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소년중앙] 타고 달리고 전쟁하고 숭배하고…인류 행보엔 언제나 ‘말’ 많았죠

중앙일보

2026.01.04 13:00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2026년은 육십갑자 중 43번째인 병오(丙午)년, 말띠 해입니다. 병오년이라 말 중에서도 붉은 기운이 강하다며 흔히 적토마의 해라고들 하는데요. 적토마는 중국의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고전인 『삼국지연의』에서 뛰어난 무공을 지닌 여포와 관우가 타던 붉은 말로, 하루 천리를 간다는 전설적인 명마예요. 자동차도 비행기도 없던 옛날, 사람이 멀리 빠르게 이동하려면 말의 도움이 필요했죠. 그렇게 말은 개와 더불어 인류의 오랜 반려동물로 함께해왔어요. 병오년 말띠 해를 맞아, 우리의 오랜 친구 말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말이 어떤 동물인지부터 오랜 세월 우리 생활 곳곳에 남긴 흔적을 살펴보고 경기도 과천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실제로 말을 만난 곽준혁·김도연·윤보영(왼쪽부터) 학생기자.
기제목 말과의 초식성 포유류인 말은 전 세계 초지에서 무리를 지어 서식하며 오래전부터 널리 가축으로 사육됐어요. 튼튼한 다리로 빠르게 달릴 수 있어 사람을 태우고 마차·짐수레 등을 끌며 이동을 돕고 교통·통신·운반·농경·교역·군사 수단으로 다양하게 활용됐죠. 또 공간적 한계를 넓히며 힘차게 달려가는 모습은 자유의 상징으로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했어요.

말과 마문화(馬文化)를 전문으로 다루는 말박물관이 경기도 과천 렛츠런파크 서울에 있습니다. 말박물관 김정희 학예연구사(이하 연구사)는 곽준혁·김도연·윤보영 학생기자에게 먼저 약 5500만 년 전 나타난 에오히푸스부터 약 400만 년 전 에쿠스까지 생물학적으로 말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알려줬죠. 도표와 태블릿 전시물을 통해 25~30cm 키에 발가락이 3~4개였던 작은 동물에서 130cm 이상 키에 1개 발가락을 지닌 현재의 말과 비슷한 형태로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말 키는 발끝부터 등골뼈가 줄진 등성마루까지 재요. 현대 말들의 키는 160cm 정도인데, 그래서 머리끝까지 높이를 보면 사람보다 훨씬 크게 느껴지죠.”

