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의점에는 TV가 있다. 점주가 들여놨다. 그런데 어째 썰렁했다. “맞아요. 손님이 줄었어요.” 지난해 12월 28일 경기도 파주의 A편의점. 점주 이환우(48)씨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편의점에선 노인 한 명만 TV 화면에 시선을 꽂고 있었다.
편의점은 국내에서 가맹점 수가 가장 많은 업종. 온갖 경제지표가 그 진열대에 가득하다. 물가와 소비심리의 최전선이다. 환율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인건비에 고용의 질이 갈리고 고금리 대출금이 점주를 억누른다.
2025년 편의점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지난해 중앙SUNDAY는 신년 특집으로 ‘편의점 블루스’를 게재했다. 이 사장과의 대화로 그 시즌2가 시작됐다.
“편의점주 수입 최저임금 수준도 안 돼”
Q : 근처에 편의점이 몇 개 더 있더군요.
A : “7년 전 제가 먼저 개업했어요. 꽤 잘 됐죠. 다른 편의점 점주들이 와서 ‘같이 살자’고 하더라고요. 제가 ‘힘들 수도 있다’고 했어요. 결국 3년도 못 버티고 한 곳은 폐업했고 다른 한 곳은 폐업 고려 중이라더군요.”
국가데이터처 자료에 따르면 2024년 편의점(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 등 4사 기준) 수는 5만4780개. 한식(5만4400개)을 근소하게, 치킨(3만1400개)은 멀찍이 따돌리고 가맹점 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전년에 비해 48곳이 줄었다. ‘고작’ -0.09%지만, 충격은 크다. 1988년 우리나라에 최초의 편의점이 들어선 이후 첫 감소였기 때문이다. 오린아 LS증권 연구원은 “이미 2017년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편의점 수가 2022년엔 5만3800점으로 포화 상태에 이른다고 예측했고, 시장은 이미 CU와 GS25 톱2 체제로 재편된 상태”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편의점은 더 줄었다. 편의점 톱3를 대상으로 한 산업통상부의 매달 ‘유통업체 동향’에 따르면 점포 수는 2024년 12월 4만8722개에서 지난해 11월엔 4만7826개로 896곳이나 줄었다. 내수 부진에 점포 수가 줄면서 편의점 업계 매출은 지난해 1분기에 분기로는 사상 처음 역성장(-0.4%)한 뒤 2분기(-0.5%)까지 부진했다. 영업이익에서도 CU는 1분기 -30.8% 2분기 -8.9%를, GS25는 -34.6%와 -9.1%를 기록, 톱2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3분기엔 편의점 업계가 다시 성장세로 바뀌었지만 이는 ‘소비 쿠폰’이 살렸다는 게 중론이다. 이 사장은 “그나마 잘 된다는 나도 무척 힘들다”고 했다.
Q : 요새 얼마나 법니까.
A : “하루 매출이 100만원 정도입니다. 1년 전엔 200만원 정도였는데
…. 2년 전 250만원에 비하면 40% 수준이죠.”
Q : 월 매출로 따지면 3000만원인데요.
A : “상품 원가로 70% 정도 나가요. 거기에 부가세, 월회비(가맹점비), 전기세(료)·수도세에 보험료·인건비·월세
…. 무시무시하죠
?(웃음) 그래서 제게 남는 건 한 달에 150만원가량입니다. 이 정도면 접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 사장의 얼굴은 웃음기에서 금세 울상으로 바뀌었다. 그는 “이래서 편의점 점주들이 최저임금도 못 받는다는 것”이라고 말을 이었다. 편의점 세계에서 하루 매출 100만원 이하면 안 되는 거고, 200만원까지는 그럭저럭, 300만원이면 잘 된다고 한다. 이 사장이 “접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 이유다. 물론 매장마다 여건이 다르다.
“편의점에서 사활이 달려 있는 지출은 인건비와 임대료죠.”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은평구의 B편의점. 점주 김모(55)씨는 알바생과 ‘근무 교대’를 막 마쳤다.
Q : 임대료는 어떤가요.
A : “근처 다른 편의점에 비해 20%는 적은 것 같아요. 12년간 20만원씩 두 차례만 올려 240만원가량입니다. 임대인이 ‘대신 공실 만들지 말고 오래 하라’더군요. 다행이죠. 자신 소유 건물에서 운영하면 최고이고, 저처럼 임대료 조금이라도 덜 내면 차상, 임대료에 허덕이면 차악, 본사에서 임대까지 해주면 최악이라고들 하죠.”
