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4일부터 3박4일간 중국을 국빈 방문한다. 뒤이어 이달 중순 일본 나라현에서 한·일 셔틀외교를 이어간다. 지난해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대미 통상 문제 타결이란 급한 불을 끈 뒤 중국·일본과의 관계 다지기에 나선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외교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국빈 방중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이후 9년 만이다. 한·중 관계의 재정립이란 무거운 과제가 놓여 있다.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한한령(限韓令) 등의 보복 조치로 갈등이 깊어졌고, 미·중 패권경쟁이란 글로벌 환경이 더해져 한·중 관계는 풀리지 않는 고차방정식이 되어버렸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이 신속하게 성사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엊그제 한·중 외교부 장관 통화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한 발언이 그런 현실을 대변한다. 왕 부장은 “한국 측이 올바른 입장을 취하고 국제 정의를 수호할 것이라 믿는다”며 “대만 문제를 포함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준수해 달라”고 말했다. 이번 방중을 계기로 대만 문제에 대한 분명한 입장 표명을 해야 한다는 요구 내지 무언의 압박이 담긴 발언인 셈이다. ‘하나의 중국’ 존중은 한·중 수교 당시부터 한국이 견지해 온 원칙이지만, 원론적 수준에서 더 나아간 입장 표명을 하기란 대단히 난감하다. 중국이 지난 연말 강도 높은 대만 포위 훈련을 실시했고, 시진핑 주석이 신년사에서 ‘조국 통일’을 강조해 2027년 무력침공론까지 거론되고 있는 데다 최근 대만 문제로 인해 중·일 관계가 험악해졌다. 이런 상황에선 한국이 어떤 입장을 내느냐에 따라 국제 사회에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며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중국은 박근혜 정부 시절 안중근 기념관 건립 등으로 한국 여론의 호응을 얻으며 한·중 연대를 강조한 적이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천안문 망루에까지 서면서 중국을 중시했으나 사드 배치 이후 호된 보복조치를 당했다. 문재인 정부는 한·중 관계 복원을 장담하며 “중국은 큰 산…”이란 식의 저자세 외교까지 마다 않았지만 돌아온 것은 ‘혼밥’ 푸대접 외교였다. 이 과정에서 얻은 값비싼 교훈을 망각해선 안된다.
반대로 우리가 재확인을 요구해야 할 원칙이 있다. 중국이 한달여 전 발행한 군사 백서에서 ‘한반도 비핵화’란 표현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북핵 문제 발생 이래 초유의 일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기대하고 협력을 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비핵화 원칙 없는 대화는 공허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과제는 산적해 있다.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과 서해 구조물 문제는 주권과 직결된 사안이다.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도입이 사드 사태처럼 갈등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불필요한 오인을 차단해야 한다. 한한령도 해결해야 하는 숙제다. 전세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K컬처가 유독 중국에서만 공식적으론 막혀 불법적 경로로 소비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묵과할 수 없는 손실이다. 우리가 일본 대중문화 상품을 개방한 것이 오늘날 K컬처 성장의 계기가 됐다는 점을 들어 한한령 해제가 중국에도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득해야 한다. 이번 방중에 4대 그룹 총수와 200명 규모의 경제사절단이 동행하는 만큼 경제협력도 다시 끌어올려야 한다.
국민이 거는 기대는 분명하다. 원칙과 실리를 결합한 실용외교로 국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 본인이 신년사에서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 9년만에 실현되는 중국 방문과 뒤이은 일본 방문에서도 이 원칙은 확고하게 지켜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