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하며 지정학적 긴장감이 높아졌지만, 국제유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시장에서는 지정학적 충격보다 글로벌 공급 과잉에 대한 인식이 유가의 흐름을 좌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5일(현지시간) 자정 무렵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배럴당 57달러 선에서 움직였다. 런던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선물도 60.53달러에 거래됐다. 각각 전 거래일보다 보다 0.5%, 0.4% 하락한 수치다. MST 파이낸셜의 애널리스트 사울 카보닉은 “트레이더들이 실제 공급 차질로 이어지지 않는 지정학적 리스크 고려에 점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짚었다.
이처럼 시장은 베네수엘라 변수보다 원유 공급 과잉에 더 주목하고 있다. 4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ㆍ러시아가 포함된 산유국 모임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는 1분기까지 원유 증산을 일시 중단하는 기존 방침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국제유가는 약 20% 떨어졌는데, 올해도 하락 전망이 앞선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이 수요량보다 하루 평균 380만 배럴가량 많을 것으로 봤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마두로 정권을 전복시킨 이후, 미국 석유회사들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인프라 재건에 수십억 달러(수조원)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분석가들은 베네수엘라의 수출에 즉각적인 변화는 크지 않을 거라 전망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산 원유에 대한 금수 조치도 현재 유지되고 있다.
이날 로이터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 PDVSA가 원유 생산 감축에 나섰다고 전했다. 미국의 석유 봉쇄 조치로 수출량이 ‘제로(0)’에 가까워지자 PDVSA는 재고를 저장할 시설이 부족한 문제에 직면했다. 소식통은 “초중질유 과잉 축적과 희석제 부족이 원인”이라며 “최대 10개의 유정 클러스터 폐쇄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베네수엘라의 원유 매장량은 2024년 기준 3032억 배럴로, 전 세계 매장량의 약 17%를 차지한다. 하지만 원유 생산량은 전 세계 생산량의 1% 미만에 그친다. 지난해 11월에 하루 약 11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해 이중 95만 배럴을 수출했지만, 미국이 제재 수위를 높이면서 12월 수출량은 전달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이 때문에 베네수엘라 사태가 국제유가를 당장 끌어올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골드만삭스는 보고서에서 “베네수엘라의 혼란으로 인한 유가 변동 위험은 미국의 제재 정책 전개 양상에 따라 불확실하고 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리서치업체 서드 브리지의 피터 맥널리는 “베네수엘라 원유는 품질이 낮아 국제 기준유 대비 구조적으로 저평가돼 있다는 것도 시장의 일치된 견해(컨센서스)”라고 설명했다.
다만 유승민 삼성증권 수석전략가는 “미국이 추가로 대규모 군사작전을 수행할지, 또한 장기전으로 연장될지 등이 중요한 잠재적 변수”라며 “향후 수일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이날 자금은 안전자산으로 이동했다. 현지시간 5일 자정 기준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선물 가격은 온스당 4415달러로 전장 대비 1.97% 상승했다. 은 선물도 5% 넘게 오른 75달러대에 거래됐다. 주요 6개국 대비 달러 가치인 달러인덱스 역시 98.73으로 0.32% 올랐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9ㆍ11테러나 이라크 전쟁 당시 금 가격은 10~20% 급등했다”며 “이번에도 지정학적 불확실성으로 금 가격에 상승 압력이 이어질 수 있지만, 과도한 랠리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달러에 대해선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안전통화 수요로 단기 강세를 보일 수 있으나, 중기적으로는 군사 행동에 따른 재정 부담 확대와 외교 리스크 누적이 달러 약세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