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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란의 쇼미더컬처] ‘흑백요리사2’로 ‘오징어게임’ 넘어서기

중앙일보

2026.01.01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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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란 문화선임기자
총 13부작 중 3회분(1월 6일 공개)만 남겨둔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2’를 보다 보면 또 다른 넷플릭스 히트작 ‘오징어게임’(이하 ‘오겜’)이 절로 떠오른다. 단계별 경쟁을 통과해야 살아남는 서바이벌 구도, 승자독식의 규칙은 기본적으로 같다. 흑수저들이 본명 대신 닉네임을 쓰는 설정 역시 참가자 번호로만 불렸던 ‘오겜’의 익명성을 연상시킨다.

시즌2는 이런 닮은꼴을 한층 노골적으로 밀어붙인다. 비장하게 재도전에 나선 ‘히든 백수저’는 ‘오겜 2’의 기훈(이정재)을 떠올리게 했다. 4라운드 흑수저 패자부활전 ‘라스트 박스’ 미션에서는 ‘오겜’의 핑크 리본 관을 떠올리게 하는 상자가 등장했다. 결정적인 순간은 따로 있다. 2인 1조로 연합전을 치른 직후, 바로 그 파트너와 1대1 사생전을 벌이는 장면이다. ‘오겜 1’에서 생존을 위해 ‘깐부’를 제거해야 했던 ‘구슬치기’의 악몽이, 조금 전까지 같은 재료로 손발을 맞췄던 요리사들 사이에서 재현된다.

‘흑백요리사’ 시즌2의 4라운드에서 같은 조였다가 1대1 사생전을 벌이게 된 선재 스님(오른쪽)과 김희은 셰프. [사진 넷플릭스]
그러나 두 프로그램의 세계는 여기서 갈라진다. 사생전의 결과가 그리 잔혹하지 않다는 점에서다.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오겜’에선 죽고 사는 문제였던 반면에 ‘흑백요리사’에서 탈락자는 명패를 들고 무대를 떠나면 그만이다. 물론 명예를 건 경쟁에서 승리가 아닌 패배를 반길 이는 없다. 세속에 초연해야 할 선재 스님마저 “봐주는 것처럼 보이면 자존심이 상한다”며 진심을 다했다. 그럼에도 결과가 나오자 그는 김희은 셰프가 올라가길 바랐다며 덕담을 건넸다. “저는 사부님의 영원한 제자”라며 눈물을 훔친 천상현 셰프나 “내가 졌어야 했다”며 제자를 다독인 후덕죽 셰프에게 승패는 부수적인 결과일 뿐이었다.

“이 세트장은 다 허구다.” 시즌1에서 최강록이 남긴 이 말이야말로 이 프로그램의 본질을 꿰뚫는 것 아닐까. 결국 이것은 쇼이고, 인생이라는 더 큰 무대에서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연기하며 살아간다. 탈락하든 우승하든, 요리사들은 화면 밖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들이 만든 요리는 폐기되지 않고, 경험과 기술은 현실로 이월된다. 안성재를 대표로 한 심사위원들이 참가자들에게 끊임없이 묻듯, 진짜 남은 과제는 ‘무엇을 만들었고 왜 그렇게 했는가’다. 이 답을 찾는 여정은 넷플릭스 쇼 안에 갇히지 않는다.

“최선을 다했고, 이제 돌아가 내 요리를 하겠다.” 탈락자들의 공통된 이 말에서 이상하리만치 위안을 받는다. 이 세계에 단 하나의 경쟁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나아가 경쟁이 더 넓은 세계로 이끌어주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오겜’은 지독한 성과주의와 물질만능, 비정한 승자독식을 보여줘 ‘21세기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란 평가를 낳았다. 흥미롭게도 그 포맷을 차용하면서 ‘흑백요리사’는 ‘오겜’을 넘어서는 사회를 상상하게 만든다. 새해 벽두에 스스로, 그리고 모두에게 드리는 응원의 말이기도 하다.





강혜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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