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20학번 김모(24)씨는 최근 졸업 앨범 촬영을 포기했다. “모르는 사람의 얼굴이 가득한 졸업 앨범을 약 10만원이나 주고 구입하기 싫었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졸업 10개월 전 벚꽃이 핀 캠퍼스를 배경으로한 ‘셀프 사진’만 남겼다. 촬영은 사진 관련 일을 하는 지인에게 부탁했고, 졸업 가운은 학교에서 대여했다. 김씨는 지난 1일 “비대면 수업을 들으며 학과 동기·선배와 친해지지 못한 탓에 앨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며 “대신 저렴한 값에 더 자유로운 분위기의 사진을 얻은 것 같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대학가에 ‘졸업 앨범’이 사라지고 있다. 연세대의 지난해 8월 졸업생과 오는 2월 졸업 예정자 가운데 앨범 촬영을 신청한 학생은 1053명이다. 이는 한 해 학부 졸업생의 25% 수준이다. 수년간 서울 소재 대학의 졸업 앨범을 제작해온 업체 관계자는 “2500~3000명 수준이었던 신청자 수가 특히 올해 급격하게 준 것 같다”며 “고려대학교의 경우 올해 앨범 촬영 신청자 수가 1000명 미만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이화여대 졸업준비위원회는 기말고사가 끝나지도 않은 지난해 11월부터 학생들의 앨범 제작 참여를 독려했다. 제작에 필요한 최소 인원이 충족되지 않은 탓이었다. 몇일 간의 독려 끝에 겨우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경북대·부산대·전북대는 일찍이 졸업 앨범 제작을 중단했다.
이러한 추세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거친 20·21학번의 졸업 시기가 다가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수도권의 한 대학 관계자는 통화에서 “이른바 코로나 학번 학생들끼리 자주 모이지 못해 유대 관계가 느슨해졌다”며 “소속감이 낮아지면서 굳이 모르는 학생의 이름·얼굴이 들어간 졸업 앨범을 구매하고 싶은 마음도 자연스레 사라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5월 국가데이터처 조사 결과에 따르면 4년제 기준 대졸자의 평균 졸업 소요 기간은 5년 0.5개월이었다. 이에 따르면 이른바 코로나 학번은 2026년 2·8월에 다수 졸업할 예정이다.
모르는 이들에게 본인의 사진이 공개되는 걸 꺼리는 점도 앨범 기피 사유 중 하나로 꼽힌다. 대학생 김상규(24)씨는 “최근 AI·딥페이크 등 디지털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만큼 본인의 사진이 악용될 걱정에 앨범을 선택하지 않는 선·후배들이 많다”고 말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10월까지 발생한 사이버성폭력 3411건 가운데 딥페이크 범죄(1553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지난 1년간 접수된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 중 20대가 절반(45.9%)이었다.
오는 2월 졸업 예정인 고려대 재학생 유호연(25)씨는 “부모님 세대와 달리 요즘은 여러 이유로 앨범의 소장 가치를 느끼기 어려워진 것 같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인이 되기 전 마지막 모습을 남기고 싶다는 소망 자체는 다들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학생들 사이에선 개별적으로 사진을 촬영한 후 개인 소장을 하는 ‘스냅 촬영’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스냅 촬영이란 ‘스냅샷(Snapshot)’에서 유래된 것으로, 연출 없이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찍는 사진을 의미한다. 고급 사진을 위해 수십만원을 내고 전문 사진가를 고용하거나, 지인을 통해 저렴하게 찍기도 한다. 오는 2월 졸업 예정자인 최목원(23)씨는 “정해진 규격에 맞춰야 하는 앨범보다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스냅 사진을 미리 찍는 것이 뉴노멀이 됐다”며 “사진과 별개로 촬영하는 순간 자체가 잊지 못할 추억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