사람들은 언제부터 말을 탔을까
보영 학생기자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 말을 탔는지” 궁금해하자 김 연구사는 삼국시대 신화 이야기를 꺼냈어요. “고구려 시조 주몽은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했으며, 마구간에서 일하면서 좋은 말을 골라 키우며 도망쳐서 고구려를 세울 작전을 짰죠. 신라의 혁거세는 백마가 엎드려 절하고 있는 곳을 살피니 자줏빛 알이 있었고, 말이 하늘로 올라간 뒤 그 알에서 나왔다고 해요. 이 밖에 여러 기록을 토대로 삼국시대에는 이미 말을 가축화하고 군용으로 이용했음을 알 수 있죠. 암사동 유적이나 김해 패총 등에서 말의 치아가 발견돼 석기시대에는 한반도에 말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요.”
말박물관 김정희(맨 오른쪽) 학예연구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말 관련 삼국시대 신화에 대해 알려줬다.
초식동물인 말의 두개골과 육식을 주로 하는 개 두개골을 비교해보니 치아 배열에 큰 차이가 있었어요. 송곳니가 발달해 거의 빈틈이 없는 개와 달리 말은 송곳니가 퇴화해 앞니와 어금니 사이에 빈 공간이 있었죠. 김 연구사는 “이 틈을 이용해 사람들이 막대 모양의 재갈을 물리고 양 끝에 끈으로 고삐를 묶어 잡아당기며 혀와 잇몸을 자극해서 말을 제어했다”며 “말은 보통 몸무게 500kg 정도고 마차를 끄는 큰 말은 800~1000kg이나 나가는 크고 힘센 동물이다 보니 연약한 부분을 활용해 훈련시킨 것”이라고 했죠. 중앙아시아의 신석기 집터에서 출토된 말 두개골을 살펴보니 앞어금니가 재갈에 의해 닳은 흔적이 있었어요. 나무와 가죽, 다른 동물의 뼈 등을 이용하다 기술이 발전하며 금속 재갈을 만들게 됐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자연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야생마를 길들이기 위해서는 재갈을 비롯한 각종 도구가 필요한데 이를 통틀어 말갖춤(마구)이라고 해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재갈·고삐와 이를 얽어 감은 굴레를 기본으로 안장·언치·발걸이·다래·가슴걸이·말방울·말띠꾸미개와 말띠드리개 등 여러 말갖춤을 장착한 말 모형을 통해 전체적인 모습을 살펴봤죠. “유명한 신라 고분 중 천마총이 있어요. 천마도가 나와서 천마총이라고 하는데, 이 천마 그림이 바로 지금 여러분이 보는 안장 아래에 장식한 다래에 그려진 거예요. 다래는 말이 달릴 때 진흙이나 돌 같은 게 튀는 걸 막아줬죠.”
조선시대 청동은상감재갈. 기술이 발전하며 나무나 가죽에서 금속제 재갈을 만들게 됐다.
말의 가슴을 가로지르는 가슴걸이에 다는 방울은 말방울(마령)이라 하며 여러 용도로 쓰였어요. 차가 경적을 울리듯 말이 빠르게 달려오는 것을 방울 소리로 알아차려 피할 수 있고, 말이 도망가거나 누가 훔쳐가는 것을 소리로 눈치챌 수 있고요. 금·은·동 등으로 화려하게 꾸며 신분을 나타내고 소리 자체로 말 탄 사람의 위엄을 드러내는 용도로도 썼죠. 방울 소리가 귀신을 쫓는다고 믿어서 벽사의 의미로 귀면(귀신 얼굴)을 새기기도 했어요. 신라지역에서는 둥근 방울 외에 종모양의 마탁도 출토됩니다.

사람이 말에 타기 편하게 해주는 말갖춤으로는 안장과 발걸이가 있어요. “말에 그냥 탄다면 말의 척추뼈와 사람의 엉덩이뼈가 계속 부딪혀 아프겠죠. 말 등에 얹는 안장은 천과 가죽 등으로 푹신하게 만들었고, 나무로 틀을 짜기도 했어요. 또 말 등이 쓸리지 않게 안장 밑에 언치를 깔아줬고요. 안장 좌우에는 발걸이를 매달아 말에 오르내리고 말 위에서 무기를 사용할 때 균형을 잡기 쉽게 했죠.”
말에 오르내릴 때, 말 위에서 균형을 잡기 쉽게 해주는 발걸이는 편의성에 장식미도 갖췄다.
편의를 위한 안장·발걸이 역시 장식으로도 기능했습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나전으로 꾸민 안장과 금·은 상감으로 꽃과 덩굴, 용·구름·박쥐 등을 새긴 발걸이를 보며 감탄했죠.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신분에 따라 안장 장식에 상어가죽·사슴뿔을 쓰기도 했어요. 안장과 재갈·굴레 등을 채울 때 쓰는 가죽끈은 말띠꾸미개로 꾸몄고, 가슴걸이나 후걸이에는 말띠드리개라 하는 장식품을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달았죠.

말의 몸을 잘 빗겨주면 윤기가 나는데요. 갈기와 꼬리털은 말총이라고 하며 땋거나 묶어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말총은 길고 튼튼해 예로부터 갓이나 망건, 붓·해금 등을 만드는 재료로 썼어요. 손질용 빗으로 꼬리털을 빗어본 보영 학생기자가 “말마다 갈기나 꼬리가 생긴 게 다르던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질문했죠. “꼬리를 휘둘러 파리 등 벌레를 쫓는 등 피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어요. 사람도 곱슬머리·생머리 다 다르듯 갈기나 꼬리를 보면 말도 곱슬·직모 다 있죠. 또 주로 추운 데 사는 말은 털이 길고 사막의 말은 짧은 편이에요.”

