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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고무줄 의사 추계가 남긴 것

중앙일보

2026.01.07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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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스더 정책사회부 기자
의대 증원 문제는 지난 1년 반 동안 한국 사회를 갈라놓았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립은 장기화됐고, 진료 차질과 의료 공백으로 피해를 본 것은 결국 국민이었다. 이 갈등을 ‘과학적 추계’로 해결하겠다며 이재명 정부와 여당이 내놓은 해법이 바로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였다. 정치와 이해관계를 걷어낸 독립적 분석기구처럼 소개됐다. 그러나 지난 한 달간 벌어진 일은 ‘과학’이 얼마나 쉽게 흔들렸는지를 보여준다.

추계위는 5개월간의 논의 끝에 2035년과 2040년의 의사 부족 규모를 산정해 공개했다. 그런데 추계 결과는 한 달 새 두 번, 그것도 논의가 거의 마무리된 시점에 바뀌었다. 문제는 이 변화가 정교한 분석을 통해 자연스럽게 도출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달 8일 2040년 기준 의사가 최대 1만8700명 부족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그런데 불과 3주 뒤 발표된 최종 추계에서 이 수치가 1만1136명으로 크게 줄었다. 내부에선 “보건복지부가 그간 논의해온 모델 대신 국민 1인당 의료 이용량이 미래에도 유지될 거라고 가정한 의료계 모델을 다 받아준 결과”라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6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 보고된 추계 결과는 또 바뀌었다. 부족한 의사 수의 최소 수치가 당초 발표보다 689명 줄어든 5015명으로 바뀌었다.

의대생들이 집단 휴학 중이던 2024년 한 의대 빈 강의실에 학생들의 가운만 걸려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복지부는 “의대 정원 외 입학자, 임상 활동 의사 비율 조정 등 변수 변경에 따른 수정”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이 납득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변화의 과정 때문이다. 핵심 가정이 추계위 마지막 회의 말미에 제기됐고, 발표 시점엔 반영되지 못했다며 뒤늦게 수정된 사실은 예측의 일관성과 독립성에 의문을 남긴다. 의료계는 “시간에 쫓겨 졸속으로 추계했다”라고 비판하고, 환자·시민단체는 “의료계에 유리하게 과소 추계했다”라고 반발한다.

추계위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였다. 그러나 실제 운영 과정에서 정부는 석연찮은 개입으로 오히려 숫자를 둘러싼 새로운 갈등을 낳고 있다.

의대 정원 결정은 단기적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장기적 예측과 일관성이 요구되는 정책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숫자를 조금 더 줄이거나 늘리는 기술이 아니라, 그 숫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사회적 신뢰다. 과학을 앞세워 갈등을 줄이겠다면, 그 과학이 누구의 입장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전제가 먼저 충족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의사인력 추계는 해법이 아니라 또 하나의 논쟁거리가 될 뿐이다. 이대로는 추계위 결과가 제시될 때마다 논란과 갈등이 매년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스더([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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