지난해 기준 서울시 점포의 월평균 임대료는 450만원 수준. “서울이라도 은평구 외진 곳이라 그보다 훨씬 적은 것”이라고 김 사장은 말했다.
Q : 인건비 부담은요.
A : “고민은 되지만, 알바생 5명에게 일을 시킨 만큼 지출(월 600만원)하는 게 맞죠. 그래야 점주로서 당당하죠. 저까지 포함해 월 120만원 지출하는 4대 보험료가 더 부담되더라고요.”
김 사장 의도와 달리 인건비 부담은 고용의 질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지난해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자는 106만1100명에 달했다. 2년 연속 100만 명을 넘었다. 2015년 29만6300명과 비교하면 세 배 이상. 그중 68.9%(73만1000명)가 60세 이상이었다. B편의점 5명의 알바생들이 해당하는 30세 미만은 17만9200명(16.9%)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마침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률을 중장기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IMF는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을 뜻하는 ‘카이츠지수’가 35%를 넘는 국가에서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고용주들은 인건비를 아끼려 고용 시간(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경향을 보인다고 진단했다. 우리나라 카이츠지수는 지난 6년 연속 60%가 넘었다.
인건비 부담은 편의점의 ‘덕목’ 중 하나인 24시간 운영 폐지를 부르기도 한다. 편의점 네 곳 중 한 곳(GS리테일 2024년 기준 23.6%)이 심야 운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김 사장은 “24시간 영업을 중단할 수 없다”고 했다.
Q : 왜 그런가요.
A : “주택가라서 새벽에도 손님이 있거든요. 담배·술·도시락 등 밤에 파는 상품이 많이 남는 편입니다. 요 앞의 다른 편의점은 인건비 때문에 24시간 영업을 접었지만요.”
파주의 이 사장도 24시간 운영을 하지 않는다. 지방도로변의 한적한 곳이라 해가 지면 손님이 뚝 떨어진다. 그런데도 그가 편의점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Q : 7년을 버티고 있네요.
A : “근처 근로자들이 많이 왔어요. TV를 들여놓은 건 서비스입니다. 편의점도 차별화가 필요하죠. 그래야 손님 한 명이라도 더 오고, TV 보면서 상품 하나라도 더 고르게 되거든요. 식품도 폐기를 각오하고 많이 갖다 놓습니다. 버리는 것보다 판매 기회를 놓치는 게 더 아깝습니다. 제가 들여놓은 양주를 사러 멀리 인천에서도 올 정도입니다. 그렇게 버텼죠.”
Q : 그런데 하루 매출이 100만원으로 뚝 떨어졌군요.
A : “근로자가 많이 줄었어요. 공장과 가게 폐업이 늘었거든요. 근처의 감악산 출렁다리나 낚시터를 찾는 사람들도 예전만 못한 것 같고요.”
이 사장 말대로 2024년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는 100만8282명. 전년(98만6487명)보다 2만1795명 늘며 1995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겼다.
전문가 “내수 진작 선순환 구조 만들어야”
Q : 상품 가격도 줄줄이 올랐는데.
A : “삼겹살이 9900원에서 1만3500원으로 올랐어요. 일부 아이스크림 가격은 4800원에서 5900원으로 인상됐고요. 상품값이 올랐다면 매출액도 올라야 하는데 반대로 떨어지니 힘든 거죠.”
편의점 자체브랜드(PB) 제품은 가성비로 통한다. 그래서 가격 인상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한 편의점 본사에선 올해부터 PB 제품 40여 개 가격을 최대 25%까지 올렸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고환율과 고물가에 따른 원재료비 상승은 편의점뿐 아니라 시장 전반의 상품 가격을 밀어 올리고 소비 위축을 불러 고용 불안정을 심화할 수 있다”며 “이 과정이 악순환하면서 경기에 타격을 입히게 된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연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2.1%. 하지만 구매 빈도와 지출 비중이 높은 품목으로 집계하는 생활물가지수는 이보다 0.3%포인트 높은 2.4%다. 체감 물가가 더 가파르게 올라갔다는 뜻이다. 최 교수는 “수입선 다변화, 유류세 인하 등 세제 혜택, 투자를 통한 공급 확대 등을 통해 내수 진작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6000달러에 수출 7000억 달러
? 다른 나라 얘기 같아요.” 이 사장의 한숨이 날씨처럼 차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