초원을 자기 마음대로 달리던 것과 달리, 인간에 길든 말은 인간이 닦은 길을 오가며 발굽이 쉽게 마모돼 편자가 필요하게 됐습니다. 편자는 말의 발굽을 보호하고 갈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덧대는 U자 형태의 쇳조각이에요. 여러 출토 유물을 통해 삼국시대에는 편자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죠. 말의 발굽은 젤라틴으로 이뤄진 발톱의 끝부분이 변형된 것으로, 한 달에 평균 8~9mm씩 자라요. 사람들이 자라난 손발톱을 깎듯 말은 헌 편자를 빼고 수평이 되게 굽을 깎고 다듬어 새 편자를 부착해야 하죠. 보영 학생기자는 편자를 박을 때 말이 아프지는 않은지 궁금해했죠.
인간이 말을 길들이며 사용하게 된 편자는 서양에서 행운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말발굽에 편자를 대는 과정을 장제라고 하는데 보통 4~6주에 한 번씩 교체해요. 발굽 끝부분은 신경이 퇴화해 못을 박아도 통증을 느끼지 않고, 편자가 망가지지 않더라도 발굽은 계속 자라기 때문에 장제를 하지 않는 게 오히려 말이 더 괴로울 수 있답니다. 또 편자가 신경 있는 부분을 보호하기도 하고, 경주마 등에겐 좋은 신발처럼 더 빨리 달릴 수 있게 돕는 역할도 해요.”

말은 얼마나 빠를까
발굽 모형과 편자를 살피던 준혁 학생기자가 “경주마와 일반 말은 뭐가 다른가요” 묻자 김 연구사는 “경주마는 달리기에 최적화된 말”이라고 했죠. “자동차를 보면 트럭도 있고 승용차도 있고 스포츠카도 있잖아요. 말은 세계적으로 300여 종이 있는데요. 경주마의 국제표준 품종이기도 한 서러브레드는 더 빨리 달리도록 경주 능력이 우수한 말끼리 교배시켜 오랫동안 철저하게 혈통 관리를 해왔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태블릿·모형을 통해 나라별로 유명한 말 품종을 살펴봤죠.

“말이 빨리 달릴 때 속력은 어느 정도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른 말은 누구인가요?” 준혁 학생기자의 질문에 김 연구사는 “말은 최대 시속 약 70km까지 달릴 수 있는데 이 속도로는 그렇게 오래 뛸 수는 없다”며 말박물관 입구에 놓인 기록표를 소개했죠. 경주마는 국제 표준인 1600m(1마일)를 기준으로 1000~2000m 거리 기록을 재는데요. 1600m 기록은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에서 한강클래스가 2025년 6월 29일에 세운 1분34초8이 현재 최고입니다. 1000m 기록은 캐나다의 클레버스타가 세운 58초3으로, 1분이 채 되지 않았죠.
조선시대 관리가 공무로 지방에 갈 때 국가의 역마(驛馬)를 빌릴 수 있도록 발급한 마패. 국립민속박물관
“말이 많은 제주도에서는 농사에도 많이 활용했지만, 육지에서는 보통 빠른 속도를 활용해 관이나 양반 같은 지배층에서 군용이나 이동수단으로 썼죠. 세금·공물을 운송할 때도 말의 역할이 컸고, 전쟁 때는 특히 중요해 민간의 말을 징발하기도 했어요. 여러분이 암행어사로 잘 아는 마패는 암행어사만 쓴 건 아니고요. 관리가 공무로 이동할 때 말 한 마리만으론 지쳐서 먼 길을 빨리 갈 수 없으니 중간중간 역참에서 말을 바꿔 탈 수 있게 역마를 징발하는 용도였죠.”

