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고객 정보 유출과 산재 사건 은폐 의혹으로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쿠팡은 한국법인 대표를 전격 교체했다. 네이버 출신의 국내파 박대준 전 대표 후임으로 미국 본사 최고관리책임자이자 법무 총괄인 해럴드 로저스가 투입됐다.
한국 공식 데뷔 무대가 된 지난주 청문회에서 그는 내내 억울함과 한심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유출 규모는 3000여 명뿐이라고 우기고, 셀프 조사는 ‘한국 정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재 축소·은폐를 지시하는 김범석 쿠팡 대주주의 메시지를 들이밀자 “진위를 확인했느냐”고 따졌다. 미 증권감독위원회 규정을 어기고 늑장 신고했다는 지적에는 “중요치 않은 정보라 판단했다”고 맞섰다.
고객 정보 털리고 되레 큰소리
미국 소송 대비, 피해 규모 축소
끈질긴 수사, 독점 해소책 절실
그가 한국 문화를 모르거나 화를 참지 못하는 다혈질이라서 그랬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매출 40조원의 거대 기업 대표고, 미국 증권법과 기업윤리 분야에 능통한 법률 전문가다. 치밀한 계산과 믿는 구석이 없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엄청난 양의 고객 정보를 털리고, 산업재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도 무심한 이 기업을 제대로 징치하고 싶다면 그 의도와 배경을 살펴야 한다.
우선 쿠팡으로선 정보 유출 규모를 축소하는 게 급선무다. 쿠팡은 노출된 정보와 상관없이 유출된 것은 3000건이라는 프레임을 짰다. 국정원이 판을 깔아줬다. 정부 합동조사가 벌어지는 마당에 따로 피의자를 만나 공범과 접촉하고 증거를 찾아오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쿠팡으로선 알리바이를 만들 절호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어차피 용의자는 중국으로 도주했고, 확보한 것은 쿠팡이 셀프 조사로 국내로 가져온 노트북뿐이다. 이 구도가 먹히면 증권 감독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제기된 미국 내 주주소송에서 유리해진다. 한국 정부의 과징금은 그다음 문제다.
그동안 구축한 전관의 네트워크도 비빌 언덕이라고 판단했음 직하다. 얼마 전 경찰 간부가 쿠팡의 부장으로 이직하려다 공직자윤리위에서 제동이 걸렸다. 노동부에선 장관이 나서 쿠팡으로 이직한 전관들과 만나면 패가망신할 것이란 엄포를 놓아야 할 지경이다. 검찰에선 쿠팡의 퇴직금 규정 변경의 불법성을 수사하던 부장검사가 상급자의 방해로 무산됐다고 폭로했다. 국회에서 쿠팡으로 이직한 보좌진도 상당하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인프라가 다시 작동할 것이란 기대를 해볼 만하지 않을까.
쿠팡 울타리에 갇힌 소비자들은 최후의 보루다. 이미 새벽배송은 끊을 수 없는 일상이 돼버렸다.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어 구축한 독점은 대안을 찾을 수도 없게 만든다. 정부가 못 한 일을 소비자의 캠페인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는 허술하다. 탈팡은 쉽지도 않거니와, 이내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 쿠팡과 로저스가 보여준 적반하장식 태도는 이런 계산 끝에 나온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의도를 파악하면 대응은 자명해진다. 현재 쿠팡의 아킬레스건은 정보 유출 규모와 과정이다. 쿠팡 주장보다 훨씬 많고 중요한 정보가 유출된 사실과 배후까지 밝혀야 한다. 그러면 쿠팡으로선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 수사가 쉽지 않겠지만, 범인이 보낸 협박 편지에서 드러난 실마리를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셀프 조사 과정에서의 증거 은닉이나 훼손, 위증 같은 불법이 드러나면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쿠팡식 노무 관리가 산재로 이어진다는 것을 증명하고, 그에 대한 행정 제재를 분명히 하는 것도 필요하다. 고 장덕준씨 사건 등 과로사 은폐 의혹도 엄정하게 수사해야 한다. 무엇보다 쿠팡의 독점을 해소하고 경쟁적인 시장 구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실이 드러나고, 영업 환경이 하나씩 바뀌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국에서 신뢰 상실은 급격한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깨달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을 화내지 말고 꾸역꾸역 해내야 한다. 시간이 좀 걸리면 어떤가.
알려왔습니다
2026년 1월6일자 「쿠팡의 적반하장에 대응하는 방법」 칼럼과 관련하여, 국가정보원은 “외국인에 의한 대규모 정보유출 사태를 국가안보 위협상황으로 인식하여, 이에 대한 정보 수집·분석을 위한 업무협의를 진행한 것”이라며 “쿠팡에 어떠한 지시도 한 사실이 없고, 그럴 위치에 있지도 않다”고 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