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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아, 극적 구조 후 '충격' 과거사 고백…AOA 괴롭힘 재소환 [전문]

OSEN

2025.12.31 20:58 2025.12.3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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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최규한 기자] AOA 민아가 28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에서 열린 수목드라마 '병원선'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dreamer@osen.co.kr

[OSEN=최규한 기자] AOA 민아가 28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에서 열린 수목드라마 '병원선'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email protected]


[OSEN=장우영 기자] 그룹 AOA 출신 권민아가 그동안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다시 입을 열었다.

권민아는 1일 자신의 소셜 계정에 자신의 인생을 담은 긴 글을 올렸다. 내용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모진 풍파와 아픔이 담겨 있다.

권민아는 태어나기 전 아버지의 거부를 당했으나 어머니의 강한 의지로 세상에 나왔으며, 유치원 시절 내내 아버지의 폭력에 노출됐고, 6살 무렵 쓰러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직접 112에 신고해 결국 부모님이 이혼하게 됐다고 밝혔다.

부모님의 이혼 후 벌레가 들끓고 온수가 나오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하며 결벽증과 같은 강박이 생긴 권민아는 수학적 재능을 보이며 촉망 받았으나 양육비를 주지 않는 아버지로 인해 고생하는 어머니를 지키고자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생업에 뛰어들어면서 결국 자퇴를 선택했다. 특히 이 시기에 친구를 걱정해 따라갔던 장소에서 일진 선배에게 6~7시간 동안 무차별 폭행과 성폭행을 당하는 끔찍한 사건을 겪었다. 권민아는 어머니가 슬퍼하실까 봐 사실을 숨긴 채 홀로 고통을 견뎠고, 믿었던 친구의 배신과 집단 폭행이 이어지는 악순환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할 만큼 무너졌다.

이후 권민아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서울로 상경하여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지만 연습생 시절에도 폭언, 폭행, 잔심부름 등 가혹한 대우를 견뎌야 했다. 3년 반이라는 긴 시간을 버텨내 마침내 데뷔한 권민아는 가수로서 1위를 차지하고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며 무대 위에서 행복을 찾는데 성공했다.

권민아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4년, 자신을 학대했던 아버지가 췌장암 말기라는 소식을 듣고 쇠약해진 아버지의 모습에 복잡한 슬픔을 느꼈던 그는 슬픔을 억누르며 활동을 이어가던 중 대기실에서 수정 화장을 받다 참아왔던 눈물이 터졌다. 대기실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유로 멤버에게 폭언을 들었고, 결국 아버지의 마지막 병문안조차 제대로 가지 못했다고 밝혔다.

권민아는 숙소와 이동 중에도 계속되는 언니의 비속어와 괴롭힘을 피하고자 수면제를 복용하며 현실을 도피했던 그는 약 기운으로 인한 안무 실수조차 질책의 대상이 되고, 성인이 된 후에도 이어지는 부당한 벌칙과 괴롭힘에 정신적으로 한계에 다다랐다. 결국 권민아는 계속되는 압박과 마취 사고 등으로 정신적 무너짐을 경험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지만 다행히 매니저에 의해 발견되며 위험한 시기를 넘겼다.

치료를 위해 찾은 정신과 의사마저 상담 내용을 타인에게 누설하는 등 비밀 보장을 어기자, 세상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고 다시 입을 닫게 된 권민아. 그는 재계약 시점에서 과거의 상처에 대해 사과를 요구했으나 적반하장 태도를 경험하며 아예 꿈을 포기하고 팀을 떠나기로 했다. 이후 SNS를 통해 그간의 고통을 일부 밝혔으나 돌아온 대답은 무시(소설)였고, 사과하겠다며 찾아온 언니는 칼을 찾으며 위협하고 소리를 지르는 등 끝내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편, 2012년 그룹 AOA로 데뷔한 권민아는 2019년 팀을 탈퇴한 뒤 멤버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이후 간호사 갑질 주장 논란, 환승이별 종용 논란, SNS 라이브를 통한 사과, 해명 과정에서 진정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비판을 받았다. 최근에는 모덴베리코리아와 전속계약을 맺었지만 한달 만에 계약 해지했고, 현재는 데뷔 후 첫 단독 팬미팅을 앞두고 있다.

