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허위조작 정보 근절법(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해 미국이 “기술 협력을 위협한다”며 당국에 “검열권”을 부여하는 데 대해 우려를 표했다. 미국이 동맹국의 국내 입법 절차를 거쳐 처리된 사안에 즉각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것은 이례적으로 볼 수 있다.
세라 로저스 미 국무부 공공외교 차관은 지난해 12월 30일(현지시간) X(옛 트위터)를 통해 “한국의 네트워크법(Network Act)은 표면적으로는 명예를 훼손하는 딥페이크를 바로잡는 데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광범위한 영역까지 영향을 미치며 기술 협력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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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판 ‘정통망법’ 관여 5인, 미국은 아예 입국 금지시켰다
네트워크법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된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을 뜻한다.
로저스 차관은 또 “딥페이크는 당연히 우려스러운 문제지만, 규제 당국에 주관적 검열 권한(viewpoint-based censorship)을 부여하기보다는 피해자에게 민사적 구제책을 제공하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한국의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에 대해 미국 정부가 입장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은 불법이나 허위조작정보라는 걸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이를 유포할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를 배상하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특히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가 허위’이거나 ‘내용을 사실로 오인하도록 변형된’ 정보를 각기 허위 및 조작 정보로 규정했다. 이에 허위조작정보를 가려내는 근거가 모호하고 사실상 정부나 관련 기관이 이를 판단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는데, 국무부 역시 이를 규제 당국에 대한 “검열 권한 부여”로 본 셈이다.
이번 입장 표명은 미국이 지난해 12월 23일 표현의 자유 제약을 문제 삼아 미국의 빅테크 규제 입법을 주도한 유럽연합(EU)의 전 고위직 등 5명의 입국을 금지한 조치와 맞물려 주목된다. 관련 조치를 총괄한 인물이 바로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에 대한 입장을 밝힌 로저스 차관이기도 하다. 미국은 그간 플랫폼 기업이 온라인상의 불법 콘텐트와 혐오 발언, 허위 정보 등을 통제하지 못할 경우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한 EU의 디지털서비스법(DSA)을 문제 삼았다. 입국 금지 조치도 해당 법 제정에 관여한 인물들에 대해 이뤄졌다.
이와 관련, 여당 주도로 처리한 허위조작정보 근절법도 미국의 온라인 플랫폼까지 규제 대상으로 삼는다. 또 해당 법 개정안 원안은 입법 이유에서 직접 DSA를 모델로 언급하기도 했다.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에 대한 우려는 워싱턴 조야에서 공감하는 분위기다.
워싱턴 내 대표적인 지한파 학자인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이날 중앙일보의 관련 질의에 “한·미 팩트시트의 문구와 취지는 입법과 규제를 시장 보호주의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공개된 한·미 정상회담 결과물인 ‘공동 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에는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과 정책에서 미국 기업들이 차별 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차 석좌의 입장은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이 공동 설명자료의 정신과 충돌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