도연 학생기자가 “마패마다 말 수가 다른데, 최대 몇 마리까지 빌릴 수 있는지” 물어봤죠. “공적 임무로 지방 출장을 가는 관리는 상서원에서 마패를 발급받아 역마를 이용할 수 있음을 증명했어요. 이때 품계에 따라 새겨진 역마의 수가 다른데, 1~5마리까지 쓸 수 있었죠. 왕은 10마패라고 하는데, 실제로 10마리가 그려진 마패 유물은 나오지 않았어요.”
조선 말 마구간 사진과 말 낙인, 1900년 무렵 전국에 말이 얼마나 있었는지 보여주는 각도마필분포도를 살피는 소중 학생기자단.
역사적으로 말을 귀하게 여기고 말을 잘 보살피는 게 나라 운영에 도움된다고 여겼기에 말 건강을 돌보는 마의의 역할이 중요했고, 관련 조직과 관리를 뒀습니다. 말 관련 의학서를 유심히 보던 도연 학생기자가 “마의는 어떤 사람이 됐고, 말을 어떻게 치료했는지” 궁금해했죠. 김 연구사가 말침·말침통을 가리키며 “말이 어디가 아플 때 어디에 침을 놓고 어떤 처치를 하는지 의학서를 보고 치료했다”며 “말은 사람보다 훨씬 커서 말침도 크고 두껍다”고 했죠. “조선시대 의료인은 지금 의사와 달리 신분이 그리 높지 않았어요. 대개 중인 정도였는데, 왕실 소속 마의 중에는 의료 실력을 인정받아 어의가 된 사람도 있긴 하죠.”
말에게 꼭 필요한 철·칼슘·마그네슘 같은 미네랄을 핥아 먹을 수 있게 만든 덩어리를 만져본 김도연 학생기자.
마구간처럼 꾸며진 곳의 말 모형을 본 도연 학생기자가 전에 말을 타본 적 있다며 냉큼 올라타 포즈를 잡자 보영·준혁 학생기자도 뒤를 이었죠. 말 엉덩이 부근에 놓인 통에는 말똥이 한가득 들어있었습니다. “한 마리 말이 하루에 배설한 말똥을 건조시킨 거예요. 건조 전에는 양이 훨씬 많았겠죠. 말똥은 연료나 친환경 비료로 쓰인답니다. 그럼 말은 뭘 먹을까요.” 김 연구사의 질문에 “당근” “풀” 등의 답이 쏟아졌죠. 말 모형 머리 쪽에는 귀리·옥수수·대두박 등 10여 종의 말 먹이가 통에 담겨 있었어요. 또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은 게 매달려 있었는데, 말에게 필요한 철·칼슘·마그네슘 같은 미네랄 덩어리로 마방에 걸어두면 말들이 조금씩 핥아 먹는다고 합니다.
말이 좋아하는 간식인 당근과 사과를 직접 먹여준 곽준혁·김도연·윤보영(왼쪽부터) 학생기자.
“주로 먹는 건초가 말에게 쌀밥 같은 거라면 당근이나 사과 같은 달콤한 먹이는 말이 좋아하는 간식이에요. 말에게 직접 간식을 줘볼까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김 연구사를 따라 말들이 사는 한 마사로 향했습니다. 세 사람이 주섬주섬 당근을 꺼내자 마방에서 말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내밀었죠. 금색·밤색을 띈 몸에 흰빛의 갈기·꼬리를 지닌 승용마 하프링거 세 마리가 나란히 당근을 받아먹었습니다. 소형말 미니포니와 그보다는 체구가 큰 웰시포니에게도 당근과 사과 조각을 주는데, 김 연구사가 알려준 대로 당근 조각을 손바닥에 올려 내밀자 부드러운 입술로 집어갔죠.

