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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 사태, 中 ‘대만 지배’ 정당화 명분 제공…한국도 구조적 딜레마”[outlook]

중앙일보

2026.01.04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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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성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서울대 교수


미국의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작전은 국제사회에 심대한 충격을 줬다. 자국 안보에 대한 명백하고 직접적인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타국의 영토 내에 무력을 투사한 것은 유엔 헌장이 규정한 무력 사용 및 위협 금지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예정된 마두로 대통령 재판 역시 국제사법 체계에서 국가 원수가 향유하는 면제권의 문제와 직결되며, 향후 법리적 공방과 정치적 논란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이번 사태는 베네수엘라 국내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법 질서와 주권 개념 자체를 시험하는 사건으로 확대되고 있다.

전재성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서울대 교수. 중앙포토.

미국이 다른 주권국가의 내정에 무력으로 개입한 사례는 다수 존재한다. 냉전기 동안 제3세계의 쿠데타와 정권 교체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사례가 70회가 넘는다는 연구도 있다. 이라크, 파나마, 그라나다 등 타국 정상에 대한 명시적인 무력행사 사례도 자주 인용된다.

주목할 점은 트럼프 정부가 제시하는 외교 대전략의 맥락, 정당화의 내러티브다. 과거 미국은 무력개입이 민주주의 확산과 자유주의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 수호를 위한 불가피하고 예외적인 조치였음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에 개입한 이유가 자국의 핵심이익인 이민 통제, 마약 근절, 베네수엘라 원유 통제라는 점을 숨기지 않는다. 독재자 제거와 민주주의 복원, 지역의 안정과 평화, 또는 러시아와 중국의 서반구 개입 방지 등 낯익은 수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미군이 기습적인 군사 작전으로 체포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사진을 트루스소셜에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강습상륙함 이오지마에 탑승한 마두로 대통령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트루스소셜.

트럼프 정부의 의도는 12월 초 군사 작전이 준비된 시점과 동시에 공표된 백악관의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레이건 국방 포럼 연설을 통해 쉽고 포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과거 미국의 전략문서는 바람직한 국제질서와 미국의 리더십에 대한 가치 담론으로 채워지고, 무력 개입과 같은 이면의 현실을 합리화하는 기능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 문서는 그러한 가치 담론 없이 전략적 의도를 매우 솔직하게 내보여 오히려 ‘역설적 언행일치’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서반구 전략, 즉 ‘트럼프판 먼로주의(돈로주의)’를 구체적으로 표명한다. 포섭(Enlist)과 확장(Expand) 전략으로 역내 우방국들을 축으로 불법 이민 통제, 마약 카르텔 소탕, 역내 안정화 등 미국의 국익에 직결된 안보 과제를 분담하게 하면서 전략적 자원을 확보하고 중국과 러시아 등 역외 경쟁 세력의 영향력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 작전은 이제 시작될 미국 중심의 서반구 질서 재편의 신호탄으로 봐야 한다.

문제는 군사작전 성공 이후 불거질 대내외적 파장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은 신속한 군사적 승리를 선언했지만, 이후 안정화에 실패하며 장기간의 ‘영원한 전쟁(forever war)’에 휘말렸다. 베네수엘라에서도 정치세력, 군부, 경제난에 지친 대중의 반발이 결합돼 ‘베네수엘라 경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 트럼프 대통령은 심각한 딜레마를 겪을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한 '확고한 결의' 작전 진행 상황을 참모들과 함께 지켜보고 있다. 트루스소셜.

우선 지상군 파견이나 장기개입은 미국 우선주의를 지지하는 마가(MAGA) 세력의 고립주의적 성향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 일관되게 비판해 온 네오콘의 이라크 전쟁이나 자유주의 국제주의자들의 개입주의는 지상군 투입과 장기 점령이라는 막대한 비용으로 귀결되곤 했다.

베네수엘라에서 정유 시설을 장악하고 석유 기업이 진출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매력적일 수 있다. 그러나 군사 봉쇄가 장기화하면서 치안과 인프라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된다면, 이는 미국우선주의가 지향해 온 군사적 자제 및 비용 절감의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마가 진영은 물론, 미국 의회의 본격적 반발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21세기 서반구의 정치 현실과 19세기적 먼로주의 간 충돌의 문제다. 주권 평등의 시대에 브라질을 비롯한 좌파 정권 국가들은 미국의 개입을 주권 침해로 규정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유엔 헌장의 무력 사용 금지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동은 서반구에서 미국이 유지해 온 도덕적 지도력을 급속히 약화시킬 수 있다. 강압적 개입은 지역 국가들이 중국과 러시아에 접근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셋째, 가장 중대한 문제는 미국이 서반구를 영향력 아래 두려는 서반구 세력권 정책이 내포한 이중잣대의 문제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장악은 중국과 러시아에게 자신들의 근외(near abroad) 지배를 정당화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한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진핑은 제1도련선 내의 지배권을 미국의 서반구 장악과 동일한 논리로 정당화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이 지역 패권을 구축하는 것을 명백히 거부하고 견제하는 세력 균형 전략을 천명하고 있다. 미국의 국익에 핵심적인 인도태평양에서 강력한 군사력과 지속적인 개입이 필수적이라는 논리를 공식화한 것이다. 서반구의 세력권과 동반구의 세력 균형이라는 비대칭적 이중전략은 중국과 러시아의 외교·군사적 반발을 불러올 것이다.

전재성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서울대 교수. 중앙포토.

한국도 구조적 딜레마에 직면한다. 서반구에서 타국의 주권을 무시하고 실력 행사를 단행한 미국이 중국의 세력권 요구를 거부할 명분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중국이 베네수엘라 사례를 원용해 대만을 포함한 주변국에 대해 자신의 세력권 권리를 강하게 주장할 때,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미국은 동맹국의 기여를 더욱 강하게 요구하거나 중국과 타협을 고려할 수도 있다. 올해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정부는 이미 중국과 ‘전술적 데탕트’ 국면을 추구하고 있어 대중 전략의 일관성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거래적 접근은 더욱 직접적인 위험을 수반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더 이상 독재 정권을 인권이나 민주주의라는 규범적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으며, 이러한 탈규범적 태도는 대북 협상에도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향후 북·미관계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실리를 극대화하기 위한 거래의 장이 되지 않도록 한국은 독자적인 외교·안보 논리를 구축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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