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이 밝았다. 2025년은 그야말로 롤러코스터와 같은 시간이었다. 상반기만 해도 정치적 혼란과 글로벌 통상환경의 급변으로 국내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극에 달했지만, 하반기에 접어들자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모습이 나타났다. 국내 정치 안정의 틀이 다시 잡히고, 수출과 주가 등 주요 경제 지표들이 반등했다. 비록 환율 지표의 불안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주요 기관들은 2026년의 우리 경제가 나쁘지 않은 궤적을 그리리라는 낙관적 전망을 하고 있다.
트럼프 관세 부정효과 가시화될 전망…미국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AI는 제조업 AI 전환(M.AX) 등 실속 중심의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중국 산업정책의 전략적 정합성과 집요한 실행력에 맞설 수 있나
산업정책의 효율성마저 뒤처지면 한국은 만년 추격자로 전락할 것
그러나 긍정적 전망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절대 녹록지 않다. 현재의 경제 회복세가 지속의 힘이 있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2026년은 한국 산업이 앞으로도 건실하게 성장할 것인지, 아니면 저성장의 늪에 깊숙이 빠져들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저성장 극복 위해 생산성 향상 절실 올해 경제 성장률에 대해 산업연구원은 1.9%, 한국개발연구원(KDI)·한국은행·국제통화기금(IMF) 등은 1.8% 수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보다 더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 기관들도 여럿 있다.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이라 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이 1.8% 내외임을 감안하면, 이는 우리가 가진 역량을 전부 발휘했을 때 도달할 수 있는 수치다. 그 정도면 선방하는 성적표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2% 미만의 성장은 선진국 기준으로 봐도 명백한 저성장 국면이다. 더 큰 문제는 미래의 경로다. 한국개발연구원은 2040년께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0%대에 진입할 것이라는 경고를 내놓은 바 있다. 특히 국내총생산(GDP) 통계에는 노후 자본을 대체하는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실질적인 생활 수준의 하락은 통계상의 0% 성장보다 훨씬 이른 시점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뜻이다.
잠재성장률을 결정하는 세 가지 축인 노동·자본·생산성 중에서 노동은 인구 절벽으로 곧 마이너스 요인으로 돌아선다. 자본투자 역시 성숙기에 접어든 우리 경제 구조상 큰 기여를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유일한 돌파구는 생산성 향상에서 찾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총요소생산성(TFP) 증가율은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며 최근에는 0.6%대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에 우리보다 생산성이 이미 두 배 가까이 높은 미국의 총요소생산성 성장률이 1.5%에 달했음은 생각해 볼 지점이다.
단순히 기술혁신 투자를 늘리면 해결되는 일도 아니다. 우리의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중은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다. 그러나 산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 기업이 고난도의 특허를 획득하더라도 실제 매출이나 이익으로 연결되는 비중은 미국 기업보다 현저히 낮았다. 좋은 구슬을 만들어도 제대로 꿰지 못하는 셈이다. 시스템 전반의 효율성을 빠르게 제고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멈춰 설 것이다.
시차 두고 찾아올 트럼프 관세 영향 2025년 4월, 이른바 ‘해방의 날’ 선포와 함께 시작된 트럼프 정부의 상호관세 폭격은 당초 우려보다는 파괴력이 크지 않았다. 지난해 미국의 실질 평균 관세율은 10% 초반대에 머물렀고, 다른 국가들은 보복관세에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유일하게 중국이 보복에 나서자 미국 측도 속도를 조절했다. 오래 쌓아 올린 세계 무역구조가 단숨에 붕괴하지는 않는다는 학습 효과를 얻은 한 해였다.
하지만, 관세가 미국과 세계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는 시간을 두고 나타날 것이다. 지난해에는 관세 부과 이전에 급증한 선구매 수요와 사업자의 일시적 가격조정 억제가 완충 역할을 했다면, 올해부터는 관세 효과가 본격적으로 기업의 실적과 미국 소비자 물가에 전이될 것이다.
물론 단기적으로 관세 충격을 상쇄할 요인들도 많다.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이 식지 않고 있으며, 이자율 인하에 우호적인 미 연준 의장의 취임,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의 대규모 감세와 지출이 수요 위축을 막을 것이다. 트럼프가 얻어낸 대미 투자 약속 이행도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경기 하강을 막는 방어막이 될 것이다.
