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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광고 제안에, 못하는 술 들이켰다…'인간 안성기'의 삶 [안성기 별세]

중앙일보

2026.01.04 16:24 2026.01.05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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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심 끝에 커피 광고 모델로 나선 안성기 배우는 20년 넘게 광고에 출연하며 자상한 남편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사진 동서식품
1983년 어느 날, 술을 잘 마시지 않는 안성기가 불콰해진 얼굴로 배창호 감독을 찾았다.

초췌한 얼굴엔 고민의 흔적이 역력했다. 그는 "커피 광고 출연 제안을 받았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작품에 더 전념할 수 있지 않겠냐"는 배 감독의 말을 들은 그는 이장호 감독, 최인호 작가와도 상담하는 등 한 달 정도 고민한 끝에 광고 제안을 수락했다.

배 감독은 "연기를 위해 광고 출연조차 고뇌하는 그의 모습에 감동 받았다"고 돌이켰다.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는 카피의 커피 광고는 이렇게 탄생했다. 광고 덕에 안성기는 수십년 간 시청자들에게 자상한 남편 이미지로 각인됐다.

거액의 모델료와 친근한 이미지, 모두가 탐낼 법한 광고 출연조차 고뇌할 정도로 안성기는 연기에 미쳐 있는 배우였다.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이장호 감독) 촬영 때 "한심한 놈아! 그게 연기냐! 그러고도 배우냐!"는 이 감독의 호된 꾸지람은 안성기를 진정한 연기자로 거듭 나게 한 중요한 계기였다.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의 한 장면.
그는 중국집 배달원 덕배 역을 온전히 소화하기 위해 중국집에 견습생으로 들어가고, 일부러 음식을 배달시켜 배달부와 인터뷰를 하고, 극중 디스코 춤 장면을 위해 2~3개월 간 춤을 배웠다.

천주교 신자인 그가 '만다라'(1981, 임권택 감독)를 찍을 때는 구도승의 내면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불교 전문 서적과 불경까지 탐독했다. 일상에서도 삭발한 머리와 승복 차림으로 다녀 스님으로 오해 받기도 했다.

영화 '만다라' 의 한 장면.
'고래사냥'(1984, 배창호 감독)에 거지로 출연한 안성기는 남대문 시장에서 3000원 짜리 헌옷을 산 뒤, 손수 꿰매 붙인 안쪽 주머니에 젓가락, 빗, 가위, 조미료 등을 채워 넣었다. 촬영 현장에서 길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주워 피우는 걸 보고, 감독이 진짜 거지로 착각해 담배를 건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영화 '고래사냥'의 한 장면.
빨치산 역을 맡은 '남부군'(1990, 정지영 감독) 때 일화도 유명하다. 막바지 실내 세트 촬영 중이던 그는 덥수룩한 수염과 더벅 머리, 헤진 군복 차림으로 친한 후배 결혼식에 참석했다.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있었음에도 군복 차림 그대로 간 건, '촬영이 끝나기 전까지는 빨치산 이태로 살아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유니폼은 오래 입어야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역할 만들기를 위해 의상을 계속 입고 있는 건 중요한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영화 '남부군'의 한 장면.
안성기는 '헤어드레서'(1995, 최진수 감독)의 미용사 연기를 위해 미용 기술을 배웠고, '피아노 치는 대통령'(2002, 전만배 감독)에선 한 번도 쳐본 적 없는 피아노를 연주하기 위해 4개월 간 건반과 씨름했다.

위험한 장면도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소화했다. '꼬방동네 사람들'(1982, 배창호 감독)을 촬영할 때는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고, '칠수와 만수'(1988, 박광수 감독) 때는 30m 높이의 빌딩 광고탑에 직접 페인트를 칠하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 배창호 감독) 촬영 때는 NG가 계속 나는 바람에 14번이나 한겨울 차가운 강물에 몸을 던져야 했다. 그가 유일하게 대역을 쓴 건 '깊고 푸른 밤'(1985, 배창호 감독)과 '베를린 리포트'(1991, 박광수 감독)의 베드신이었다고 한다.

김경진 기자
그는 겹치기 출연을 하지 않았다. "자기 축적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연기는 상식적인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는 지론 때문이다. "재충전 기간에 책을 한 권이라도 읽은 배우는 다음 작품에서 눈빛이 달라진다"며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제안 받은 시나리오는 꼼꼼히 읽고, 거절할 때는 제작자나 감독을 직접 만나 이유를 설명하는 것도 그의 원칙이었다.

"촬영 전날엔 숨 하나라도 아껴두고 싶은 생각에 빨리 걷지도, 큰 소리를 내지도 않고 조용히 지냈다"고 한다. 평소엔 과묵하지만 촬영에 들어가면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는 안성기에게 정일성 촬영감독은 '독일 잠수함'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수차례 정치 입문 제의를 받았지만, "배우의 길을 계속 걸어 배우의 정년을 늘리고 싶다. 그게 후배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며 모두 고사했다.

그는 '페어 러브'(2010, 신연식 감독) 등 재능 있는 신인 감독들의 작품에 노개런티로 출연하기도 했다. 배우 출연료가 제작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걸 감안해 개런티를 자신이 정한 수준 이상으로 받지 않았다.

영화 '무사'에 출연한 안성기. 사진 싸이더스
소탈과 배려는 안성기의 인품을 설명하는 키워드다. 중국 사막 지대에서 '무사'(2001, 김성수 감독)를 촬영할 때, 무더운 날씨에 찬 음료가 떨어져 배우들이 짜증을 내자, 최고참이던 그가 미지근한 물에 차를 타서 마시며 "미지근해도 목 마르지 않으면 되잖아"라는 말로 날선 현장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고 한다. 혹독한 환경에서 고려인들을 이끌던 무사 진립 캐릭터처럼, 그는 촬영 현장에서도 정신적 지주였다.

안성기에게 영화 외의 또 다른 즐거움은 유니세프 활동이었다. 1991년부터 오랫동안 유니세프 홍보·친선 대사로 활동한 그는 '하얀 전쟁'(1992, 정지영 감독)을 찍은 뒤 후원자들에게 영양실조와 질병에 시달리는 베트남 아이들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유니세프 활동 일정을 촬영 스케줄보다 우선해서 짤 정도였다. 항암 치료로 병세가 잠시 호전됐을 때는 "환자들이 친구처럼 느껴졌다"며 치료 중이던 서울성모병원에 1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오래 전 영화 관련 행사에서 그는 "가십 거리 하나 던져준 게 없어서 연예부 기자들에게 미안하다"는 농담을 했다고 한다. 김형석 영화평론가는 "스타 배우들은 많았지만, 안성기는 배우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범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전무후무한 영화인"이라며 "연기 외길을 걸어간 구도자 같은 존재였다"고 말했다.



정현목([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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