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원내대표)이 2023년 12월 이재명 당시 의원실에 전달된 ‘공천 대가 수수’ 의혹 관련 탄원서를 가로채 보좌진에게 강제로 보관을 지시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경찰이 확보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탄원서는 전직 서울 동작구의원들이 김 전 원내대표의 부인 이모씨에게 공천을 위한 돈을 전달했다가 돌려받았다는 내용이다.
5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 전 원내대표의 전직 보좌진 A씨는 지난해 11월 서울 동작경찰서에 이같은 내용을 담은 진술서를 제출하고 탄원서를 함께 첨부했다. A씨는 진술서에 대해 “최소한 경찰이 인지 수사라도 할 수 있도록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2대 총선을 앞둔 2023년 12월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에게 전달하는 용도로 작성된 탄원서는 전 동작구의원 두 명이 2020년에 김 전 원내대표의 부인 이씨에게 각각 수천만원을 전달했고, 수개월 뒤 돌려받았다는 내용이다. 탄원서에는 “이씨가 (저의) 딸을 주라고 새우깡 한 봉지를 담은 쇼핑백을 건네 줘서 받았더니 그 쇼핑백 안에 2000만원이 담겨 있었다”는 구체적 정황도 담겨있다.
보좌진이 보관하다가 경찰에 제출했다는 탄원서는 이수진 전 민주당 의원 측이 김현지 당시 이재명 의원실 보좌관(현 청와대 제1부속실장)에게 전달했다는 탄원서와 같다. 이 전 의원은 통화에서 “탄원서 전달 사흘 후 (우리 의원실 보좌관이) 김현지 보좌관에게 문의해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보고됐고 윤리감찰단으로 넘길 예정이다’는 답변을 받았었다”며 “그 이후 윤리감찰단에 문의해보니 ‘우리들은 내용을 모르고 공직선거 후보자 검증위원회 쪽으로 넘어간 것으로 안다’는 통보가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결국 김 보좌관에게 보낸 탄원서가 외려 당시 검증위원장이었던 김 전 원내대표에게 전달되면서 사건이 유야무야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내부자의 증언이 드러난 만큼 향후 김현지 실장 등으로 경찰의 수사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 전 원내대표와 관련된 비위 의혹이 담긴 탄원서를 받아서 그에게 넘겨준 게 “이재명 당시 대표 혹은 지도부 관계자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야권 관계자)이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탄원서에 담긴 주장은 정치자금법 위반, 뇌물수수 등 범죄 혐의를 적용해 수사해야 하는 사안인데, 누군가가 이를 인지하고도 방조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도 같은날 서울경찰청에 김 실장 등 6명을 고발했다. 사세행은 고발장에 “김 실장이 탄원서를 전달받아 그 내용을 인지했음에도 사건 업무 방해 행위를 묵인방조했다”고 적었다. 이와 관련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김 실장이 대표실에 탄원서를 전달한 건 맞다”면서도 “그 이후는 의혹인 것이고 규명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관련 내용을 2달 전에 확보한 경찰이 수사를 착수하는 등의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동작경찰서 관계자는 관련 질의에 “당시 보좌진의 진술 이후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었다”고 답했다. 이어 ‘입건 전 조사(내사) 단계였느냐’고 묻는 말에는 “답변이 어렵다”고 말했다. 진술이 있었던 지난해 11월 당시 재직했던 동작경찰서장 B씨는 즉답을 피했다.
한편 김 전 원내대표가 과거 배우자와 관련된 경찰 수사 무마를 시도하는 등 비위를 덮으려 했다는 증언도 이어지고 있다. 2024년 김 전 원내대표가 경찰 출신 친윤석열계 국민의힘 의원에게 부인의 업무추진비 유용 사건 수사를 무마해달라고 청탁했다는 취지의 진술 등이다. 결국 비위 의혹 자체와 함께 ▶배우자 수사 무마 ▶탄원서 묵살 시도 등까지 수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서울경찰청은 김 전 원내대표의 공천헌금 의혹 사건을 공공범죄수사대에 배당하고 수사를 시작했다.
김 전 원내대표는 이날 한 유튜브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제기된 여러 의혹들을 입증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특히 제 안사람과 관련된 건은 수사해 보면 명명백백히 밝혀질 것”이라며 “(탄원서를 쓴) 구의원 두 분은 총선 출마 후보자도 아니었고 그들은 내 경쟁자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보좌직원들을 탓할 건 추호도 없다. 지지해 주신 당원과 국민께 정말 죄송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