진짜 위기는 그 이후다. 무리한 확장 재정으로 비대해진 미국의 국가부채와 관세로 인한 비용 상승으로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오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심화할 수도 있다. 미국 경제와 긴밀히 동조화된 우리 산업계로서도 올해를 단단히 준비하는 시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제조업 우선순위의 AI 전략 필요 AI 열풍은 2026년에도 산업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다. 버블에 대한 경고음이 끊이지 않지만, 유망 기술이 산업의 중심부로 진입할 때 겪는 통과의례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래도 조정의 폭과 시기에 따라서는 관련 산업의 충격이 클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국가자원의 상당 부분을 AI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최대한 효율적 투자로 성공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한국은 최근의 반도체 수요 폭증으로 AI 열풍의 주요 수혜국이 되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의 위기설까지 돌았지만, 메모리 반도체의 전략적 가치는 오히려 더욱 공고해졌다. 여기서 얻는 교훈은 명확하다. 첫째, AI 혁신의 열매는 AI 그 자체보다는 우리가 이미 강점을 지닌 분야와 연계될 때 크게 열릴 것이다. 둘째, 산업의 변화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과 속도로 전개되며, AI에 대해서도 급한 마음보다는 실속 중심의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한다.
두 가지 모두 제조업을 우선순위에 둔 AI 전략 추진 필요성을 시사한다. 제조업은 우리가 가장 강점을 지닌 분야로, AI에 필요한 요소들을 공급하면서 동시에 AI로 얻어질 혁신의 주요 수요처다. 위험관리 관점에서도 AI가 근본적 변화로 이어질수록 제조업이 이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에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정부가 제조업 AI 전환을 위한 M.AX(Manufacturing AI Transformation) 전략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바람직하다.
중국 산업정책 성공에서 얻는 교훈 중국은 두려운 존재다. 세계 1위의 제조업 생산국이라거나, 무역흑자가 1조 달러를 넘는다거나, 첨단 산업에서도 미국과 경쟁하는 나라가 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이 그동안의 산업 정책을 통해 보여준 전략적 정합성과 집요한 실행력에 우리가 충분히 맞설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한 예로 중국이 탄소 감축이라는 국제적 압박을 선진국을 추월할 기회로 삼은 사례는 정교한 산업 정책의 승리라 할 만하다. 국제사회에는 자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달성할 만한 수준의 목표를 제시했다. 전기차·배터리·태양광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 기술혁신, 수요 창출, 인프라 구축, 자금 지원 등 전방위적 육성에 나섰다. 그 결과로 이들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호령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2030년으로 잡았던 탄소 피크 목표도 조기 달성하였다. 이러한 성취는 환경 보호에 대한 도덕적 의지 때문이 아니라 철저한 계산의 산물이다. 다른 국가에서는 논란의 대상이 되는 원전 건설을 10년 사이 5배나 늘릴 정도로 공격적으로 접근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인 한국에서 중국과 같은 일방적 정책의 추진은 어렵다. 그러나 지금까지와는 차별된 수준의 정교하고 적극적인 산업 정책의 필요성은 크다. 중국의 산업은 우리보다 젊고, 투입할 수 있는 자본과 인재의 규모도 다르다. 정책의 효율성마저 뒤처진다면 우리는 곧 만년 추격자로 전락할 것이다.
국가 전략의 정교한 재설계 필요 이제는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 첫째,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주력 산업의 전열을 재정비하고, 반도체·조선·방위산업 등 국제 정세와 밀접하게 연계된 부문은 민관 협력의 수준을 한 차원 더 고도화해야 한다. 둘째, 연구개발 투자가 기술혁신으로 그치지 않고, 시장 수요 창출과 공급망 확보로 이어지는 유기적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생산성을 제약하는 규제를 성역 없이 재검토해야 한다. 노동의 경직성, 신산업 진입의 허들, 과도한 환경비용 부담 등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
올해는 한국 경제에 불어닥칠 거대한 태풍을 앞둔 마지막 정비의 해가 될 수 있다. 산업계와 정부가 일체가 되어 2026년을 진정한 전환의 해로 만들어가기를 간절히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