이하 권민아 전문

이 아이는 1993년에 태어났어요 친아빠는 저를 아들이 아닌걸 알게되서 낙태하길 원했으나, 엄마가 저를 꼭 낳고싶었대요

그렇게 태어나 5~6살의 기억의 온통 아버지의 가정폭력이였죠 6살때는 엄마가 의식없이 맞아서 쓰러져 있길래 112에 신고를 했는데 너무 어려서 경찰아저씨한테 집 주소를 최대한 표현하려고 힘들었는데 결국 경찰관분들이 찾아와주셨고, 그해 아마 이혼을 했을겁니다. 눈 떠보니 7살에 저와 엄마랑 언니는 바퀴벌레와 쥐랑 온갖벌레가 섞인 11평?쯤 되는 오래된 주택에 지내면서 보일러를 틀 수 없어 저는 찬물샤워를 못 하는데 매번 어머니가 물을 끓여줬어요 따뜻한 엄마에요 제대로 씻지 못해서 떼가 끼어 친구한데 지적도 당해보고..그래서 성인이 되고서는 샤워에 강박이 생긴건지 결벽증이 생겼네요 아무튼 초등학생까지 저는 수학만큼은 모든 상을 탈 정도로 좋아하고, 잘 했는데 다른 과목에는 관심이 없었죠. 언니나 사촌 친척들은 다들 하버드대에, 서울대에, 고려대 등 스마트한 집안이지만 저는 아버지가 양육비를 주질않아 6학년때 고민을 했어요. 아 내가 저 이쁘고 가여운 엄마를 지켜야지하고 중1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여러군데 뛰면서 끝나면 새벽이나 아침이 되서 학교를 점점 빠지게 �怜� 저는 결국 좋은 담임선생님께 솔직하게 털어놓고 자퇴를 했는데 그 무렵 저를 좋아하는 친구가 생겼고, 저도 마음을 열었는데..하필이면 그 친구는 벌써 성에 눈을 뜨고, 남자를 좋아해서 저랑 마찰이 생겼어요 아니..제가 일방적으로 혼냈어요 감히..그러던 어느날 그 친구에게 다른중학교 남자애가 연락이 왔고, 만나러 갈려는 그 친구에게 오늘은 우리끼리 있자 했는데 혼자서라도 가겠다는 말에 걱정이되서 같이갔어요 도착해서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은 우리와 동갑인 남자애들은 열차렷을 하고있고, 빈집에 모르는사이지만 유명한 일진이라 이름은 누구나 알정도로 유명한 1살위 남자선배가 있었고 무서워서 저희 집으로 보내주시면 안되요? 말을 뱉는 동시에 무차별 폭행이 시작�獰楮� 18년전 사건인데 그 집의 구조, 그 가해자의 표정, 생생해요 한6~7시간 맞았나? 맥주병으로도 맞고..그냥 질질 끌려다니며 몸 위주로 맞는데 아 이게 맞다가 죽는건가? 의식이 약해질쯤 갑자기 저를 방안으로 데려가 옷을 벗기더라구요 그때는 무슨 정신인지 울고 빌며 강간만큼은 피하고 싶었는데..결국 강간을 당하고, 옆방에 저를 넣더니 거기엔 무서운 동갑짜리 남자가 저의 온몸을 만져요..한참 갖고놀고 놓아줬을때는 새벽이였고 피 투성이에 온몸에 멍이들어 집까지 7~8분거리를 기어가듯 그 친구랑 도착했고 엄마가 깨기전에 긴팔 긴바지로 몸을 가리고, 엄마가 아침되서 가린다고 가렸으나 어딘가 상태안좋은 저희에게 무슨일이냐고 해서 저는 웃으면서 친구랑 치고박고 싸웠는데 내가 이겼어! 이 말을 끝으로 가출마냥 숨어다니고, 모든 아르바이트도 멈추고, 병원조차 못 갔고, 회복이 될때쯤 말이 없어지고 서먹서먹하게 엄마한데 짜증내고..게보린 먹으면 죽는다는 말이 있길래 게보린 8알을 삼켰는데 위가 아프고 토하고 다시 제정신이 �獰楮�..그 무렵 엄마도 서울 상경을 원했고, 저도 새삶을 위해 정말 원했는데 밤중에 우리집으로 전화가 걸려왔고 잠시 집앞으로 나와보래서 나갔더니 남녀 열다섯이상? 그냥 감이 왔으나 도망칠 수 없었어요 알고보니 나와 함께 힘든 사건을 겪은 그 친구의 배신과 이간질들..왜..그렇게 마지막 부산은 집단 폭행으로 대소변을 눌정도로 맞고 엄마에게만 비밀로 해달라하고 밖에서 회복될때까지 지내다가 우리집은 서울에 아주작지만 그래도 깨끗한 오피스텔에서 새로운 삶과 도전을 꿈꾸며 올라왔죠 부산의 모든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서울에서만큼은 잘 살자! 성공하자! 그렇게 알바를 다시하고 직원도 됫다가 꿈을 이루기위해 실력은 없지만 당돌했던 저에게 기회를 주셨고 그렇게 연습생이 되었는데 그때부터 다시 악몽의 시작이더군요. 원래 이런제도 이런생활인줄 알고 물떠주고, 욕먹고, 심부름 해주고. 맞고 그렇게 3년반뒤에 데뷔를 했고 저 일상은 똑같았지만 무대위에서 저는 행복했고 심지어 3~4년뒤 저희는 1위도하고 제법 성공한 위치였어요 그 와중에 2014년도에 아버지가 췌장암 말기라는걸 알게됫을때 작아진 아빠를 보고, 생각보다 슬펐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장면은 해골이 된 아빠를 잠시보고온 다음날 인기가요였고, 늘 감정을 잘 숨기기위해 혼자산책도 하고 방송도 잘 이겨냈는데..하필 그날 헤어수정을 받다가 소리는 안냈지만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고 제 옆에는 그 언니가 수정받고 있다가 옷장으로 절 멱살잡듯 끓고 가더니 너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너의 눈치를 봐야하냐며 혼을 냈고 분위기 흐리지 말라는 소리에 저는 무섭다고..아빠가 곧 죽는게 무서워 언니 하고 울었고 그렇게 다시 무대에 서고 연기를 하고..팬미팅시간때는 회사에서 아버지 병문안 시간을 주었어요 그래서 몇번 빠졌었고..스케줄 후 본집에 도착했고 눈 앞에는 5분거리에 아버지가 입원하고 계셨어요 그런데 저도 췌장암에 대해 몰랐는데 점점 더 해골로 변하는 모습에 엄마도 울고, 언니도 울고..근데요 저는 안갔어요 볼 수 있었는데..아니 못 갔어요 그것보다 무서운 존재가 저에겐 그 언니였어요 제가 또 현장에서 자칫눈물이라도 흘리면 또 혼날테니깐..최대한 일에 더 집중해보려고 했죠 사뿐사뿐때였던가 그게..? 아무튼 그러다 췌장암 소식을 안지 2달만에 위급하시다는 전화를 받고 아빠에게 갔을땐 눈 감고 있는 아빠가 보였고 아직 심장은 뛰고 있어서 엄마가 아빠듣고 있으니 사랑한단 말 해주라고..근데 그 말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 내뱉을려고 고민중에 삐 소리와 함께 아빠가 갔어요..아빠 옆에는 스케치북이 있었고, 소리도 안나왔는지 연필로 우리 막둥이 어디있어요? 적혀진 스케치북을 발견하곤 결국 많이 울었어요..

