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울주군 범서읍 입암마을은 '독립운동가 마을'로 불린다. 이관술·이우락·손후익·손진인·손학익 등 5명의 독립운동가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이관술 선생과 손후익 선생은 마을 한편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던 이웃이기도 했다.이관술 선생은 경성반제동맹사건 등으로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며, 손후익 선생 일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독립자금 조성 활동에 힘을 보탰다. 이우락 선생은 제2차 유림단 의거에 참여한 독립유공자다.
이런 입암마을 입구에 최근 현수막이 내걸렸다. '입암의 독립운동가 이관술 재심 무죄, 79년 만에 명예회복 환영'. 입암마을 이상구(59) 청년회장은 "마을 어르신 가운데 이관술 선생만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했다"며 "이번 재심을 계기로 정당한 평가와 예우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처형됐던 이관술 선생이 최근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고향 울산에서 국가유공자 서훈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울산시청과 울산교육청 앞 도로에 '독립운동가 이관술 재심 무죄 확정', '이제는 선양사업에 나설 때'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각각 게시됐다. 시민단체도 가세했다.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는 성명을 내고 "정부는 이관술 선생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해 국가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이번 무죄 판결을 역사 교육에도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 역시 뜻을 같이했다. 더불어민주당 울산시당은 최근 낸 논평에서 "이제 남은 과제는 이관술 선생의 79년에 걸친 명예회복"이라며 "무죄 판결 위에 공식적인 국가의 예우가 더해질 때 비로소 진정한 명예회복이 완성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훈 당국은 이번 판결의 무게를 엄중히 받아들이고 독립유공자 서훈 등 신속한 후속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진보당 울산시당도 "이번 무죄 선고는 대한민국 사법부가 역사적 과오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바로잡은 판결"이라며 "정부는 학암 선생에 대한 서훈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위키트리 등에 따르면 이관술 선생은 1945년 10월부터 서울 소공동에 있던 조선정판사에서 200만원씩 6차례에 걸쳐 총 1200만원 상당의 위조지폐를 발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조선정판사는 일제 패망 직전 조선총독부의 조선은행권을 인쇄하던 인쇄소다. 광복 이후 조선공산당이 사용하며 명칭을 조선정판사로 바꾼 곳이다.
당시 경찰과 검찰은 조선공산당 활동 자금 마련과 남한 경제의 교란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 지폐를 위조했다고 판단했다. 조선공산당은 조작 사건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 사건의 주범은 조선공산당 재정부장인 이관술과 '해방일보' 사장 권오직이고, 이들의 지시로 정판사 사장 박낙종과 서무과장 송언필 등이 위조지폐를 인쇄해 유통했다. 이 사건은 조선공산당 총비서 박헌영이 서둘러 월북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이게 해방정국을 뒤흔든 '조선정판사 위조지폐사건'이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는 조선정판사에서 인쇄된 것으로 특정되는 위조지폐는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위조지폐는 이미 시중에 유통되고 있던 지폐였다. 위조지폐를 인쇄했다고 진술한 인쇄공들은 이후 법정에서 해당 진술이 수사 과정에서의 가혹 행위로 인해 이뤄졌다고 증언했다.
이 선생은 혐의를 부인했으나, 1946년 11월 경성지방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후 그는 대전형무소에 수감됐으며,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대전 골령골에서 숨졌다.
이 선생의 외손녀 손옥희씨는 2023년 7월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지난해 10월 재심 개시를 결정했고, 검찰도 지난달 15일 무죄를 구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는 지난달 22일 재심 선고 공판에서 "피고인에 대한 유죄 증거 중 핵심이었던 관련자 자백은 사법경찰관의 불법 구금 등으로 이뤄진 것으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