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석이가 떠나기 몇 시간 전에 저와 방송하고, ‘이 노래를 이런 구성으로 하자’ 약속하고 헤어진 게 마지막이 됐습니다.”
4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아르코꿈밭극장.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노래를 마친 박학기가 이렇게 말했다. 김광석 생전 친구, 동료 가수로 가깝게 지낸 그는, 무대 뒤에 김광석의 라이브 영상을 튼 채 이 노래를 불렀다. 둘의 목소리가 포개지자, 객석에선 탄식인지 흐느낌인지 모를 소리가 새어나왔다. 유리상자·동물원 등 김광석과 인연이 있는 가수들이 꾸민 이날 공연은 김광석추모사업회가 그의 30주기를 기념하며 개최한 ‘광석이 다시 만나기’ 콘서트다. 꿈밭극장은 김광석이 1991년부터 1995년까지 매년 라이브 콘서트를 열어 1000회 이상 공연한 옛 ‘학전’ 소극장이다. 객석을 가득 메운 140여명의 청중은 120분이 넘는 공연 시간 동안 김광석을 떠올리며 웃고 울었다.
부재(不在)는 존재의 가치를 드러낸다더니, 김광석이 그랬다. 생전 그의 이름으로 나온 앨범은 8장이지만 사후 그의 이름이 오른 앨범은 10장이 넘는다. 수많은 그의 곡이 리메이크 되거나 드라마 OST로 쓰이며 사랑받고 있다.
음악계에선 6일 김광석 30주기를 맞아 다양한 공연, 앨범 발매가 이어지고 있다. 김광석추모사업회는 4일에 이어 6일 꿈밭극장에서 ‘광석이 다시 부르기’ 공연을 개최한다. 추모사업회가 매년 개최해 온 ‘김광석 노래상 경연대회’의 본선 무대다. ‘서른즈음에’의 작곡가이자 추모사업회장을 맡고 있는 강승원 회장은 “올해 ‘광석이 다시 부르기’ 경연에도 110팀이 원서를 냈고, 7팀이 본선에 올라 1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다”며 “2022년부터는 참가자들의 자작곡도 함께 접수 받고 있는데, 김광석의 음악과 같은 포크부터 국악·펑크록 등 다양한 장르에 바탕을 둔 뮤지션들이 지원하고 있어 김광석의 영향력이 상당히 광범위하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광석 헌정 LP 앨범도 나온다. 6일 음반 제작사 아트버스터는 지난 2014년부터 후배 가수 등이 녹음한 ‘안녕, 광석이형’ 프로젝트의 음원들을 모아 LP로 재발매한다. 앨범에는 ‘거리에서’(조동희), ‘끝나지 않은 노래’(김목인),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한대수) 뿐만 아니라 일반인 팬 101명이 부른 헌정곡 ‘서른즈음에’도 담겨있다. 최성철 아트버스터 대표는 “101명은 모두 김광석의 노래와 얽힌 사연을 보내온 일반인”이라며 “2014년 당시 스튜디오에서 가창자들이 우는 바람에 7~8번을 다시 녹음해야 했다”고 말했다.
김광석 음악의 영향력은 뮤지컬 무대에서도 강력하다. 오는 11일까지 대학로 스튜디오 블루에서 공연하는 ‘바람으로의 여행’은 김광석이 부른 노래 20여곡을 스토리텔링으로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2012년 대구 초연 이후 13년 동안 865회 공연, 누적관객 16만2000여명을 기록했다. 이미 김광석의 노래는 주크박스 뮤지컬 ‘다시, 동물원’ ‘그날들’ ‘서른즈음에’ 등에 쓰이며 저력을 입증한 바 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도 김광석의 팬이었던 영화감독 허진호가 “당시엔 잘 쓰지 않던, 활짝 웃고 있는 김광석의 영정 사진을 보며 아이디어 떠올라 만든 영화”다. 허 감독은 최근 이메일 인터뷰에서 “고인의 일상에서, 그의 죽음과는 다른 밝은 모습이 보인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에 초점을 맞춰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고 밝혔다.
이처럼 김광석이 세대·장르를 뛰어넘어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진정성 있는 가사와 호소력 있는 목소리를 꼽았다. 김학선 평론가는 “김광석의 음악은 사람들이 살면서 맞닥뜨리는 가장 중요한 순간순간들을 노래하고 있다 보니 시류를 타지 않는다”며 “지금도 ‘이등병의 편지’와 ‘서른 즈음에’ 의 가사 속 은유들은 군 입대 전 청년에게, 중년을 앞둔 40대에게 큰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고 말했다. 강승원 회장은 “김광석은 싱어송라이터였지만 자작곡만 고집하지 않는 친구였다”며 “노래를 고르는 선구안도 좋았고, 남의 곡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에 여태껏 사랑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포크’라는 장르의 단출함 역시 오늘날 김광석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임진모 평론가는 “김광석이 세상을 뜬 1996년은 아이돌의 대명사로 불리는 H.O.T.가 데뷔하며 댄스 음악의 독식이 시작되는 시기였다”며 “기타와 하모니카만을 갖고 자신의 이야기를 읊조리는 김광석의 포크 음악은, 시스템에 의해 생산되는 지금의 K팝과 대척점에 있다 보니 오히려 희소성을 갖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익명의 한 평론가는 “요새 어떤 가수들이 지명도를 얻은 뒤에도 소극장에서 1000번씩 공연하며 관객과 소통하겠냐”며 “여태 ‘차세대 김광석’으로 부를만한 뮤지션이 나오지 않는 것은 바뀐 가요 시스템 탓도 있다”고 말했다.
너무 이른 죽음 또한 역설적으로 그의 노래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줬다. 지난해 ‘김광석 노래상 경연대회’에서 대상 격인 ‘김광석상’을 탄 싱어송라이터 산하는 “너무나 안타깝게도 그 좋은 노래들을 직접 보고 들을 수가 없다보니 더 애틋하고 슬퍼진다”며 “이런 점이 김광석 선배에 대한 환상을 만들고, 그가 활동했던 1980~90년대의 한국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