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는 인공지능(AI)이 불러온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스피드를 겨루는 운동선수들이 코너를 돌 때 승부를 걸듯, 대전환기에는 국가 경쟁력의 역전 현상이 치열하게 일어나는 법이다. 미국은 제조업 재건에 사활을 걸고 있고, 자동차 판매 세계 1위에 오른 중국은 반도체 패권마저 넘보고 있다. 일본도 오랜 침체를 벗고 경제 부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지난해 우리 사회는 비상 정국의 소용돌이에 갇혀 국가적 역량을 결집할 금쪽 같은 시간을 허비했다. 느닷없는 계엄으로 인한 혼란을 수습하고 헌법을 준수하며 극복해 온 것은 우리 공동체의 성숙함이 일궈낸 성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적잖은 비용이 발생했고, 우리 사회와 우리 경제가 고스란히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4000을 돌파하고 수출 7000억 달러를 달성했다. 외형적 수치로만 보면 우리 경제가 순항하고 있다는 착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딴판이다. 좀처럼 꺾이지 않는 고환율은 경제 펀더멘털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고, 그 여파로 물가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달아오른 부동산 시장은 서민의 내 집 마련 꿈을 멀어지게 했다. 대외 경쟁력 역시 불안하다. 주력 산업 상당수가 중국에 추격당했고, 미국의 관세 압박에 따른 대미 투자 확대는 산업 공동화 우려를 키우고 있다. 반도체 초격차마저 흔들리면서 중국은 이 분야에서도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의 다른 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집권 2년 차는 개혁의 골든타임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규제·금융·공공·연금·교육·노동 등 6대 분야 구조개혁을 제시하며 “2026년을 국가 대전환의 출발점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새해에는 이 약속이 반드시 구체적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 2023년 이후 1%대에 갇힌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미국(약 3%), 중국(약 5%)과의 성장 격차는 회복 불능의 수준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다.
AI를 비롯한 첨단기술 경쟁에서의 열세도 심각하다. 미국은 완전 자율주행을 현실로 만들고 있고, 중국은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정치적 갈등과 과도한 규제에 묶여 지난 10년 넘게 혁신의 싹을 키우지 못했다. 쿠팡을 유통 공룡으로 키운 배경에는 대형마트 의무 휴업과 같은 낡은 규제가 있었다. 개정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과 그 시행령은 기업에 또 하나의 규제 족쇄를 채울 것이란 우려가 크다. 정부는 명확한 교섭 기준을 확립해 기업의 경영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6월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다. 가뜩이나 정치권의 선심성 재정 운용이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올해 말 나랏빚은 1413조원에 달해 국가채무 비율이 50%를 돌파할 전망이다. 수조원 단위의 소비쿠폰 지급 등 재정 만능주의가 반복된 결과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생을 명분으로 또다시 돈 풀기에 나선다면 재정 악화는 되돌리기 어려운 단계에 이를 수 있다.
새해를 맞는 대한민국 앞에는 열거하기 힘들 정도의 과제가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정치 안정이 필수적이다. 이 대통령은 올해가 나라의 국운을 살릴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 말이 아니라 결연한 의지와 실행으로 답할 시간이다. 대한민국은 병오년 새해를 말처럼 힘차게 도약하는 해로 만들어야 한다. 정쟁과 갈등으로 날을 샐 여유가 우리에겐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