그래도 개인사정이고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않았기에 멘탈을 잡고 다시 밝게 활동을 했지만 무엇보다 힘들게 만든건 그 언니의 괴롭힘과 비속어들이였고, 같은 숙소 같은 차속에서 저는 자낙스나 스틸록스 먹고 최대한 안 듣기위해 행사장 도착전까지는 잠들기위해 그렇게 지냈는데 행사장때 한번은 약이 좀 안깨서 안무 실수를 한번 하는 바람에 또 혼났죠..그냥 어떻게 해도 미움받고 힘드니깐 연습실에서 새벽까지 있다가 언니가 잠들때쯤 들어가고 그렇게 버티다가 숙소에 언니지인이 오고 저는 수면제를 먹은 상태인데 거실에서 한참을 시끄럽더니 절 깨워서 요 �A 놀이터에서 벌칙을 하고 오래요 하라면 해야죠 근데 26살쯤 저는 이제 예민함의 끝이고 16~17살의 제가 아닌 저도 이제 어른이였고, 날 왜 싫어하는지 이유는 모르겠고 그냥 댄스실에서 싸우고 싶더라구요 씨발이 입밖으로 나오려는데 다른 멤버가 말렸고 아 다른멤버들은 진심이겠거니 그들을 보면서 힘을 냈지만 그냥 제 앞에서는 그 언니욕 그 언니앞에서는 제 욕 그리고 바라는건 재계약 근데 그때 헤어라인 시술하다가 마취가 안깨서 잘못되가지고 댄스레슨 시간이였는데 제가 마취가 늦게깨서 아주 큰 잘못을 하고, 댄스레슨에 이미 늦은 상태였고 그 언니에게 죄송하다고 전화를 걸었는데 갑자기 그 화내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제가 미쳐가는 것 같았고 울음이 터쳤고, 숙소로 가달라고 매니저님께 부탁했고, 모아두었던 스틸녹스랑 자낙스..150개에서160개정도 언젠가를 위해 부지런히 모았죠 유서에는 그 언니 이름을 쓰고 저는 그 용량을 거의 다 삼키던도중 입안에는 약이 채 안넘어간것들도 있었고 기절했었는데 절 좋아해주던 매니저동생이 불안했는지 다시 숙소에 와서 제 모습을 발견하고 응급실을 다녀왔고 의식은 찾았지만, 몇일 토 하며 눈 앞이 안보였어요 그러다 회사에서 유명한 정신과 의사를 붙여줬는데 용기내서 제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그 분께 같이 상담받던 후배가 제 이야기를 알고 그 의사분은 제 앞에서 그 후배 이야기를 서스럼없이 얘기해주시고..아 비밀보장이 없구나 이러다간 모두가 알겠다 싶어서 다시 말을 아끼고, 그렇게 다시 혼자 이겨내려다 재계약날이 다가왔고 5분간 멤버들만의 시간이 주어졌을때 그냥 가장 충격의 기억이였던 아버지 돌아가실때 인기가요에서 언니가 옷장에서 뱉은말을 말하며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내가 그런말 할 정도로 나쁜년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하고 절 노려보고 나서는 다같이 재계약하는게 모두에게 좋은거라고 설명하는데 그 순간 저는 그냥 꿈을 포기해야겠다 싶었고 안 하겠다고 단호하게 얘기했고 나머지만 하기로 정리가 되나싶었고 그들을 바라보며 저는 자해로 시작해 자살시도가 반복�怜� SNS를 통해 제가 겪은 아주 일부의 상황들과 그 언니의 진짜 모습, 아니 나한테 한 모습을 밝히고 싶었고, 그러다 답은 소설이란 두글자 그 후 한멤버에게 전화가 왔어요 그 언니가 사과하면 받아주겠냐고 너희집에 가도 되냐고 해서 제가 정말 원하는건 진심어린 사과. 그거 하나라고 당연히 와도 된다고 그렇게 기대감에 기다렸는데 멤버들과, 그 언니랑 유독 친한 매니저와 남자팀장까지 들어오면서 다들 녹취를 해요..그러고 그 언니는 잔뜩 화가난 상태로 야 칼어딨냐? 내가 죽으면 되냐?며 소리를 지르고..

