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1세기께, 신(上帝)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세계관으로 살던 시대에 주(周)나라가 상(商)나라를 멸망시켰다. 상나라나, 주나라나 각각의 멸망과 건국이 신의 뜻임을 구성원들에게 설명해야 했다. 신은 덕(德)이 사라진 곳을 버리고, 덕이 있는 곳에 찾아든다는 새로운 관념이 생겼다. 상나라는 덕을 잃었기 때문에 신이 떠나버려 멸망했고, 주나라는 덕을 지켰기 때문에 신이 찾아와 건국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덕은 자신을 자기자신이게 하는 힘
덕 상실하면 직업을 꿈으로 착각
나라 흥망, 국민 개개인의 덕에 달려
자신을 묻는 질문이 나라 살리는 길
상(商)과 주(周)의 교체기에 출현한 ‘덕’이라는 개념으로 인간은 제한적으로나마 신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격이 높아졌다. 덕은 신과도 통할 수 있는 순수한 인간의 본질이자 자기를 자기로 지키는 힘이다. 덕이 없어지면 자기 자신도 무너지고, 나라도 멸망한다. 덕이 있으면 자기 자신도 탁월함에 이르고, 나라도 번영한다.
민주주의로 번성하던 아테네는 어느 순간 쇠퇴기로 접어들었다. 어느 나라나 쇠퇴기에 들면 ‘말의 질서’가 무너질 뿐만 아니라 올바름이 객관적 기준을 잃고 각자의 이익에 따라 해석되는 상대주의에 빠진다. 이것을 중우(衆愚)정치라고 한다. ‘중우’를 ‘어리석은 대중’이라 직역하기도 하지만, 의미는 ‘자아를 상실한 자들’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자기를 자기이게 하는 힘인 덕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정해진 마음’이나 돈, 명예, 권력, 진영 등의 피상적인 것을 삶의 기준으로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영혼이 어떤 상태인지 돌보지 않는다. 덕(德)을 아테네 사람들은 아레테(Aretē)라고 했다.
플라톤은 “국가는 그 구성원들의 ‘성격(ēthē)’으로부터 생겨난다. 그 성격의 기울어짐이 나머지 모든 것을 자기 방향으로 끌고 간다”고 말한다. ‘에테(ēthē)’는 에토스(ēthos)의 복수형이다. 에토스는 도덕적 기질이나 성격, 품성을 가리킨다. ‘성격의 기울어짐’은 에토스가 아레테의 지도 여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남을 함축한다. 아레테의 지도를 받은, 즉 덕을 지키는 방향으로 형성된 기질은 자신뿐 아니라 나라에도 질서 있고 성장하는 기운을 주지만, 아레테의 지도를 받지 않은, 즉 덕을 지키지 않은 방향에서 형성된 기질은 그 반대라는 뜻이다. 정리하면, 국가는 구성원의 기질(에토스)에 의해 결정되는데, 기질의 핵심은 덕(아레테)을 갖췄느냐의 여부다. 따라서 개인의 덕(아레테)을 회복하는 것만이 무너져 가는 국가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나라를 바로 세우려면 우선 내면의 덕성을 지키는 일부터 해야 한다는 뜻을 담아,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플라톤은 경고한다. 만일 자신으로 돌아가는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자신의 덕을 돌보지 않은 채, 말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철이나 동의 기질을 가진 자가 통치하게 되는 날, 그 국가는 파멸할 것이다.” 망해 가는 자신의 나라, 명(明)나라를 보면서 “나라의 흥망은 필부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한 고염무의 말도 이런 맥락에서 쉽게 이해된다. 한 나라의 흥망은 전적으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덕이 어떠한가가 결정한다는 웅변이다.
덕은 자신을,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게 하는 힘이다. 이 힘을 통해서 인간은 언제나 ‘지금의 자기’를 넘어서려는 야망을 갖는다. 꿈이라고도 부르는 이 야망이 우리를 혁신하고 도약하게 한다. 왜냐하면 꿈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을 하나 차지해서 수행하려는 기능적인 태도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려는 창의적이고 존재론적인 도전이기 때문이다.
덕이 상실돼 꿈을 잃은 상태에서는 직업을 꿈으로 착각한다. 예를 들어, 검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사람은 검사가 되는 순간 꿈을 이뤘기 때문에 할 일을 다 한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이런 느낌에 사로잡히는 순간 존재론적인 성장은 멈춘다. 지위가 올라가는 성장은 모르겠지만 영혼이 튀어오르는 성장은 없다. 내 내면이 나에게 하는 소리는 들을 수 없게 되고 돈, 자리, 권력, 진영 등의 피상적인 것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더 무서운 것은 ‘덕’이나 ‘영혼’이나 ‘내면’이나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자신의 소리’ 등등의 표현이 한없이 사소하게 들려버리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렇게 영향력이 크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헤르만 헤세)이지만, 자기 자신을 향해 걷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기도 하다. 덕을 잃기는 쉬워도, 덕을 지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다음의 몇 가지 질문을 자주 해보는 일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자기 얼굴을 자신에게 이르는 길 쪽으로 향하게 할 수는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죽을 때까지 완수하고 싶은 나의 소명은 무엇인가?” 이 질문들이 나라를 살리는 길에 드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