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는 보통 사람의 삶도 기록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대중화한 매체였다. 지금까지 샘터가 꾸준히 다뤄온 것은 사람 이야기다. 이름 없는 이들의 삶, 말해도 되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소한 감정,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낸 기록들이 정기적으로 활자화됐다.
창간호엔 ‘근대화의 샘’ 박정희 휘호
671번째 샘터인 올 1월호를 구입하면 1970년 4월 발간된 창간호 복간본을 함께 준다. ‘정가 100원’이 찍혀있는 세로쓰기 잡지다. 창간호 표지 안쪽엔 ‘근대화의 샘’이라고 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휘호가 적혀있다. 근대화가 지상과제였던 시대 분위기에서 “평범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가벼운 마음으로 의견을 나누면서 행복에의 길을 찾아보자는 것이 샘터를 내는 뜻”(김재순 발행인의 창간사 중)이었으니, 당시로선 상당히 이례적인 시도였을 것이다. 근대화라는 대의에 가려진 개인의 목소리와 감정을 전면에 내세운 문화적 실험이자, 생산성과 효율로 재단되던 시대에 ‘행복’이라는 비계량적 가치를 공공의 화제로 끌어올린 도전이었다.
평범한 사람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로 출발한 만큼, 샘터는 필자 구성에서 3분의 1은 이름 없는 보통 사람들에 할애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창간호만 봐도 철학자 김형석, 평론가 이어령, 시인 강은교, 화가 김기창, 소설가 이문구, 가수 김상희 등 내로라하는 인사들 사이사이 초등학생과 주부, 은행원과 공장 노동자 등이 필자로 이름을 올렸다. 짝 바꾸는 날 설레는 아이의 마음과 아침마다 세 딸이 더운물을 뺏길세라 앞다퉈 세수한다는 일상 등 덤덤하고 소박한 삶의 이야기가 지면을 채웠다.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샘터를 꾸려온 김성구 샘터 대표의 표현대로 “억지로 감동을 쥐어짜지 않는, 간 덜 된 심심한 음식 같은 맛”이다.
1970년대 후반 월 50만부까지 달했다는 샘터의 발행 부수는 이제 2만부 선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마저도 절반은 군부대·보험회사 등에 납품하는 용도다. 지난 2019년 한차례 휴간을 검토했을 때 각계 후원과 정기구독 신청이 몰려 기사회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짝 관심으로 연명하기엔 이미 샘터를 지탱해온 정서적 생태계는 붕괴돼 있었다.
샘터의 퇴장을 단순히 활자 매체, 종이 매체 시대의 종말로만 볼 수는 없다. 플랫폼의 ‘디지털 전환’ 작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콘텐트 효용의 한계 문제이기 때문이다.
SNS의 타인 일상, 공감 아닌 평가 대상
샘터가 보여준 타인의 일상은 SNS 속 과시형 삶의 모습과는 결이 다르다. 저마다 묵묵히 버티며 평범하게 사는 이야기는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란 공감과 연대의 감정을 끌어냈고, 나 아닌 남도 생각하는 최소한의 공공선(公共善) 의식으로 이어졌다. 창간호부터 56년간 샘터를 구독했다는 경기도 성남의 오두환씨는 올 1월호에서 “자기 삶을 성실히 일구어가는 이웃들의 이야기에 용기를 얻어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밝혔는데, 이게 바로 샘터의 효용이다.
이런 샘터의 기능이 가능했던 정서는 ‘가난해도 마음은 따뜻하다’는 식의 서사다. 창간호 뒤표지에 적힌 대로 샘터는 “바르게, 참되게, 슬기롭게 살아가려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를 표방했다. 하지만 이제 이런 가치는 지루하고 뻔한 ‘꼰대질’ 취급을 받는다. 소박함보다는 성공 ‘플렉스(Flex)’가, 보편적 공감보다는 개인의 취향과 진영 논리가 더 중요해졌다. 자극적이고 편향적 정서의 시대가 된 것이다.
SNS 등 디지털 환경에서 소비되는 일상은 공감의 대상이 아니라 우열 평가의 대상이다. 과잉 포장된 타인을 삶을 보며 자기 삶에 대한 불만과 고립감이 싹튼다. 한번 빠져든 감정과 연관된 콘텐트를 반복적으로 권하는 알고리즘 추천 방식은 분노와 혐오, 피해의식을 더욱 증폭시킨다.
샘터의 무기한 휴간 공지는 한국 사회가 공유하고 추구해온 보편적 휴머니즘과 정서적 유대감의 상실을 상징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고립된 정서의 시대, 극단적 감정의 완충지대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모두의 숙제로 남았다.