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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국민배우' 안성기 별세…그의 인생이 한국 영화사였다

중앙일보

2026.01.04 16:19 2026.01.0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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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안성기의 2011년 인터뷰 당시 모습. 박종근 기자
영화가 곧 삶이었던 국민 배우 안성기가 5일 세상을 떠났다. 다섯살에 영화 ‘황혼열차’(1957)로 데뷔해 ‘고래사냥’(1984), ‘투캅스’ 시리즈, ‘태백산맥’(1994), ‘취화선’(2002) ‘실미도’(2003) 등 한국영화 대표작을 이끌어온 충무로의 큰 별이다. 5일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에 따르면 안성기는 지난달 30일 오후 자택에서 음식물을 먹다 목에 걸려 쓰러진 후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74세.

앞서 그는 혈액암으로 수년간 투병해왔다. 2022년 배창호 감독의 40주년 기념 특별전 개막식에서 탈모로 인해 가발을 쓰고 부은 얼굴, 어눌한 말투와 걸음걸이로 병세를 드러냈다. 이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에 충무로 단짝 박중훈, 최민식 등과 참석해 호전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연기자로 복귀하겠다”는 약속은 끝내 지키지 못했다. 유작은 영화 ‘카시오페아’ ‘한산: 용의 출현’ ‘탄생’ ‘노량: 죽음의 바다’(특별출연)다. 4편 모두 암투병 중 촬영해, 2022~2023년 개봉했다.
배우 안성기.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일생을 필름 속에서 살았다. 웃으면 깊게 패는 주름, 익살과 고독을 겸비한 눈빛이 트레이드마크였다. 한국영상자료원에 집계된 출연 영화가 180여편에 달한다. 거지(‘고래사냥’)부터 왕(‘영원한 제국’), 킬러(‘인정사정 볼 것 없다’)까지 안 해본 역할이 없다. 현대사의 격류 속에 태어나, 영화 속에 시대를 새겨왔다.
영화 '고래사냥' 속 배우 안성기와 가수 김수철(왼쪽).
1952년 한국전쟁 피란통에 대구에서 출생한 그는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를 연기의 길로 이끈 이가 아버지 안화영씨다. 서울대 문리대를 나와 영화배우를 꿈꾼 아버지는 체육교사를 하던 중 친구인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에 출연한다. 작품에 아역이 필요하다는 부탁에, 삼남 중 막내를 데려간 게 ‘배우 안성기’의 시작이었다.

눈이 유독 컸던 소년은 이후 김기영 감독의 ‘10대의 반항’(1959)의 소매치기 연기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영화제 소년특별연기상을 받았다. 한국 최초 해외 영화제 연기상 수상 기록이다. 1960년 우수국산영화상(대종상 전신) 시상식에서 소년연기상을 받는 앳된 모습이 지금도 ‘대한뉴스’ 흑백영상에 남아있다. 봉준호‧박찬욱 등 거장 감독들이 손꼽는 김기영 감독의 걸작 ‘하녀’(1960)에도 여덟살 때 출연했다. 촬영 중 잠을 쫓으려 어른들 화투판에 끼곤 한 그 시절을 자칭 “발랑 까진 아이”라 회고했다. 생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다.

이후 10대 역할이 줄면서 공백기가 찾아왔다. 중학교 3학년 때 ‘잉여인간’에서 이순재‧김성옥‧장민호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국립극장 무대에 선 뒤 아역 은퇴했다. 연예계를 잊고 산 그 시간들이 훗날 소시민 역할에 밑거름이 됐다.

동성고 시절 발발한 베트남전에 참전할 요량으로 한국외대 베트남어과에 진학, 학군장교(ROTC)가 됐지만 종전이 찾아왔다. 전역 후 평생 연기할 마음으로 영화계 복귀했고, 1980년 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감독 이장호)에서 서울 변두리 개발지역 어수룩한 중국집 배달부 덕배 역할로 대종상 신인상을 받았다.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 [중앙포토]
그는 시대 고민을 품은 영화들에 몸사리지 않고 출연하며 충무로 대표 스타로 올라섰다.

이원세 감독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1981)의 도시 빈민,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1981) 속 구도자와 ‘태백산맥’의 빨치산 지식인, 정지영 감독의 ‘하얀전쟁’(1992)에서 베트남전 참전 소설가 등으로 대종상‧백상예술대상 등을 휩쓸었고,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욕망하는 사내(‘깊고 푸른 밤’), 광기어린 야구 감독(‘이장호의 외인구단’), 비운의 페인트공(‘칠수와 만수’), 소심한 샐러리맨(‘남자는 괴로워’), 퇴마 신부(‘퇴마록’ ‘사자’) 등 폭넓은 인간군상을 그렸다.

‘바람불어 좋은 날’의 조감독이었던 배창호 감독과는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1982)부터 ‘철인들’(1983), ‘적도의 꽃’(1983), ‘고래사냥’(1984), ‘깊고 푸른 밤’(1985), ‘황진이’(1986),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 등을 함께 했다.

[중앙포토]
[중앙포토]
영화 '라디오스타'의 한 장면. 한물 간 스타가수 최곤(박중훈, 오른쪽)과 매니저 박민수(안성기)가 라디오부스에서 독자사연을 읽고 있다. [중앙포토]
박광수 감독의 ‘칠수와 만수’(1988) 이후 배우 박중훈과 충무로 콤비로도 활약했다. 형사물 ‘투캅스’ 시리즈와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8), 한물간 스타와 매니저로 분한 ‘라디오 스타’(2006) 등 대표작을 남겼다. ‘투캅스’의 강우석 감독과 뭉친 실화 소재 ‘실미도’로는 2003년 한국영화 최초 1000만 흥행이란 대기록을 세웠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와 그 후유증을 각각 그린 ‘화려한 휴가’(2007)와 ‘아들의 이름으로’(2021), 사법부 권위에 맞선 실화 토대 영화 ‘부러진 화살’(2012) 등에도 출연했다. 2024년 한국영상자료원이 영화인 240명과 함께 뽑은 ‘역대 최고 한국영화 100선’에서 안성기는 1위 ‘하녀’를 비롯해 출연작 10편이 포함되며, 송강호와 최다 선정 배우 공동 1위에 올랐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한 브랜드의 커피 CF에 1983년부터 30년 넘게 출연하며 최장수 모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서 『한국영화 100년 100경』에서 허문영 영화평론가는 “자연인으로서 안성기는 소탈하고 상냥한 인품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가까운 사람조차 감탄하는 엄격한 도덕적 절제로도 유명하다”면서 “대중이 굳건히 신뢰하고 친밀감을 느끼는 유사 친구로서의 스타”라고 평가했다. 안성기 자신은 생전 언론 인터뷰에서 “남에 대한 배려와 심성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유산”이라고 겸손하게 돌아봤다.

그는 한국영화계의 대소사에도 앞장섰다. 1998년부터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참여하고,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2003~2021) 집행위원장,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맡아 신인 등용에 힘을 보탰다. 한국 대중문화예술 발전에 기여를 인정받아 2013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또 유니세프 친선대사로서 30년 넘게 봉사한 공로로 2023년 4‧19 민주평화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론 조각가인 아내 오소영씨, 설치미술가인 장남 다빈씨, 미술가 겸 배우인 차남 필립씨가 있다. KBS ‘전국노래자랑’ ‘가족오락관’ 전 PD인 안인기 예원예술대학 석좌교수가 고인의 형이다.
2023년 4월 1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4회 4·19 민주평화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로 선정된 배우 안성기가 미소 짓고 있다. 뉴스1



나원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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