말은 전통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인간보다 훨씬 빠르고 힘센 말은 옛날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기에 나라에서 말을 기르는 마장을 운영했습니다. 조선 초기부터 마장이 있었던 것에서 이름이 유래한 서울 성동구 마장동처럼 말에 얽힌 지명이나 신화는 물론 옛이야기와 속담, 말놀이와 민속신앙도 많죠. 말이 오랜 세월 우리 생활 문화 곳곳에 남긴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병오년 말띠 해 특별전 ‘말馬들이 많네: 우리 일상 속 말’ 전시장 전경. 국립민속박물관
병오년 말띠 해 특별전 ‘말馬들이 많네: 우리 일상 속 말’은 사람과 말이 함께 걸어온 길, 우리 삶과 말에 대한 인간의 복합적인 인식이 담긴 여러 민속문화를 소개하죠. 전시장에 들어서면 푸른빛으로 탁 트인 느낌이 드는 가운데 저편의 영상 속에서 말들이 달려오는데요. 전시를 기획한 하도겸 학예연구관(이하 연구관)은 “말이 질주하는 초원처럼 느껴지게 꾸민 것”이라며 “각각의 전시물도 말과 기수가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종합마술 경기장에 놓인 허들과 같은 느낌으로 조성했다”고 설명했죠. 입구에선 백 가지 말을 그린 백마도가 반겨줍니다. 말에 담긴 꿈과 기운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엽서 크기 그림들 가운데 나와 함께할 새해 희망의 말을 찾아볼 수 있죠.

우리 선조들은 말을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충성심과 생명력, 공간 이동의 신비를 상징하며 죽은 이의 영혼을 인도하고 신(神)을 태우거나 신의 뜻을 전달하는 영험한 존재라고 인식했어요. 1부 ‘신성한 말’에서는 십이지신의 오신(午神)이나 청룡도를 쥔 채 말 달리는 백마신장, 무신도의 신으로 등장하는 말을 볼 수 있습니다. 말은 십이지 중 7번째 동물이자 시간으로는 낮 11시부터 1시, 방위로는 정남을 상징하죠. 조선시대엔 정월 첫 말날(午日)에 말을 위한 제사를 지내며 그 중요성을 기렸어요.
무장하고 청룡도를 쥔 채 흰 말을 타고 달리는 백마신장(白馬神將)은 무속신앙에서 인간을 보호하고 악귀를 쫓는 신이다. 국립민속박물관
말 탄 꼭두들을 따라가다 만난 시왕도에 등장하는 말은 저승사자 꼭두와 마찬가지로 저승에서 망자를 심판하고 인도하는 신성한 영혼의 여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죠. 하 연구관은 “세계적 인기를 끈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사자보이즈’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며 갓을 쓴 저승사자 꼭두들을 가리켰죠. 시왕도 속 어디에 말이 있는지 숨은그림찾기를 하다 눈을 돌리면 삼국지연의도 10폭 병풍이 보입니다. 삼국지 이야기를 알면 명마 적토마가 어디 있는지 찾기 쉽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라’는 옛말이 있듯, 우리나라 말 얘기에 제주도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2부 우리의 말: 제주마’에서는 조랑말(과하마)에 속하는 제주마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봅니다. 과하마란 키가 작아 말을 타고도 과일나무 아래를 쉽게 지나갈 수 있다며 붙여진 이름으로, 보통 키 140cm 이하 작은 말을 뜻하는 조랑말에 포함돼요.
10폭 병풍 형식으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그려낸 조선 후기의 중요한 그림인 삼국지연의도. 삼국지에 등장하는 적토마는 여포와 관우가 탔던 붉은색 명마로 유명했다. 국립민속박물관
키 110~120cm의 작은 체구지만 강한 체력과 지구력을 갖춘 제주마는 198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철저하게 혈통 관리 중이죠.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건너온 제주마 박제와 함께 제주도를 달리는 말 영상을 볼 수 있어요. 구름이 걷히며 서서히 나타나 신나게 달리는 말 영상은 한라산 일출로 마무리돼 새해 느낌이 물씬 납니다. 전시를 위해 영상을 직접 촬영했다는 하 연구관은 “제주마는 체중이 가볍고 돌이 많은 제주도의 환경에 적응하며 강한 발굽을 갖춰 편자를 착용할 필요가 없다”고 귀띔했죠.
단원 김홍도가 그린 ‘편자박기’와 함께 테오도르 제리코의 ‘플랑드르의 장제사’ 석판화를 통해 동서양 장제 모습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을 알 수 있는데요. 경주용·승용·노역용·질환치료용 등 용도별로 다양하게 만드는 편자는 서양에서 액운을 막아주는 행운의 부적으로도 여겨집니다.

