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얼굴) 중국 국가주석 간 “깊은 우정과 확고한 신뢰”(지난 5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에 방점을 찍었고, 중국은 “보호주의에 함께 반대하고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해야 한다”(6일 중국 신화사 공식 보도)며 미국을 겨냥하는 입장에 ‘전략적 동조’를 요구했다.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관계의 막힌 혈은 뚫렸지만, 주요 안보 현안에서는 이견을 확인한 채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는 더 어려운 외교적 숙제를 받아들었다.
이 대통령은 5일 시 주석에 이어 6일에는 리창(李强) 국무원 총리와 자오러지(趙樂際)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 상무위원장 등 중국 권력 서열 1~3위를 모두 만났다. 9년 만의 국빈방문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의전이었다.
하지만 문서화된 결과물이 안 나왔다. 중국이 최근 러시아 등 입장이 유사한 국가에 대해서만 정상회담 결과물을 내놓는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역대 한국 정상이 국빈 방중한 뒤 공동성명이나 공동 언론 발표가 나오지 않은 건 1차 북핵 위기와 겹친 1994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로 인한 갈등이 심했던 2017년 정도였다.
현안인 한한령(중국 내 한류 금지령)에 대해서는 “수용 가능한 부분부터 점진적·단계적 문화 콘텐트 교류를 확대하기로 했다”는 정도의 결론만 나왔다. 중국이 무단 설치한 서해 구조물에 대해선 “건설적 협의”를 계속하기로 했다.
올해 안에 차관급 해양 경계 획정 공식 회담을 개최하기로 한 건 구체적 진전이지만, 회담이 열려도 기존의 의견 대립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또 청와대가 서해를 “공영(共榮)하는 바다”로 표현한 게 향후 중국이 권리를 주장하거나 서해 구조물을 철거가 아닌 협의 대상으로 몰아가는 논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 측 발표문에는 양 정상이 ‘합의했다’는 표현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서로의 핵심 이익을 배려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올바른 편에 굳건히 서서 올바른 전략적 선택을 내려야 한다” 등 시 주석의 발언 대부분은 ‘应’(마땅히 해야 한다)와 ‘要’(해야 한다) 등으로 표현됐는데, 훈계조로 들릴 여지도 있다. 다자주의를 언급하며 “평등하고 질서 있는 세계 다극화에 기여해야 한다”고 한 건 베네수엘라 사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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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성명 없는 9년만의 국빈방문
…주요 현안은 “계속 협의”
한국에 사실상 이에 대한 입장 정리를 압박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가 관심을 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 견인과 관련해 위 실장은 “양국은 북한과의 대화 재개 중요성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국 발표에는 한반도 관련 내용 자체가 등장하지 않았다. 위 실장은 “중국이 지금도 건설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계속하겠다는 취지의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한국 측 자료에도 비핵화라는 단어는 없었다. 강유정 청와대 대변인은 “한반도 평화·안정이 양국의 공동 이익이라는 인식을 재확인했다”고만 밝혔다. 한국 스스로 비핵화 목표를 흐렸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대만해협 문제를 두고 공개적 파열음은 없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중국중앙방송(CC-TV) 인터뷰에서 “‘하나의 중국’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라고 했고, 정상회담에서도 이를 확인했다.
하지만 신화통신 영문판은 한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한다”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하나의 중국에 대해 ‘원칙’이라고 하지 않고 ‘입장 존중’이라고 하는데, 이를 또 왜곡한 것이다.
국빈 만찬에서 중국 인민군 군악대가 펑리위안(彭麗媛) 여사의 히트곡 ‘누가 우리 고향을 좋다고 말하지 않겠소’를 연주한 것도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일 수 있다. 이 노래는 1940년대 국공내전 당시 공산당이 대승을 거둔 멍량구(孟良崮) 전투를 다룬 영화 ‘붉은 태양(紅日)’에 삽입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 대통령을 국빈으로 환대하면서 다소 이중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중국군은 지난 4일 미사일 전력인 로켓군 등 육·해·공군을 총동원한 새해 훈련을 진행했다. CC-TV 공개 영상에서는 한국과 일본은 물론 남중국해까지 사정권에 넣는 극초음속미사일 DF(둥펑·東風)-17이 포착됐다. 연례적인 훈련이긴 하지만, 이를 조정 없이 시행한 건 이 대통령 국빈 방중에 대한 배려 부족으로 비칠 수 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양자 간 주요 현안 합의에 대한 설명이나 후속 조치가 따르지 못한다면 2개월 만의 정상회담이 지니는 전략적 의미가 퇴색할 것”이라며 “양해각서(MOU) 체결은 협력 범위 확장을 의미하지만, 실행 여부는 숙제”라고 말했다.
중국은 한국이 대일 견제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속내도 숨기지 않았다. 시 주석은 “80여 년 전 중·한 양국은 일본 군국주의에 맞서 승리를 거뒀다”며 “오늘날 더욱 손을 맞잡고 제2차 세계대전 승리의 성과를 수호하고,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의 7일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옛터 방문에 대해 중국 매체들은 “역사 문제가 끝나지 않았다는 대일 메시지”라며 군불을 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