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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시진핑은 붉은색, 트럼프는 푸른색…용문액자 선물 숨은 사연

중앙일보

2026.01.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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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5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국빈만찬 후 샤오미폰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샤오미폰은 경주 정상회담 때 시 주석이 이 대통령에게 선물한 것이다. 연합뉴스
민화전통문화재 2호인 엄재권 화백과 국가무형문화재 금박장인 김기호 금박연 대표는 지난해 12월 정부 관계자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중요한 외교 선물로 쓰일 작품을 의뢰하는 내용이었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며칠 밤을 새다시피 하며 작품 완성에 정성을 들였다. 그때까지는 해당 작품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이재명 대통령의 선물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30일 청와대가 이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 일정을 공식 확인하면서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실제 시 주석에게 선물로 전달됐다는 걸 확인한 건 언론 보도가 나온 지난 5일이었다. 엄 화백은 6일 통화에서 “한국 대통령이 외국 정상에게 한국의 전통 민화를 선물한 적이 내 기억으론 이번이 처음”이라며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 할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일 자정에도 보신각 인근 화실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작업에 열중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을 기념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우호·협력관계의 심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엄재권 화백이 그린 기린도를 선물했다. 사진 청와대
정부 관계자는 애초부터 중국 신화를 담은 ‘기린도(麒麟圖)’를 콕 집어 엄 화백에게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고 한다. 엄 화백은 상상 속 동물인 기린이 그려진 민화 여러 점을 소개했고, 정부 측에선 천도복숭아와 모란꽃도 포함된 19세기 후반 작자 미상의 기린도를 낙점했다. 엄 화백은 “중국 전설에 관한 내용을 한국의 전통 화법으로 한국 전통 한지에 그렸다”며 “이 그림이 한·중 양국의 우호와 평안을 기원하는 작은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기호 대표의 정상외교 선물 제작은 이번이 두 번째다. 당시 언론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2017년 11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한국을 처음으로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대표의 금박 용문(용보 문양) 액자를 선물했다. 이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김 대표의 금박 용문 액자를 선물하면서, 결과적으로 현직 미·중 정상이 모두 김 대표의 금박 용문 액자를 소장하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란색 비단에 수놓아진 정룡(정면을 보는 용) 주위를 여러 행룡(걸어가는 용)과 운문(구름 모양 장식)이 감싸고 있는 형상이고, 시 주석의 경우 붉은색 비단에 정룡이 그려진 용문 주위를 국화당초와 운문이 둘러싼 모양이다.

중국을 국빈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일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국가무형문화재 금박장 김기호 금박연 대표가 제작한 금박 용문 액자를 선물했다. 사진 청와대
2017년 11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한국을 국빈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기호 금박장이 제작한 파란색 바탕의 금박 용문 액자를 선물했다. 사진 금박연
용을 형상화한 용문은 조선 왕실 문양의 상징으로, 왕이 입던 곤룡포 등에 활용됐다. 비단 위의 금박 용문은 ‘금상첨화(錦上添花)’로 묘사되기도 한다. 시 주석 선물은 “기존 작품보다 더 화려하게 해달라”는 정부 측 요청에 따라 액자 테두리에도 금박으로 연화당초 문양을 넣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6일 통화에서 “당초 행룡 문양도 후보군에 올랐는데 그건 사(四)조룡(발톱이 네 개인 용)이었다. 사조룡은 사대주의적인 의미가 있어 발톱 하나를 추가해 오조룡으로 바꿨는데, 결국 원래 오조룡인 정룡 문양이 채택됐다”며 “밤샘 작업으로 고됐지만, 대한민국의 외교와 사회에 기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행복하게 일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조선 철종 때 왕실 내수사에서 금박 일을 시작한 고조부에 이어 5대째 금박 공예 기술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아내 박수영씨는 금박장 이수자로, 그의 아들은 전수생으로 6대째 가업을 이을 준비 중이다.



하준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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