3부 ‘말과 함께’에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말 관련 다양한 유물을 소개해요.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를 모티브로 한 88 서울올림픽 포스터, 암행어사들의 공인인증서인 마패, 역참에 설치된 마방의 마구간 모습,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전설적인 군마 레클레스 조각, 네팔의 구마도(동판) 등을 보다 성우들이 낭송하는 말 관련 문학작품도 들을 수 있죠.
88 서울올림픽 포스터. 사냥을 즐기며 용맹과 권위를 과시한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를 스포츠와 연결해 상징화했다. 국립민속박물관
푸른 말을 탄 신랑을 그린 최영림 작가의 ‘말’과 1901년 신랑·신부 행진 사진과 관련, 도연 학생기자는 “조선시대 결혼식엔 평민들이 평소 못 입는 화려한 옷도 입고 말도 탈 수 있었다는데, 모두가 말을 탈 수 있었는지” 궁금해했죠. “현대 사람들이 결혼식 때 드레스 빌리고 식장 빌리는 것과 비슷해요.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죠. 마을 공동으로 장례식에 쓰는 상여를 관리했듯 결혼식 물품도 공동 관리했을 수 있고, 동네 양반집에서 빌렸을 수 있고 각자 사정과 형편에 맞춰서 했을 겁니다.”

하 연구관은 “말띠 여자는 팔자가 세다고들 하는데, 사실 조선시대까지는 없었던 왜곡된 속설”이라며 별전을 소개했어요. 우아하고 고운 여성을 뜻하는 요조숙녀가 새겨진 엽전은 조선시대 여성의 이상적인 덕목과 품격을 상징하죠. “조선의 왕비 중에는 말띠가 많아요. 세종대왕의 부인 소헌왕후 심씨,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 윤씨 등은 모두 부드러운 인품과 강한 리더십을 갖춘 분이셨죠. 저 속설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여성 설화에서 비롯된 거랍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엽전 중 요조숙녀(窈窕淑女)가 적힌 별전. 예의 바르고 아름다운 여성을 비유하는 요조숙녀를 말과 함께 새겨 조선시대 왕비 가운데 말띠 여성들이 있으며, 이들이 요조숙녀였음을 알려준다. 국립민속박물관
또 조선시대 말띠 유명인으로는 240년 전 병오년생인 추사 김정희와 그보다 24년 전에 태어난 다산 정약용을 꼽을 수 있는데요. 이 두 말띠 사람은 세대를 넘어 교유했죠. 정약용과 그의 제자들이 만든 모임 ‘다신계’의 규약서인 ‘다신계절목’은 다산박물관의 원본을 송산 김연수 서예가가 필사한 작품으로 볼 수 있어요. “조선의 선비들이 필요한 책을 필사했듯 이번 전시에는 필사 작품이 여럿 있다”고 한 하 연구관은 “추사가 70년간 ‘10개의 벼루와 1000자루의 붓’을 썼다는 내용으로 유명한 ‘마천십연(磨穿十硏)’간찰은 진품”이라고 덧붙였죠.