벙벙하다가..다시 침착하게 대화가 시작�怜� 저도 흥분이 된 상태로 물었어요 나한데 갑자기 얼굴이 좆같네, 흔들려 활동때 무대의상입은 저를 향해 야 너 몸매가 왜그래? 병신같아 등 약한것부터 대체 왜? 이유를 물었으나 기억이 안난데요 제가 언니는 미워도 언니 아버지는 좋아했었고 그 아픔을 난 먼저 느꼈었으니 장례식장을 갔었죠 그때 절 보고 울길래 잠시 뭘 느꼈나 싶었는데..제 눈앞에 이 여자는 다시 본성으로 돌아와있었고, 저도 그 모습에 흥분을해서 그래 다 녹취하고 찍어라 괜찮다 나? 언니의 아빠와 내 아빠를 걸고 거짓말 한톨 안 붙이고 솔직히 10년간 당한 기억? 나도 전부못해 근데 진실만을 물어볼께 이유라도 알자 왜 그랬어? 여러가지의 질문에도 기억이 안난다 무표정의 미안..반복되는 반응에 저는 계속 털어놓다가 아 그냥 여기서 더 바랄것도 변할것도 진심어린 사과도 인정도 못 받을껄 느껴서 그냥 가라고 했고 저도 흥분을 가라앉힌채 괜찮은척 의리라고는 지뿔도 없는 나머지랑 그냥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조금 얘기하다가 바이하고 다 보냈어요 그 후 갑자기 기사가 떴어요 그 언니가 저한테 무릎꿇고 사과했다는 내용과 함께..뭐지? 같이 온 언니랑 친한 팀장님께 여쭤�f어요 함께 보고계셨으니 기사에 왜 벌어지지도 않은 내용이 있어요? 왜 거짓말 하냐고 카톡을 보냈더니 답장이 잠시만. 하고 한참후에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어 라는 답이 왔고, 외로웠어요 그 자리에 분명 제 편들도 있었으나 힘이라는게 있고 없고 위치 차이가 있더라구요 그 날에 저는 또 손목을 긋고 응급실행이였고, 계속해서 나 혼자 진실을 밝히기위해 노력했고 나중엔 대중들이 저 때문에 피로해지고 끔찍한 사진들 때문에 정도껏을 넘어선 제게 모두가 돌아섰어요 그때 든 생각은 이 여자 만나고 싶다 나도 때릴래 나도 욕할래 미친상태로 매일 울며 자살시도 하다가도 주변사람들에게 그 언니 어딨냐고..그리고 그 언니에게 매일 할 수 있는 욕이란 다 보냈어요 그게 제 복수였고, 언니는 한통의 답장도 없다가 디스패치에 원본아닌 초반도 중간도 없는 끝 내용의 녹취록만 보내놓고 묘하게 제가 연습생때 말 안듣는?왠지 이유가 나에게 있는것처럼 단독 보도가 �怜� 제가 보낸 욕 문자가 전부 공개되었어요 그러고나서는 제가 가해자가 �獰楮�

