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출액이 지난해 사상 처음 연간 7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전 세계 6개국만 도달한 고지다. 하지만 손뼉만 칠 상황은 아니다. 반도체 착시에 가려진 구조적 문제가 여전한 데다 높아지는 각국의 무역 장벽도 부담을 키운다. 미국의 관세와 유럽의 환경 규제가 본격적으로 실적에 반영될 올해가 진정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1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수출액은 전년 대비 3.8% 늘어난 7097억 달러(약 1027조원)였다. 이 가운데 반도체 수출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 제품 수요 강세, 메모리 고정가격 상승 등이 맞물려 전년 대비 22.2% 증가한 1734억 달러를 기록했다. 전체 수출액 중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4.4%. 이전 기록(2018년 20.9%)을 훌쩍 뛰어넘었다.
특히 전체 수출은 전년 대비 261억 달러 증가했는데, 반도체 수출은 315억 달러 늘었다.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는 수출이 1% 줄었다. 반도체 착시가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수출 부진을 가리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AI 데이터센터 건설로 세계 반도체 수요가 급증했지만, 수익성은 미국 내에서도 의문부호가 붙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전반적으로 수출 여건은 지난해보다 불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올해 ‘반도체 수퍼사이클’ 효과가 약해진다면 반도체를 대신해 한국 ‘수출호’를 이끌 동력을 찾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반도체 다음으로 수출 효자 역할을 한 건 자동차였다. 수출이 전년 대비 1.7% 증가한 720억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관세 부과 영향으로 최대 시장인 미국으로의 수출은 감소했지만, 지역별로는 유럽연합(EU)·독립국가연합(CIS), 품목별로는 친환경차 및 중고차 등으로 다변화에 성공했다. 전년 대비 24.9% 증가한 선박(320억 달러)과 무선통신기기(173억 달러)도 제 몫을 했다.
문제는 갈수록 높아지는 무역장벽의 영향권이라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EU가 추진 중인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다. EU로 수출하는 철강·알루미늄·시멘트 등에 탄소 배출량에 비례한 비용을 관세처럼 부과하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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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수출, 단순히 많이 하자 아닌 경제안보도 고려를”
EU는 적용 품목을 자동차 부품, 냉장고 등으로 확대하겠다고 예고했다. 당장 올해부터 수출 가격에 이를 반영해야 하는데 가격 경쟁력 하락이 불가피하다.
EU는 또 올해 7월부터 기업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을 각 회원국 국내법으로 전환한다. 인권·환경 등의 분야에서 EU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거래 자체가 어려워지는 중대한 변화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미국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대법원 판결, 중국 대외무역법 개정 등 변수가 적지 않다”고 짚었다.
관세 압박도 미국 이외의 나라로 확산할 조짐이다. 캐나다는 지난달부터 한국을 포함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 대한 철강 저율 관세할당(TRQ) 적용 기준을 축소했다. 전년도 수출량의 75%를 초과하면 50%의 관세를 추가로 내야 한다. 멕시코 역시 새해부터 FTA 미체결국을 대상으로 자동차 부품과 섬유 등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인상했다.
전문가들은 수출 품목 및 시장 다변화와 ‘포스트 반도체’를 이끌 고부가가치 품목 발굴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권남훈 산업연구원장은 “핵심기술과 공급망 안정성 확보 등이 절대적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단순히 ‘수출을 많이 하자’가 아니라 국가·경제권별 정책 변화와 경제안보를 고려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나마 한류 열풍을 발판 삼아 K푸드와 K뷰티가 역대 최대 수출을 내며 선전하는 게 위안이다. 농수산식품의 경우 지난해 수출이 124억 달러로 10년 연속 플러스 성장했고, 화장품도 114억 달러로 12.3% 증가했다. 국가별로 보면 아세안 지역으로의 수출이 7.4% 증가하는 등 지역 편중을 다소 해소한 것도 성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