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6일 일본에 대해 군용 목적으로 전환이 가능한 ‘이중용도’ 품목 수출을 금지한 건 중·일 갈등의 중대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이미 희토류 수출 규제로 일본에 큰 타격을 준 적이 있는 중국이 ‘필승 카드’를 또 꺼낸 건 대만 해협 문제로 촉발된 대일 압박을 흐지부지 끝낼 생각이 없다는 의지의 표명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등 역내 다른 국가들에 보내는 경고이기도 한데, 중국산 희토류를 일본에 수출한 제3국까지 처벌하겠다는 2차 제재(세컨더리 보이콧) 방침은 대중 희토류 의존도가 90%에 가까운 한국에도 실질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7일 중국 상무부의 관련 조치에 대해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중”이라며 “해당 조치들이 우리 기업에 미칠 수 있는 직·간접적 영향을 면밀히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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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전유물 ‘세컨더리 보이콧’, 이제 자원 쥔 中의 무기로
원론적인 입장이지만, 정부는 경제안보적 여파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공교롭게도 이번 조치가 이재명 대통령의 국빈 방중 중에 발표된 데다 ‘제3국 경유 및 양도 시 법적 책임’, 즉 사실상의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하겠다고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산 희토류를 가공한 뒤 일본 군사 관련 사업자에 파는 제3국 기업이나 개인을 처벌하겠다는 의미로, 한국 기업도 대상이 될 수 있다.
사실 세컨더리 보이콧은 그간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전유물로 인식돼 왔다. 모든 달러는 결국 미국으로 모여들기 때문에 이를 피해갈 수 없다는 점에서 미국 독자 제재를 막강하게 만드는 무기였다. 이는 대이란 제재 등에서 실제 큰 효력을 발휘했다. 아예 제재 대상 국가와는 달러 거래 자체를 못 하게 하는 일종의 ‘왕따 전략’이다.
그런 세컨더리 보이콧을 이제는 중국이 무기로 휘두르고 있다는 점을 외교가에선 주목하고 있다. 여기엔 중국의 자원 없이는 최첨단 제품들을 생산할 수 없다는 중국의 자신감이 깔렸다.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이 ‘달러 결제망에서의 퇴출’로 의미한다면, 중국은 ‘글로벌 제조 공급망에서의 퇴출’을 무기로 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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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패소의 교훈, 더 강하고 교묘해진 희토류 공격
앞서 지난 2010년 중·일이 영유권 갈등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인근에서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중국 어선과 충돌, 중국인 선장을 구속하자 중국은 전방위 보복에 나섰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 중단으로 압박하자 일본은 결국 선장을 석방할 수밖에 없었다.
석방 뒤에도 중국은 한동안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 제한을 지속하는 한편 전반적인 희토류 수출 쿼터를 축소하는 등 본격적인 희토류 무기화에 나섰다. 일본과 미국, 유럽연합(EU)이 세계무역기구(WTO) 중국을 제소하기에 이른 배경이다.
WTO는 2014년 일본 등의 손을 들어줬다. 중국은 쿼터 제한 사유로 자원 및 환경 보호를 들었는데, WTO는 “자원 보존을 위한 수출 제한이라면 자국 내 소비도 동일하게 제한해야 한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중국은 2001년 WTO 가입 당시 일부 특정 품목을 제외하고는 수출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약정했는데, 희토류는 이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협정 위반에 해당한다고 봤다.
중국이 이번에 “일본의 대만 관련 발언”을 이유로 대면서 수출 통제 대상을 희토류로 특정하지 않고 이중 용도 품목으로 광범위하게 정한 건 당시 패소로부터 얻은 교훈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WTO 협정에는 안보 예외 조항이 있다. 지난번에 자원 보호를 핑계로 댔다가 패소하자 이제는 핵심 이익에 직결되는 대만 문제를 들어 ‘안보’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가 대만 유사시 자위대 개입을 시사한 만큼 일본에 수출된 물자가 중국을 공격하는 무기를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다는 논리를 만들었다.
이중 용도 품목은 희토류 뿐 아니라 반도체 소재나 항공기 부품 등 범위가 매우 넓다. 특정 품목 지정이라는 부담을 피해가면서 더 큰 칼을 휘두를 수 있는 그물을 쳐놓은 셈이다.
일본은 2010년 촉발된 희토류 쇼크를 겪으면서 수입원을 다변화했고, 대중 의존도를 90%에서 60% 수준까지 낮췄다. 하지만 전세계 희토류 시장을 중국이 장악하고 있어 한계는 여전하다. 일본의 ‘희토류 트라우마’를 자극하기에는 충분히 치명적인 조치라는 뜻이다. 특히 이번 조치는 안보 우려를 이유로 든 만큼 해제의 조건도 명확치 않다. 공급망 마비 장기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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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의존도 90% 한국도 비상
희토류 원재료의 89.4%를 중국으로부터 사들이는 한국으로선 우려가 더 크다.(관세청, 지난해 1~10월 기준) 중국이 세컨더리 보이콧을 꺼내든 건 ‘일본 시장’과 ‘중국산 소재’ 중에 선택하라는 압박이나 마찬가지다.
희토류만 문제가 아니다. 한국 무역협회의 지난해 8월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유입 전기차 등에 쓰이는 영구자석의 90.1%가 중국산이다. 차세대 전력 반도체의 핵심인 갈륨은 전세계 생산량의 98%를 중국이 독점하고 있다. 이차전지 음극재 핵심 소재인 흑연의 대중 의존도는 97%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중국의 대일 희토류 공격은 곧 한국 등 역내 국가 모두에게 보내는 경고라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중국은 이 대통령의 방중 기간 내내 “선린 우호를 견지하고,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며, 정치적 상호 신뢰를 공고히 하자”(6일 리창 총리)며 러브콜을 보내면서 한·일 ‘갈라치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는 한국이 대만해협 문제에 대해 지금처럼 거리를 두는 객관적 입장을 유지하지 않으면 언제든 일본과 같은 처지가 될 것이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는 역내 동맹이 대만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기여하도록 만드는 걸 핵심으로 하는 미국의 동맹 현대화 기조와 충돌하는 만큼 한국에도 언젠가는 진실의 순간이 다가올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동률 동덕여대 중국학과 교수는 “중국은 일본을 본보기로 삼아 대만 문제의 ‘레드 라인’을 그어 다른 나라들이 비슷한 입장을 취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며 “이번 조치는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경계한다는 측면에서 한·중이 우려를 공유하는 부분이 있는 만큼 이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이를 부각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