저는 무너지고, 매일 공항발작에, 엄마눈에도 눈물이 나고, 그냥 화풀이를 제 몸에 했어요 칼로 배를 여러번 쑤셔보고 허벅지는 그어보고 죽을 방법은 손목 아니면 목이라고 생각해서 수없이 있는 힘껏 그었는데 부산대에서 눈을 뜨니 제가 또 살아있고 뭐 전신마취로 수술했다면서 의사선생님께서 손가락을 움직여보래요 느리지만 움직여졌고, 대신 감각은 못 찾을거라고..그래도 기적적으로 살아난게 다행이라며 의사 선생님은 기뻐하시고 위로 해주셨는데 저는 그냥 하늘이 원망스러웠고, 아직도 왼손가락 4개는 감각이 당연히 없고 팔에는 쥐가 나는 고통을 매일 겪다가 그래 다시 트라우마들 이겨내고 난 가장이니깐 다시 우리엄마도 언니도 행복하게 만들어보자 이겨낼려고 했고 운좋게 강간상해 사건도 부산 경찰관분들이 조사하시면서 상해까지 입증이되면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다는 말에 희망을 품고 7시간동안 영상진술도 하고 몇년이 지나 검사구형은 징역 10년에 얼굴, 이름 공개라는 벌을 내렸고 너무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성인이되서도 너무 잘살고 있고, 한치의 죄책감도 없고, 변호사를 3분이나 써가시면서 재판 진행을 했어요..

