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에너지 대전환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원전 논쟁을 하다가 5년을 다 보내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지난해 12월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탄소중립과 바람직한 에너지믹스’ 정책토론회.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의 인사말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문재인 정부의 실패’에 대한 자성이었다. 이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새울 3호기의 운영을 허가했다. 문 정부 시절 공사가 중단되는 등 사연이 많았던 원전이다. 속도를 내는 인공지능(AI) 산업에 전력 수요 폭증이 예고된 상황에서 그나마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문재인 정부 답습 않겠다지만
‘적당한 실용주의’로는 역부족
더 과감해지고, 더 유연해져야
문 정부의 ‘탈(脫)원전’은 이재명 정부에서 ‘에너지믹스’로 대체됐다. 하지만 그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났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문제는 신규 원전인데, 기후부는 이미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담겼던 2기의 원전을 사실상 원점 재검토로 돌려놓았다. 정책토론회 역시 이를 위한 이른바 ‘공론화’의 시작이었다. 공론화가 갈등을 관리하는 장치라고는 하지만 골치 아픈 결정을 미루는 수단으로 활용됐던 것도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때 흔히 벌어진 일이었고, 이날 토론회 현장에서도 같은 의심이 제기됐다. 한 기업인은 “에너지믹스도 중요하지만 철강 등 기간산업이 죄다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경쟁력 있는 에너지를 확보할지, 앞으로 뭘 먹고살지도 고민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 정부는 시작부터 문재인 정부를 의식했고, 차별화하려고 했다. 대선 직후 만난 경제 분야 핵심 관계자는 “우리는 문 정부와 다르다. 아마추어나 설익은 이론가가 발 붙일 곳은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들이 보기에도 문 정부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특히 경제, 즉 먹고사는 문제에서의 실패가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뼈아픈 결과를 낳았다는 공감대가 현 정부 내부에 있었다. 그리고 그 핵심 요인을 이념의 도그마에 빠진 아마추어적인 국정 운영에서 찾고 있었다. 이 정부가 실용주의와 함께 유능함을 유독 강조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를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먹사니즘’이 유일한 이데올로기여야 한다”는 말로 정리하기도 했다.
정권 출범 6개월이 지난 지금, 공언했던 차별화는 과연 성공하고 있을까. 경제팀의 핵심 포스트를 채운 인사들의 결은 사뭇 다르다. 정부와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는 케인지언 성향의 인사들이 포진한 건 과거와 유사하다. 하지만 ‘소득주도 성장’처럼 족보에도 없는 이론을 내세우는 이들이 전면에 나서는 일은 없었다. 배경훈 과학기술 부총리,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등 기업을 거친 인사들도 내각에 다수 진출했다.
하지만 원전 논란에서 보이듯 완연한 실용주의로 돌아섰다고 보기도 어렵다. 특히 결정적 장면에서 멈추고 주저하기 일쑤다. 대통령과의 각종 간담회에 참석했던 기업인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기업들이 처한 현실을 예상보다 더 소상히 파악하고 있고, 실용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려 한다고 한다. 하지만 건들지 말아야 할 ‘레드라인’도 확실하다고 한다. 대표적인 게 핵심 지지층인 노동조합과의 이해관계다. 그러니 글로벌 무한경쟁에 내몰린 반도체 업계의 호소에도 ‘주 52시간 예외’는 결국 수용되지 않았다. 기업들의 투자와 구조조정까지 불확실성의 함정에 빠뜨릴 노란봉투법도 3월 3월 시행된다.
돌이켜보면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단지 무능함에서만 비롯된 건 아니었다. 더 본질적인 건 무책임이었다. 지지층이 열광하는 선심성 정책에만 열을 올리고, 표는 안 돼도 꼭 해야 할 ‘궂은일’은 미루고 방기했다. 그 실패가 누적된 결과가 악화한 재정과 만성화한 저성장, 심화한 양극화라는 이재명 정부가 맞닥뜨린 환경이다. 멈칫거리고 주저하는 ‘적당한 실용주의’로는 돌파하기 어려운 위기다.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더 과감해지고, 더 유연해지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