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잡아먹은 X, 내가 왜 키워"…법정서 귀 막던 10살 사연
중앙일보
2026.01.02 13:00
2026.01.02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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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났던 가정폭력 가해자들에겐 공통된 성향이 있었다.
" 그 죽일 년이 맞을 짓 했다고요! "
" 사랑하니까 그런 거죠. 관심이 없으면 때렸겠어요? "
그들은 자신의 행위를 폭력이 아닌
‘훈육’이나 ‘사랑의 표현’으로 왜곡했다.
교도소에 모인 수백 명의
범죄자들도 마찬가지다.
반성하는 척이라도 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상당수는 웃고 떠들고, 피해자 탓을 하며,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하루를 보낸다. 뉴스에 나왔던 가정폭력범, 622번도 그랬다.
622번의 방을 검사하기 위해 문을 열었다. 세면대 밑 구석에는 먹지 않은 약봉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대충 세어봐도 수십 봉은 족히 넘었다. 고지혈증약·혈압약·수면제·소화제…. 멀쩡한 약들이 비닐봉지째 구겨져 있었다.
" 이게 뭡니까? "
남자는 귀찮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 약이요. 보면 모릅니까? "
" 왜 버렸습니까? "
남자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
" 내가 버리든 말든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공짜잖아요. 다시 가져가시든지. "
나는 약봉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고지혈증약, 한 달 분량.
교도소에서 무료로 지급한 약이다.
남자가 돈이 없어 지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의 영치금 계좌엔 300만원이 들어 있다.
" 약 버리지 마세요. 그게 반성하는 태도입니까? "
나도 모르게 감정 섞인
말을 남기고 그의 방을 나왔다.
철문이 닫히는 순간,
뒤에서 남자가 벽을 주먹으로 치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를 걸으며 생각했다.
복도에 나열된 여러 개의 방.
이들의 피해자는 지금도
숨을 쉴 때마다 고통스러울 텐데,
남자는 따뜻한 방에 앉아 공짜 약을 버리고 있다니.
피해자들이 이 사실을 알까.
교도소 안은 그렇게,
TV 뉴스가 끝난 후의 세계였다.
며칠 후,
622번과 다시 마주쳤다.
그의 재판에 동행하게 된 것이다.
호송차 안에서도 남자는 계속 투덜거렸다.
법정에 도착하자,
판사가 앉기도 전에 남자가 말했다.
" 아내가 외도했는데, 제가 왜 참아야 합니까? "
남자는 자신이 얼마나 억울한지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방청석에서 누군가
악을 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무슨 소리야! 당신이 먼저 바람 피웠잖아! "
방청객들 사이에서
목에 보호대를 두른 남자의 아내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쏘아봤다.
" 애는 네가 키워. "
남자가 내뱉었다.
" 내가 왜? 너만 새출발하겠다고? "
여자가 되받아쳤다.
" 너 지금 뭐라고 했냐? "
" 지금 나한테 부담 떠넘기려는 거 아니야! "
판사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망치를 두드렸다.
" 재판을 방해하면 감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증인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두 사람은 법정 밖으로 나가 계세요. "
두 사람의 관계에 목격자라도 있는 것일까.
법정 문이 열렸고,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분홍 머리띠에 노란 원피스를 입은 아이.
바로 부부의 딸이었다.
아이는 변호사와 함께
씩씩하게 증인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검사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집에서 엄마 아빠가 싸울 때 뭐 했어? "
검사의 질문에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사리만 한 손으로 귀를 막는 시늉을 했다.
" 이렇게요. "
이번엔 피고인의 변호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아빠가 널 때린 적도 있어? "
아이의 팔뚝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팔을 뒤로 숨기며 무언가 결심한 듯 말했다.
" 아니요! 우리 아빠는요, 엄청 좋은 분이에요! "
뜻밖의 증언이었다. 예상과는 다른 아이의 대답에 법정은 조용해졌다.
(계속)
그로부터 두 달 후, 622번의 아내도 구속됐다. 아이의 증언 이후, 이 가족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부모 잡아먹은 X”라는 욕설은 누가, 왜 아이에게 퍼부었을까.
끝내 병원에 입원하게 된 아이의 사연,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91839
김도영.선희연([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