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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택배 배송시간, 일할 권리와 국민 편의 존중을

중앙일보

2026.01.0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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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택배의 배송 시간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정부 정책이 가닥을 잡아가는 듯하다. 일상화된 새벽배송이나 주 7일 배송이 금지된다면 그동안 서비스를 이용해온 2000만 명의 소비자는 엄청난 불편을 겪을 것이다. 새벽배송 금지, 주 7일 배송 금지 등은 노동계 편향적인 거대 여당을 등에 업고 특혜적 지위를 누리는 노동계의 이기적 행위다. 상대적으로 젊고 택배 경력이 짧은 많은 택배기사가 조금이라도 더 벌려고 하는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다.

새벽배송, 주 7일 배송 금지 추진
비노조 택배기사 소득 감소 우려
물류비용, 자영업·직장인에 전가

한국노동경제학회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했더니 야간택배 기사의 월평균 소득은 581만원으로, 주간택배 기사의 소득보다 월등히 높았다. 야간택배 기사 중에 약 10%는 월 900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53%는 지금의 소득에 ‘만족 이상’이라 답했으며, 66.3%는 야간택배 업무를 시작한 이후 생계가 나아졌다고 답했다. 이들이 야간배송을 선택한 주된 계기는 ‘수입이 좋아서’가 51.5%였고, 최대 장점으로 ‘원활한 교통과 적은 방해로 인한 높은 업무 효율’을 꼽았다. 야간택배 기사 중에 78.2%는 향후에도 지금의 업무를 지속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쿠팡의 많은 택배기사는 2023년 민노총을 탈퇴했다. 민노총 산하 쿠팡택배노조 조합원 수는 수백 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벽배송이나 주 7일 배송 금지는 사업자 신분인 비노조 택배기사의 일자리를 빼앗아 소득을 깎고, 민노총 소속 노조원들의 소득을 높이려는 의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노동경제학회 연구에 따르면 심야배송이나 주 7일 배송이 금지되면 상당수 택배기사가 생계유지를 위해 택배 외에 다른 부업 등 대체 일자리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야간배송 불가시 대처 방안에 대해 ‘배송 외 다른 물류 야간 업무로 전환’하겠다는 응답자가 45%, ‘물류와 무관한 다른 야간 업무로 전환’하겠다는 응답이 8.4%였다. ‘주간 배송 업무 등 주간업무로 전환’은 32%에 그쳤다.

응답자의 40%는 줄어든 소득 보전을 위해 업무 시간을 늘리겠다고 응답했다. 이렇게 되면 총근로시간 증가로 이어져 근로자들의 건강권과 휴식권이 실질적으로 더 악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주 7일 배송이 금지되더라도 수입 보전을 위해 다른 일자리를 찾게 되면, 주 52시간 제도 도입으로 인해 많은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근로자가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니라 ‘투잡(Two Job)’으로 생활이 오히려 엉망이 됐던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추가적인 택배기사 고용으로 인해 증가한 물류비용은 배송시간 규제로 물자 조달이 어려워진 소상공인이나 생활용품 구입이 어렵게 된 직장인, 특히 맞벌이 부부에게 전가될 우려가 높다. 국민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다. 한국로지스틱스학회 연구에 따르면 새벽배송과 주 7일 배송 규제시 최대 54조3000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미국 나스닥 증시에 상장된 K-물류산업 기업들의 경쟁력에도 타격을 줄 것이다. 미국 아마존 등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새벽배송은 물론 1시간 내 배송 같은 초고속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야간택배 기사들은 배송시간을 규제하려는 정부 정책에 대부분 반대한다. 87%는 택배기사의 업무시간(주간·야간)은 본인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답했고, 85%는 새벽배송을 포함한 야간배송을 법이나 지침 등으로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보고 있다. 택배기사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심야시간대에 배송을 제한해야 한다고 찬성한 비율은 7.4%에 그쳤다. 민노총이 대안의 하나로 제시한 주간·야간 배송 교대제 도입에도 90% 이상이 반대했다.

결론은 자명하다. 정부가 택배기사 건강권 보호를 명분으로 삼아 90% 이상이 반대하는 새벽배송 제한, 주 7일 배송 금지 등 업무시간을 규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비노조원의 소득을 줄이고 노조원의 소득을 올린다면, 한 푼이라도 아쉬운 젊고 경력 짧은 택배기사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태다. 영세 자영업자의 생존권도 위협하고 국민 생활을 불편하게 만들며, K-물류산업의 경쟁력도 해칠 것이다. 택시기사도 심야 영업을 하고 있는데, 유달리 택배기사의 건강권에 집착하는 것은 논리적 타당성이 떨어진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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