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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프리즘] 우키시마호의 남은 진실

중앙일보

2026.01.04 07:12 2026.01.04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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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욱 부산총국장
광복 직후 일제 강제징용자를 태워 부산으로 돌아오던 우키시마호가 의문의 폭발 사고로 침몰한 지 80년 만에 당시 승선자·사망자 수가 처음 공개됐다. 이 사고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직후에 발생한 대형 사고였지만 그동안 정확한 승선자와 사망자 수도 파악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정부 공식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우키시마호는 1945년 8월 22일 일본 아오모리(靑森)와 홋카이도(北海道)에서 강제 징용된 조선인을 태우고 가다 24일 일본 교토(京都) 마이즈루(舞鶴) 만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 사고로 침몰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 재단에서 밝힌 ‘우키시마호 명부 분석 3차 경과 보고회’에 따르면 당시 승선자는 총 3542명이었고, 이 중 사망자는 528명이었다고 한다. 일본 정부가 1945년 사고 당시 발표한 것과 비교해 보면 승선자는 193명이 적고, 사망자는 4명이 많다. 행안부 관계자는 이런 차이에 대해 “(일본 정부의 집계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근무했던 작업장별로 승선자 명단을 취합한 뒤 다시 관계기관이 필사했는데, 이 과정에서 중복·오기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일제 강제징용자를 태우고 침몰한 우키시마호. [연합뉴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승선자 명부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일본 언론인 후세 유진(布施祐仁)의 정보공개 요청으로 승선자 명부의 존재가 드러났고, 이후 일본 정부가 총 75건의 자료를 세 차례에 걸쳐 한국 정부에 제공하면서 이번에 승선자와 사망자가 공식 확인된 것이다.

80년 만에 바닷속에 수장됐던 진실의 일부분이 인양된 것이어서 반가운 마음이지만 이 사고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후속적인 조치도 이어져야 한다. 가장 급선무는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침몰원인이다. 그동안 일본 측은 미군이 투하한 기뢰에 의해 배가 폭침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생존자 등을 중심으로 일본 측의 연관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계속되고 있는 만큼 일본 정부에 관련 자료가 더 있는지 등 사고 원인을 파악하는 데에도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또 이번에 파악된 승선자 및 사망자 외에 배에 탑승한 강제징용자가 추가로 없었는지와 이들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지원 방안도 구체적으로 마련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침몰한 우키시마호는 1954년에 일본 측이 인양했으나 당시 바다에 수장된 강제징용자들의 유해는 아직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그토록 그리워했던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을 떠돌고 있을 그들의 억울한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피해자와 유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역사의 진실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위성욱([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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