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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인 숱하게 마주쳤다…소원도 빌고, 절경도 보는 새해 산행 성지

중앙일보

2025.12.31 14:00 2025.12.3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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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은 겨울 산행에 제격이다. 2시간 안에 정상에 오를 수 있고, 설경이나 상고대를 볼 확률도 높아서다. 능선을 따라 천제단으로 가는 산행객들.
새해를 맞아 겨울 산행에 도전한다면, 태백산(太白山·1567m)이 제격이다. 이름과 높이만 보면 소백산(小白山·1439m)보다 험할 것 같지만, 아니다. 들머리 고도(900m)가 높고 산세도 순한 편이어서다.
지난연말 태백산을 올랐다. 올겨울은 유난히 눈 가뭄이 심하다. 혹여 눈이 없을까 걱정했었는데, 태백산은 역시 겨울 산이었다. 깊은 골짜기는 발목까지 잠길 만큼 눈이 쌓여 있었고, 산 정상에서 백두대간의 그림 같은 절경을 마주쳤다.

태백시장이 제사 올리는 산
태백산은 고조선 건국 신화에 나오는 한민족의 영산(靈山)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나라를 세운 터가 태백산이다. 『삼국유사』의 태백산이 백두산을 일컫는다는 해석도 있지만, 우리 선조는 1500년 전인 삼국 시대부터 태백산을 신령한 산으로 받들어 산신제를 지내왔다.
태백산 천제단은 삼국 시대부터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지금도 개천절에 천제를 올리고, 수시로 무속인이 찾아와서 기도한다.
산을 신으로 모시는 전통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해마다 개천절이 되면 천제단(1561m)에서 ‘천제(天祭)’가 열리는데, 태백시장도 참석한다. 태백시장을 하려면 태백산을 받드는 마음에 체력도 있어야 한다.
지난해 12월 25일. 방석을 챙겨서 산을 오르는 무속인을 숱하게 마주쳤다. 요즘 태백산에서 굿판을 벌이거나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무속인은 없다. 정부가 2016년 태백산 일대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 불법 시설을 철거하고 위험한 무속 행위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태백산 국립공원은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를 품고 있다. 태백산은 물이 많은 산이다.
태백산이 영산이어서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건 아니다. 백두대간의 핵심축이라는 상징성과 생태적 보존 가치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태백산이 국립공원이 된 지 10년이 됐는데,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반려견과 함께 산을 오르다가 국립공원 직원에 저지당한 산행객을 목격했다. 반려견을 동반하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는 경고를 듣자 산행객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물었다.
“국립공원에는 강아지 못 들어가요?”

정상부에 펼쳐진 주목 군락지
국립공원에 반려동물이 출입 금지라는 건 몰라도 겨울 태백산이 좋다는 건 다들 아는 모양이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탐방객 수의 절반이 겨울 석 달에 집중된다. 특히 1월이 가장 붐빈다. 새해에 천제단에 올라 소원을 빌거나 마음을 다잡으려는 사람이 많아서다.
정상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오전 5시께 산행을 시작했다. 랜턴 불빛에 의지해 조심조심 눈길을 걸어올랐다.
오전 5시. 유일사 주차장에서 태백산국립공원 이승민 계장과 김찬식 반장을 만나 일출 산행에 나섰다. 해발 900m에 자리한 유일사 주차장을 출발해 정상을 찍은 뒤 당골로 내려오는 루트가 태백산의 풍광을 두루 감상할 수 있는 대표 코스다.
출발 시각 기온은 영상 2도였고, 사방에는 눈 내린 흔적조차 없었다. 그러나 20분 만에 겨울 산행 장비를 장착해야 했다. 눈과 얼음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아이젠을 등산화에 착용했고, 발목에 눈이 스미지 않도록 스패츠도 걸쳤다. 아이젠과 스패츠는 겨울 산행의 필수품이다.
비구니 사찰인 유일사를 지나니 경사가 가팔라졌다. 거위 털 재킷이 거추장스러워져 배낭에 구겨 넣었다. 산행을 시작한 지 1시간 40분 만에 능선에 올라탔다.
주목 군락지에는 명을 다한 고사목도 많다. 죽어서도 천년을 산다는 말처럼 꼿꼿이 서 있는 나무에서 묘한 오라가 풍긴다.
칼바람이 얼굴을 후려치는 와중에 고고히 선 주목 한두 그루가 보였다. 진초록 잎 무성한 살아있는 나무보다 언제 명을 다했는지 알 수 없는 고사목(枯死木)에 두 눈이 사로잡혔다.
태백산에는 주목 약 4000그루가 있다고 한다. 고사목까지 헤아린 수치다. 죽어도 산 것처럼 개체를 인정하는 나무는 주목이 유일한 듯싶다. 그래서 주목에는 죽어도 1000년을 산다는 표현이 따라다닌다. 주목은 죽어도 쓰러지지 않는다.

만항재 드라이브 산행
백두대간 산줄기와 운해가 어우러진 모습. 일출을 기대했지만 안개와 구름 탓에 보지 못했다. 맑은 날도 일출을 보기는 쉽지 않다.
오전 7시 30분. 장군봉(1567m)을 지나 천제단 앞에 서서 동쪽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 사이로 해가 비집고 나올 듯하더니 희부연 안개가 풍경을 지워버렸다. 기대했던 새빨간 태양은 떠오르지 않았다. 아쉽긴 했지만, 융단처럼 깔린 구름도 그런대로 멋졌다. 이승민 계장이 말했다.
“저희도 정상에서 일출은 잘 못 봅니다. 그래도 운무가 장관이고 상고대도 봤으니 운이 나쁜 건 아니네요.”
잠시 소원을 읊조렸다. 새해에 ‘대박’은 없어도 된다. 일상의 작은 행복만 놓치지 않으면 된다. 맑은 날, 새벽부터 산을 올랐다고 매번 일출에 성공하지는 않는 것처럼.
당골을 흐르는 계곡물은 한겨울에도 잘 얼지 않는다.
당골 방향으로 하산했다. 망경대(망경사)를 지나 완만한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하얗던 풍경이 초록으로 바뀌었다. 이끼가 잔뜩 낀 계곡에서 맑은 물소리가 들렸다. 천상의 세계에서 비로소 지상으로 내려온 것 같았다.
만항재는 한국에서 자동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다. 산행이 부담스럽다면 만항재 드라이브를 추천한다.
만항재에서 정선 방향으로 이어진 운탄고도는 거의 평지여서 산책하듯 걷기 좋다.
태백산 겨울 산행이 부담스럽다면 가까운 만항재(1330m)를 권한다. 한국에서 자동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가 만항재다. 만항재에 오르면 주차장 주변 야생화 공원이 눈 천지다. 정선 방향으로 이어지는 운탄고도 구간은 평지나 다름없어서 산책하듯 걷기 좋다. 태백산 국립공원 최고봉인 함백산(1573m)도 만항재에서 가깝다. 왕복 2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다.
여행정보
신재민 기자
태백산 겨울 산행 코스는 유일사~천제단~당골 코스가 무난하다. 정상 왕복에 4~5시간 걸린다. 차를 가져갔다면 당골 주차장에서 유일사 주차장까지 택시로 이동해야 한다. 아니면 유일사로 원점 회귀하면 된다. 아이젠·스패츠 말고도 등산 스틱과 핫팩, 날씨에 따라 입고 벗기 편한 겨울 등산 의류를 잘 갖추길 권한다. 동절기(11~3월) 태백산 입산 시간은 오전 4시부터 오후 3시까지다.



최승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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