추사가 쓴 말 마(馬)자를 살필 수 있는 ‘박종마정물반정주(博綜馬鄭勿畔程朱)’를 지나면 둥그런 벤치가 놓여 있습니다. 그 앞에선 3가지 영상과 함께 말울음 같은 가락이 흐르는데요. 말 머리 모양 장식을 한 몽골의 전통 현악기 마두금 소리죠. 초원의 바이올린이라고도 하는 마두금 연주를 감상하며 김진태 호산필박물관장이 말털로 전통 붓 마모필을 만드는 모습, 망건장 강전향·전영인 선생이 말총으로 망건을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죠. 이와 함께 실물 마두금과 마모필, 갓·망건·탕건 등도 전시됐어요.
기쁨을 뜻하는 쌍희(雙𡅕)를 새긴 말안장. 국립민속박물관
“이번 전시 특징 중 하나는 길고 어려운 설명이 없는 것”이라고 한 하 연구관은 “대신 QR로 전시 도록을 바로 볼 수 있게 했다”며 “말띠·제주목장·별전·암행어사 등의 이야기는 만화로도 만들어 재밌게 볼 수 있고, 유물들의 눈높이를 어린이에 맞춰 어린이 친화적인 전시로 꾸몄다”며 “소년중앙을 보는 어린이·청소년들이 말 보러 목장에 놀러 가듯 편하게 와서 말과 말 관련 민속 이야기도 알아가고, 마두금 연주도 듣고, 관련 체험도 하면 좋겠다”고 팁을 전했어요.
동행취재=곽준혁(경기도 안양덕현초 6)·김도연(경기도 유현초 6)·윤보영(서울 가재울초 5) 학생기자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말박물관에 취재를 다녀와서 말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됐어요. 말이 사람과 함께 살아온 역사에 흥미를 느꼈고, 말의 종류와 쓰임새가 다양하다는 점이 인상 깊었죠. 전시된 말의 뼈와 안장, 여러 장비를 직접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말에게 먹이도 주고 새롭게 배우는 것이 많은 시간이었어요.
-곽준혁(경기도 안양덕현초 6) 학생기자
모형 말에 올라타 고삐를 잡고 포즈를 취한 곽준혁 학생기자.
여행지에서 만날 수밖에 없었던 말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는 말박물관에 갔습니다. 자유롭게 달리던 말을 길들이기 위해 재갈을 사용해 훈련했는데요. 초식동물인 말은 송곳니가 발달하지 않아 앞니와 어금니 사이가 벌어져 있는데 바로 이 틈으로 재갈을 물려 조종했다고 합니다. 말을 탈 때 말의 척추뼈와 사람의 엉덩이뼈가 계속 부딪히면서 아플 수 있어서 안장을 착용하고 타고요. 또 말의 발굽에는 사람의 손톱과 같은 부분이 있는데 이것이 너무 두껍게 자라도 좋지 않기 때문에 4~6주 간격으로 새 편자를 박아 관리한다고 해요. 조선시대 말을 치료하는 마의와 마패 이야기 등 말뿐만 아니라 옛 조상님들의 생활도 배울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김도연(경기도 유현초 6) 학생기자
말박물관 앞에서 '사계의 말과 행운을 찾는 젊은이' 작품 중 각자 마음에 든 말과 포즈를 취한 곽준혁·김도연·윤보영(왼쪽부터) 학생기자.
이번 말박물관 취재로 구석기 시대에도 말의 뼈가 발견됐으며 신석기 시대부터는 말을 가축으로 삼아 길렀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말을 탈 때 가장 중요한 건 재갈 같아요. 재갈을 물려야 말을 탄 사람이 말을 조종할 수 있기 때문이죠. 말에 재갈을 씌우면 잇몸과 혀에 자극을 줘서 조종할 수 있는데요. 재갈로 인해 말 어금니가 닳은 걸 보고 사람이 말을 훈련하고 탔다는 걸 추정했다고 해요. 그 외에도 말 장식을 통해 신분을 나타낼 수 있고, 말방울로 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등 말에 대해 여러 가지 알게 돼서 흥미로웠죠.
-윤보영(서울 가재울초 5) 학생기자
윤보영 학생기자가 말이 당근을 떨어뜨리지 않고 먹을 수 있게 잡아주고 있다.






김현정([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