
쿠데타로 시작된 정치적 격변의 시간은 이제 끝났다. 대통령과 정부의 실력도 내란청산 같은 명분으로 평가받을 시간은 지났다. 작은 변화의 계기들이 없지는 않아 보인다. 새해에는 어려운 국제 환경을 헤쳐가며 선 굵은 정책 과제들을 붙들고 씨름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으면 한다. 국민에게는 가장 좋은 새해 선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