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4일 오전 평양 인근에서 동해 상으로 초음속미사일 화성-11마 형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 여러 발을 발사했다. 이번 발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군사작전 ‘절대적 결의’를 통해 반미 성향의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축출했다고 공식 발표한 지 약 7시간 만에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타깃에서 북한 역시 예외일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선제적으로 핵 보복 능력을 선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50분께 북한 평양 인근에서 동해 상으로 발사된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여러 발이 포착됐다. 미사일은 약 900㎞ 비행했다고 합참은 전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지난해 11월 7일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이후 약 2개월 만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로는 세 번째다.
사거리와 비행 궤적 등을 종합할 때 이번 미사일은 북한의 대표적인 단거리 탄도미사일인 KN-23 발사체에 극초음속 활공체(HGV) 형상의 탄두를 장착해 개량한 ‘화성-11마’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군 안팎의 견해다. 지난해 10월 열병식에서 공개된 화성-11마는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미사일방어(MD)망을 무력화하기 위해 개발 중인 신무기로, 저고도 변칙 기동을 할 경우 한·미의 현 자산으로는 탐지와 요격이 힘들다. 북한은 화성-11마에 전술핵 탑재가 가능하다고 주장해 왔다.
이번 새해 벽두 도발이 더 주목받는 것은 미국의 마두로 체포 작전과 시점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미국이 다른 나라 영토에서 직접 지도자를 제거한 건 김정은이 두려워해온 사실상의 ‘참수 작전’이다. 이런 작전이 불과 세 시간 만에 완료되는 걸 목격하자 북한이 곧장 탄도미사일 발사를 통해 ‘우린 베네수엘라처럼 당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베네수엘라 사태를 보면서 의도적으로 경보용으로 미사일을 쐈을 가능성이 크다”며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KN-23을 통해 우린 핵보유국이란 걸 다시 한번 선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미사일이 화성-11마로 추정되는 것과 관련해 권용수 국방대 명예교수는 “활공형 극초음속미사일인 화성-11마의 최대사거리는 KN-23보다 50% 이상 증가한 약 1500㎞로 추정된다”며 “한반도 전역은 물론 오키나와(沖縄)를 포함하는 주일미군기지 대부분을 타격권에 넣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이번 사건은 지금까지 국제사회가 오랜 동안 수없이 목격해온 미국의 불량배적이며 야수적인 본성을 다시 한 번 뚜렷이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비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밝힌 입장에서 외무성은 미국의 군사작전을 “패권행위”로 규정하며 “가장 엄중한 형태의 주권침해로, 주권 존중과 내정 불간섭, 영토 완정을 기본 목적으로 하는 유엔헌장과 국제법에 대한 난폭한 위반으로 낙인하며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베네수엘라 사태가 핵무기에 대한 북한의 집념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실제 김정은이 핵무기 보유를 결심하게 된 건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지난 2011년 ‘아랍의 봄’ 민중 봉기 당시 축출된 뒤 비참한 최후를 맞은 걸 반면교사로 삼았기 때문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카다피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2003년 핵무기를 포기했다. 북한은 2018~2019년 미국과 비핵화 협상이 이뤄지던 시기에도 ‘리비아식 비핵화’에는 극렬히 반대했다.
박원곤 교수는 “북한은 한층 더 핵 보유에 사활을 걸 것이고 또 역으로 핵 보유의 정당성을 대외적으로 공포하려 할 것”이라며 “‘핵이 없으니 미국이 불법적으로 타국의 주권 국가에 침범해 이런 식의 행패를 부렸다’, ‘우리들의 핵은 자위권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선전을 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미 무기용 핵물질을 다량 보유한 북한은 베네수엘라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러와의 지리적 인접성 등 북한이 갖는 조건 자체가 베네수엘라와는 매우 다르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이번 발사는 이 대통령이 3박 4일간 국빈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하기 위해 순방길에 오르는 당일 이뤄진 것이기도 하다. 5일 열리는 한·중 정상회담에선 북핵 문제도 다뤄질 것으로 예상하는데,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로 존재감을 과시하며 ‘비핵화는 의제화도 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이날 북한의 미사일 발사 관련 긴급회의를 개최한 사실을 전하며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하는 도발 행위인바, 이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입장문을 통해 “북한은 작년에 이은 지속적인 도발 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우리 정부의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대화 및 관계 정상화 노력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며 “우리 군은 강력한 능력과 태세를 기반으로 정부의 한반도 평화정착 노력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