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에서의 야생 멧돼지 출현은 이제 일상이 되다시피 했다. 멧돼지들이 등산객이 빈번히 오가는 등산로 옆으로까지 나타나 머무는 일이 잦아졌다. 이런 데다 등산객들이 가까이 있어도 달아나지 않고 먹이를 받아먹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3일 낮 12시쯤 서울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국립공원. 중앙일보 취재진이 도선사 천왕문을 지나 등산길을 따라 100여 m를 오르자 등산객 10여 명이 모여 난간 아래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일부는 휴대전화로 이색적인 장면을 촬영하는 모습이었다.
난간 4∼5m 아래 축대와 맞닿은 산기슭에는 큼지막한 멧돼지 한 마리가 등산객들이 쳐다보고 있는데도 등산객들을 응시하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멧돼지는 나무에 몸을 비비기도 했다. 어미 멧돼지 주변에선 새끼 멧돼지 한 마리가 머물며 땅바닥의 낙엽을 뒤집으며 놀고 있었다. 어미는 이런 새끼를 수시로 주시하며, 주위를 살피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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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와 새끼 멧돼지…등산로 주변에 머물러
이후 멧돼지가 먹이를 찾아 땅바닥을 두리번거리자 구경하던 등산객 중 일부가 멧돼지를 향해 밤과 귤, 떡국 떡 등을 축대 아래로 던져줬다. 멧돼지는 이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먹이를 주워 먹었다. 멧돼지 주변에선 까마귀 몇 마리도 머물며 멧돼지 등에 올라타거나 남은 먹이를 얼른 집어 먹는 모습이었다. 이때 한 등산객이 “멧돼지에게 먹이를 주면 안 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곳 가드레일에는 ‘멧돼지 출현 주의!’라고 붉은 글씨를 쓴 플래카드가 붙어있었다. 플래카드에는 ‘등산로 주변에 음식을 버리지 마세요’ 등 주의 사항이 적혀 있었다. 등산객 이모(65)씨는 “등산로에서 저렇게 커다란 멧돼지와 맞닥뜨리게 되면 정말 아찔할 것 같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대도시 서울의 북한산에서 멧돼지와 마주하게 된 게 신기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은 그간의 멧돼지 관련 연구자료와 과학적 분석기법을 활용해 제작한 ‘멧돼지 안전관리지도’를 지난달부터 북한산 등 도심형 국립공원 현장에 적용하기 시작했다고 5일 밝혔다. 공단 측은 북한산성, 우이암, 오봉, 보국문 등 4개의 탐방로가 멧돼지의 출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추정했으며, 이를 지도상에 원 형태로 표시했다.
해당 구간을 이용하는 탐방객은 입산시간지정제 및 법정 탐방로를 준수해야 한다. 또 죽거나 아픈 동물 신고하기 등 관련 안전수칙을 따르고 멧돼지 폐사체 발견 시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 예방을 위해 국립공원공단,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지자체 등 관계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이 지도는 국립공원 탐방알리미앱 또는 탐방로 일원에 설치된 정보무늬(QR) 코드를 이용해 스마트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대영 국립공원공단 이사장은 “멧돼지 위험을 예방하려면 반드시 법정 탐방로를 이용하는 등 탐방객 안전수칙 준수가 선행돼야 한다”며 “이번 안전관리지도처럼 앞으로도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연생태계 보전과 탐방객 안전관리를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