검사님덕분에 부산친구들도 증인으로 나와줬고, 현장에 있었던 안 친한 친구들도 증언해주고..저 때문에 다들 고생해서..속상했지만 제발 징역 조금이라도 살아..내가 느낀 고통을 가해자에게 다 줄순없으니 그냥 1년이라도 감옥에 살길바라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결과지도 보내고 재판장님께 진심을 담아 탄원서도 2번 쓴 상태지만 1심에선 강간죄는 인정이 �怜�, 상해죄가 인정이 되지않아 공소시효 지남으로 무죄. 그리고 검사님은 다시 항소를 해주셨고 지금은 2심 재판을 기다리고 있죠..최근에 면접도 보고 새로운 일을 찾아가며 다시 살고싶었어요..아니 그냥 하루 하루 무기력하지만 집안에서는 약으로 버티고 매일 일기를 쓰며 스트레스를 풀고, 밖에서는 일 자리를 얻기위해 모든게 회복된 척 밝게 다니고..그냥 조용히 살아야지 했는데 어제 저는 모든게 무너졌어요 나는 나락간 아이고, 정신병자고, 맞아요 저 좀 알아달라고 이해해달라고 계속해서 이야기 하고 또 이야기해요 다들 악플을 달고 제발 쫌 죽어라하고 잘가. 하시는데 저도 최선을 다해서 죽음을 향해 더 대담하게 다가가고 이젠 무너졌어요 정말 버티기도 괴로워요 상황도 좋은 상황도 당연히 아닐뿐더러..그나마 그 당시 제 고민과 제 가정사와 비슷했던 유명하고 예쁜 친구가 생겼었는데 먼저 갔어요 제가 잠시 일본에 혼자 가있는동안..

이제 제 주변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사람새끼는 맞는지 정을 주고 잘 대해주면 결국 나는 만만한 인간이 되있고 강한척굴면 쟤는 소문이나 기사내용대로 미친년이네 하고, 저도 사는 방법과 인간을 대하는 방식을 다 까먹었어요 강아지로 위로 받고, 그러다 모찌가 무지개 다리갔을땐 더 슬펐고, 지금도 엄마랑 뚜니 영상 보면서 유일하게 웃는데..사실 제가 너무 고장났어요 더 이야기하고 싶어요 제가 겪은 상황들, 일어난 일든, 오해가 있는 일들에 대해 전부 사실적으로 털어놓고 싶어요 이제는 내가 외친다고 한들 누가 들어주고 봐줄까요? 저는 그저 관종, 죽어야할년, 대중이 감정쓰레기통이라고 생각하는 년..아니에요 그냥 제 얘기 좀 누군가는 들어주세요..관심이 고픈게 아니라 저는 사실을 진실을 알리고 싶고 제가 왜 고장나서 미쳐 날 뛰는지 그냥 제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요..그게 다예요 어제 제가 죽었으면 오늘의 이야기도 없었겠지만 저는 또 숨쉬고 또 들어주지 않을 말을 적어봐요..

바라는거 없어요 그냥 심장이 답답하고 너무 힘들어요..슬퍼요.. 나도 살고싶어요 더 멋지고 화려하게.. 근데 이젠 그 열정마저 안 생겨요..26살때 부터 자살시도를 하며 이제 곧 34살이에요..아침에 눈 뜨면 그냥 기분이 없어요 나는 왜 살고있나? 살아있음에 감사하라고? 잘 모르겠어. 근데도 내가 버티는 이유는 34살동안 행복이라는건 기억에 없고 나쁜 기억들만 가득하고 죄없이 늘 벌받는 삶으로 살아온것 같은데 이제는 하늘이 있다면 좋은일 좀 생기게 해주시지..아니 생길꺼야 희망품고 그거하나로 버텨요 나도 언젠간 회복되어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결혼도 하고 평범하게 사는거..근데 이제는 그 희망조차 사라져서 저 또한 사라지고 싶어요..안 살려줘도 되는데..그리고 다들 그것을 바랄텐데..가해자들은 왜 기억을 못할까 정말 기억이 없는걸까 없는척 하는걸까? 피해자는 왜 기억이 생생할까? 기억상실증 그거 어떻게 하면 걸려서 통으로 날라갈까? 지금도 내가 쓴글은 그저 관심을 위한 발악의 글..모두에게 또 저는 상처를 주고 있는 나 자신..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묻고 싶었어요 돌아오는 대답은 뻔하겠지만 저도 제 감정을 모르겠어요 누군가는 내 말을 믿어줄까 하고 써보는 것 같아요 미안합니다

/[email protected]


장우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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