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업무를 맡은 뒤 우울증을 앓다 자살한 공무원의 사망을 공무상 질병으로 본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7년차 교육공무원 A씨는 2022년 1월 모 중학교의 행정실장으로 부임했으나 새로 맡게 된 업무로 스트레스를 겪다 같은 해 3월 우울증을 진단받고 질병 휴직에 들어갔다. 그는 병원의 권유대로 입원 치료를 받은 뒤 같은 해 7월 복직했다. 그는 한 도서관으로 발령을 받았지만 복직 한 달만에 도서관 지하 계단에서 목숨을 끊었다.
사망 전 A씨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새로운 업무로 인한 괴로움을 호소했다고 한다. A씨의 유족은 인사혁신처에 “A씨가 업무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악화돼 자살했다”며 순직유족급여 청구를 했다. 그러나 인사혁신처는 “사망에 이르게 할 만한 업무적 이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불승인 결정했다. 이에 유족은 인사혁신처의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유족 손을 들어줬다. 5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 최수진)는 최근 유족이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제기한 순직유족 급여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망인은 공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이 악화돼 정상적인 인식능력과 행위선택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공무원이 자살로 사망한 경우, 공무상 스트레스·과로 등이 질병을 유발·악화시켜 자살에 이르게 된 점이 드러나야 한다.
재판부는 A씨가 2022년 처음으로 행정실장을 맡게 되면서 업무 부담이 가중된 점을 고려했다. 재판부는 “망인이 부서의 책임자 지위에서 회계, 시설관리 등 제반 행정업무를 총괄한 것은 처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미숙한 업무 경험을 보충하기 위해 부임 직후 1월에 44시간, 2월에 22시간 시간 외 근무를 하기도 했고, 지인과 가족들에게 업무 관련 고충을 자주 토로하는 등 업무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받고 있었다”고 했다.
병원 상담에서도 A씨가 업무상 스트레스를 호소한 점 역시 고려됐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2022년 3월 병원을 찾아 “안 해봤던 거라 업무가 너무 낯설다” “아랫사람이나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 주기 싫어서 노력했는데 잘 안 됐다. 도움받을 데도 시간도 없다”는 등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입원 후에도 “직장에 대해 아무 기대가 없다” “위축감을 느끼고 업무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재판부는 A씨가 2011~2017년 정신과 진료를 받긴 했지만 이후로 5년간 진료 이력이 없는 점을 보면 행정실장 부임 후 직무 스트레스로 자살에 이르게 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2011~2017년에는 자신감 없는 성격에 대한 고민 등으로 상담해 우울증 정도가 비교적 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망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원인이 오로지 개인적인 취약성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 SNS 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