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배우 박중훈(60)의 목소리는 침통에 겨운 듯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선배 안성기와 함께 한 40년의 세월. 그에게 안성기는 존경하는 선배이자, 스승이자, 친구였다.
‘칠수와 만수’(1988), ‘투캅스’(1993),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라디오 스타’(2006) 등 네 편의 영화를 함께 찍었다. 그리고 대종상 남우주연상 공동 수상(‘투캅스’),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공동 수상(‘라디오 스타’) 등 영광의 순간을 함께 했다. 둘은 명실상부한 ‘흥행 불패의 파트너’였다. 지난달 31일 안성기가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간 이도 박중훈이었다.
그는 “슬프다는 말로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며 어렵게 입을 뗐다.
Q :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는.
A : “발병 후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 2023년 부천영화제 끝나고 가진 회식에서 ‘선배님이 계셔서 제 인생이 참 좋았습니다’라고 말씀 드렸더니, 흐뭇한 듯 빙긋이 웃으셨다.”
Q : 안성기 선배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나.
A : “선배는 가족을 제외한 모든 생활의 우선 순위를 연기에 뒀다. 겹치기 출연도 안했다. 엄격한 자기 관리, 완벽주의 성향이 있었지만, 늘 남의 아픔에 공감하고 상대를 배려한 인격자였다. 자기 성찰 속에 절제와 배려를 실천하는 삶을 보며 성직자 같다는 생각을 했다.”
Q : 수도승 같은 삶을 보며 짠하지 않았나.
A : “원래 에너지가 많고, 예민하고 섬세한 분이다. 늘 겸손하고 자제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타고난 인격자는 없다는 걸 느꼈다. 부정적 에너지와 화를 안으로 삭이느라 얼마나 힘들었겠나. ‘골프가 안될 때 예민한 것 같다’는 지적에 ‘골프가 안돼도 기분 상해 하지 말 것, 동반자 신경 쓰이게 하지 말 것’이라고 적은 쪽지를 갖고 다녔던 분이다. 선배에게서 한결 같은 사람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를 선배로 모시고 많은 걸 배웠다는 게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다.”
Q : 선배와의 추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걸 꼽는다면.
A : “‘라디오 스타’ 찍을 때 영화에도 나왔던 숙소에 묵었는데, 나와 선배, 이준익 감독 모두 복도를 사이에 두고 각자 방문을 열어 놓은 채 지냈다. 고구마 구워 먹고, 장기도 두고, 작품 얘기도 하면서 3개월 간 대학생 기숙사처럼 지냈다. 쉬는 날 동강에서 낚시도 했는데 그런 기억들이 선명하다.”
Q : 남우주연상 공동 수상, 흥행, ‘국민 배우’ 타이틀 등 함께 이룬 게 많다.
A : “영광의 시간이었다. 선배와 함께 ‘투캅스’ 시리즈를 이어가고 싶었는데, 미완의 꿈으로 남게 됐다. ‘투캅스’ 말고도 나이에 맞는 연륜과 깊이가 있는 연기를 함께 했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도 든다.”
Q : 다음 생이 있다면 어떤 관계이고 싶나.
A : “다음 생에도 선배와 같은 배우로 만나 영화를 네 편 더 찍고 싶다. 이번 생에서 함께 찍은 네 편의 영화처럼 재미있고 감동적인 작품에서 다시 찰떡 호흡을 맞추고 싶다.”
Q : 안성기 배우의 묘비에 새겨 넣고 싶은 문구는.
A : “(한참을 고심한 뒤) 그토록 겸허하게 살았던 사람, 그토록 사랑 받았던 배우, 여기에 잠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